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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지/Gossip

[스팁토니젬스]Gossip(1)

처음 토니에 대한 그 소문을 들었을 때 제임스의 나이는 고작 10살에 불과했다.

 

애초에 토니 스타크에게 소문이란 너무도 당연하게 뒤를 쫒는 말들이었고, 그중에서도 토니에 대한 악의적인 헛소문들은 여러 대중매체를 통해 수없이 존재해 있던 것들이었다. 토니가 어느 모델과 잤다 부터 시작하여 토니 스타크가 사실 여자라더라, 하워드의 친아들이 아닌 입양아라더라, 빌런과 비밀리로 협조하고 있는 다는 거까지. 소문은 진실과 상관없이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소모품이었다.

 

물론 개중에는 진실이 섞인 경우도 있었겠지만 대부분 그런 소문들은 모두 날조기사들처럼 인터뷰 한 사람의 발언을 확대, 왜곡 해석하거나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항간에 떠도는 소문들을 마치 사실인 양 기사화한 거짓 기사들이 대개였다.

 

토니정도쯤 되는 높은 지위에 사람이라면 아이언맨을 떠나서라도 소문의 중심이 되기 십상이었고, 토니도 어린 시절부터 루머 속에 휩싸였던 이답게 소문을 이용하면 이용했지 정정 기사가 필요한 수준이 아니고서는 가십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존중한다는 듯 지들 멋대로 떠들도록 내버려두는 편이었다. 어차피 아무리 자신이 아니라고 해봐야 사람들 모두를 설득할 자신이 없으면 손을 놔버리는 편이 낫다는 것이었다.

 

어벤져스 역시 자신들의 헛소문만으로도 이골이 나 있는 이들이였기에 토니에 대한 괴 소문에 대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들을 가치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어린 소년에 불과했던 제임스에게 토니가 어린 소년들을 상대로 잠자리로 끌고 간다는 가쉽지 내용은 당시에도 퍽 충격이 크지 않을 수 없었다.


플레이보이 토니 스타크가 여자 남자 가릴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밤놀이를 즐긴다는 사실에 마치 부가적으로 끼어든 이 헛소문은 상당히 자극적인 만큼 대중들의 관심에 부풀어져 오래전부터 퍼져 있던 소문이었다. 당연히 다른 소문들과 다를 바 없이 무시 받는 소문 중 하나였지만 토니를 깎아 내리는데 열중한 이들은 각종 이상한 근거들을 이용해 토니 스타크가 여자의 그곳으로는 만족하지 못하여 사내의 뒤를, 그것도 체구가 확연히 작은 아이들일수록 그 뒤가 그리도 좁고 기분 좋아 어린 남자아이들이라면 사족을 못 쓰게 좋아한다는 상당히 역겨운 기사를 실어 대중들의 불쾌감을 이끌어내도록 하고 있었다.


제임스 역시 토니의 주변을 감싼 수많은 소문들에 대해 알고 있던 터라 가십지의 내용을 믿을 리 없었지만, 토니를 향해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쓰여진 악의성 짙은 글들은 상당히 불쾌감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제임스는 어린 소년이 내뱉기에는 상당히 험악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잡지를 집어 던졌다.


캡틴 아메리카와 블랙 위도우의 아들. 모든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이 세기의 커플 사이 태어난 제임스는 어벤져스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는 아이였다. 몸 안에 흐르는 슈퍼 솔져의 혈청은 제임스를 다른 의미로 금 수저를 가지고 태어나게 하였고,그만큼 그에 대한 관심과 기대도는 일말 평범한 아이가 받는 기대치를 월등히 뛰어넘고 있었다.

 

그러나 우습게도 정작 제임스의 부모인 스티브와 나타샤는 남들이 기대하는 행복과 사랑이 넘치는 가족의 형태와는 일말의 관심도 없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제임스를 위해 그럴 노력조차 보이려 하지 않았다. 세기에 로맨스와 사랑은 딱 가십지에서 떠드는 헛소문 정도에 불과한 내용들이었다.


단순한 사고에 불과했다. 나타샤는 냉정하게도 제임스에 대한 평가를 그리 내렸다. 그녀는 막 사랑했던 이와의 이별로 상처받아 있었고, 스티브 역시 좀처럼 다가갈 기회는커녕 자꾸 상처만 남기는 토니로 인해 화가 많이 나 있는 상태였다. 그들은 감정에 목말라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스티브와 나타샤가 서로의 상처에 이끌리듯 사랑에 빠진 그런 감성적인 스토리라는 것은 아니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제임스의 탄생에는 스티브와 나타샤 사이 그 어떤 로맨스도 끼어 있지 않았다. 특히 토니에 대한 스티브의 오래된 감정은 상당히 견고하였고, 그것은 그리 쉽게 무너질 만한 것이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견고함을 역이용하듯 스티브는 빌런의 약에 취해 나타샤를 토니로 보았고, 나타샤 역시 스티브를 통해 자신의 사랑했던 이에 대한 환각에 싸이고 말았다. 서로에 대한 사랑의 밀어는 눈앞에 있는 이가 아닌 각자가 염원하는 이를 향한 것이었다.

 

나타샤는 그 날 밤의 일을 암묵적으로 없었던 일로 치부하자 결론을 내렸다. 비록 충동적인 하룻밤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공사를 구분하는 이들이었기에 오히려 상대의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존중하듯 그 어떠한 감정조차 키우지 않도록 노력한 것이었다. 만약 제임스가 생겨나지만 않았더라면. 그들은 그렇게 토니조차도 몰랐을 정도로 그날 밤의 일을 완벽하게 잊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나타샤는 절대 자신에게 생기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아이의 존재에 대해 기쁨보다도 큰 당혹감. 그리고 그제서야 토니에 대한 죄책감을 심하게 얻었다. 비록 오랜 기간 토니가 스티브를 밀어내고 있었지만 그들 모두 다를 바 없는 눈으로 토니가 스티브를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들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는 답답하면서도 한편으로, 저 불행한 사내들의 결말이 언젠가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내심 기대 받고 있는 작품이었던 셈이었다.


나타샤는 그런 토니에게서 스티브를 빼앗은 자신의 실수에 대해 심히 괴로워했다. 아이에 대한 책임도 없었을 뿐더러 이 아이는 그녀에게 동료애를 깰 정도의 가치가 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뱃속의 아이를 도저히 지울 수 없었다. 우습게도 뒤늦게 그녀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된 토니의 설득 때문이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자신의 친자식의 존재를 알았음에도 냉담하게 구는 스티브와 달리 토니는 처음 제임스를 지켜내었듯, 부모인 스티브와 나타샤보다 더 친부모처럼 제임스를 돌봐왔다. 바쁜 회사일과 히어로 활동을 하면서도 틈틈이 제임스에게 부족한 관심과 사랑을 주는 모습은 언뜻 오베디아의 관계를 투영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두 사람의 행복한 모습을 본 이들 중 그 누구도 그 사랑이 거짓이라 의심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스파이더맨은 토니의 변화가 성장의 징조라며 떠들어대었고, 리드는 이것이 정말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그를 걱정하기도 하였다.


토니의 노력덕분이었을까. 그 덕분에 제임스는 모자람 없는 아이로 훌륭하게 자라였고, 심지어 언제나 자신의 곁을 지켜준 토니를 친부모인줄 알고 자란적도 있을 정도였다. 막 제임스가 말을 텄을 무렵 제일 처음 토니를 보고 한 말이 엄마였을 때 어벤져스 모두가 얼마나 웃었던지.로건은 지금도 그때 일을 거론하며 토니를 놀리려 들 정도였다.


그렇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친부모의 존재와 심지어 토니가 자신의 대부조차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제임스는 그 뒤부터 토니에게 실수로라도 엄마나 아빠라는 말을 하는 걸 자제하려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토니를 따르는 것은 없어지려 하지 않았다. 이미 제임스에게 토니는 제 아버지보다 더 진짜 아버지 같은 존재나 다름없었다.

 

그런 토니를 상대로 이런 인간 말종 같은 성적추문의 가십은 특히나 제임스에게 부모를 모욕당한 기분을 선사하고 있었다.


분을 못 참고 한참을 씩씩 거리며 잡지를 노려보던 제임스는 어떻게 이 기분 나쁜 잡지사에게 엿을 먹일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에 제임스는 핌에게로 황급히 전화를 걸었다. 핌이라면 이런 잡지사의 컴퓨터를 해킹하는 일쯤이야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었다.이따위 쓰레기 같은 기사 글을 쓴 기자 놈의 신상을 파헤쳐 빅 엿을 날려줄 마음에 제임스는 킬킬거리며 추가로 저를 따르는 친구들을 소집했다. 프란시스가 가장 신나하며 차에 페인트를 던지자 의견을 내었고, 모두가 그 말에 박수를 보내었다. 그럼 비밀장소에서 보자는 말을 끝으로 옷을 챙겨 입은 제임스는 문득 구석으로 집어던진 잡지를 한 번 더 흘겨보았다.


표지에는 어느 유명 여배우의 헐벗은 사진이 떡하니 장식되어 있었지만 정작 제임스의 눈길을 끌은 것은 그가 처음 잡지를 샀을 때부터 본[토니 스타크의 취향에 대한 고찰]이라는 문구뿐이었다.

 

이상한 기사를 읽어서일까. 문득 제임스는 토니를 못 본지 일주일이 다되어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요즘 일이 바쁘다고 하셨는데. 잠시 망설이던 제임스는 느린 동작으로 토니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짧은 신호음이 들려오는 동안에도 지금 한 참 바쁠 토니에게 전화를 거는 자신의 행동에 수차례 의문과 비난이 들었지만 제임스는 토니의 목소리가 지금 당장 듣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한참의 신호음 뒤, 토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임스?"

", 토니. 지금 바빠요?"


토니의 직통 전화를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거기다 대부분 어벤져스는 ID 카드를 이용해 토니에게 용건을 말하는 추세였기에 이런 식으로 토니와 전화를 나누는 이들은 정말 극소수에 불과했다. 제임스는 그런 극소수의 인물들 중 자신이 포함된다는 사실이, 그리고 아버지와 달리 분명하게 제 이름을 불러주는 토니의 목소리가 정말로 좋았다.

 

"괜찮단다. 무슨 일이니?"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이 분명 무슨 회의 중 인거 같았지만, 제임스는 바쁜 와중에도 제 전화를 무시 하지 않고 받아준 토니에게 죄송스러움과 고마움이 앞서 올라왔다. 더 이상 방해하지 말고 어서 끊어드려야 한다 인식하면서도 제임스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토니는 그런 제임스를 차분히 기다려주었다. 제임스는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찢어질 새라 자신의 바짓단을 잡아당겼다.


"그냥요. 그냥 토니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요."


잠깐 동안 전화 너머 토니가 침묵했다. 바쁜 토니를 붙잡고 한다는 소리가 고작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라니. 형편없는 자신의 용건이 창피해 제임스는 제 입을 수차례 때려주고 싶었다.

 

잠시 뒤, 전화 너머 희미하게 토니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고맙구나. 제임스."


토니의 다정한 목소리에 제임스의 얼굴이 더더욱 붉어졌다. 스티브 로저스의 아들 제임스 로저스의 말 한마디가 토니에게 무슨 의미를 주는지 모르는 제임스는 그저 그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져 괜히 바쁘신데 전화 드려 죄송하다 면서도 전화를 끊을 때까지 히죽히죽 새어나오는 웃음을 가릴 줄 몰랐다.

 

방 밖을 뛰쳐나가는 제임스의 방 안에 구석에 찌그러진 잡지책은 더 이상 그의 관심거리에서 멀어진 뒤였다.

 

그저 그날은 제임스가 토니를 대신해 아이들과 복수를 해준 어린 시절의 일화로 끝 맺혀졌고, 가볍게 지나간 헛소문에 불과했다.

 

§ § §

 

그 후로도 제임스가 토니에 대한 비슷한 헛소문들을 듣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나이를 먹을수록 토니나 다른 어른들이 그러했듯 제임스 역시 헛소문들에 점점 무감각해져 나갔을 뿐이었다. 물론 여전히 제임스의 앞에서 토니에 대한 모욕적인 소리를 한다면 주먹 한방으로는 그치지 않을 각오를 해야만 했지만, 어릴 때에 비한다면 제임스의 반응은 퍽 얌전해진 축에 속해졌다.


제임스는 자신이 상당히 성숙해진만큼 이제는 어른 취급을 받아도 된다고 여겼지만 토니를 비롯한 주변 어른들은 아직 10대를 넘기지 못한 제임스를 어린아이 취급하려고만 했다. 자신들이 해보지 못한 평범한 아이로써의 삶을 제임스가 겪을 수 있기를 원한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제임스는 제 아버지를 닮아 도무지 평범한 아이들처럼 가만히 있는 것을 참지 못하는 아이였다.

 

사춘기가 올수록 제임스는 마치 무언가에 잔뜩 억눌린 듯 모든 일에 항상 화가 나 있었고, 최근 들어서는 토니에게까지 그 반항심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토니는 그런 아이의 투정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것은 제임스에게 불만만 더욱 키워갈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임스는 여느 십대 아이들처럼 자신이 특별해지기를 원했고 다른 이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중에서는 캡틴 아메리카의 인정이 가장 절실하기도 했다.


스티브는 처음 제임스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래왔듯이 제임스의 존재에 대해 상당히 무관심한 태도를 일괄해왔다. 그 어떤 아버지보다 훌륭한 아버지의 상이라 여겨지던 캡틴 아메리카의 싸늘한 태도에 수많은 캡틴 아메리카 팬들은 꽤나 실망하였고, 어떤 이들은 대놓고 제임스를 언급해 보기까지 해보았지만 스티브는 여전히 묵묵부답일 뿐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들은 제임스와 선을 그으려는 스티브의 태도의 원인을 잘 알고 있었다. 토니 역시 원인을 아는 이들 중 하나였기에 제임스에게 그 누구보다도 죄책감을 가졌다.


한번은 아예 스티브를 붙잡고 제임스를 자신과의 관계에 희생양으로 끼어 넣지 말라고 목소리를 올리기도 했지만 스티브는 그런 토니에게 오히려 제임스를 자신들 사이에 끼어 넣고 있는 것은 토니 자네가 아니냐 반박하여 토니를 입 다물게 만들었다.

 

끝까지 모른 척 스티브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제에 죄책감인양 나타샤를 밀어내고 제가 스티브의 아이의 부모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토니의 이기심은 오베디아 못지않게 지독히 탐욕적이라 할 수 있었다. 토니는 스티브의 정곡에 아무런 부정조차 하지 못했다. 그 일을 기점으로 토니는 제임스가 사이드 킥 마냥 캡틴 아메리카의 뒤를 쫒는 것을 도저히 말릴 수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제임스가 하루 종일 캡틴 아메리카를 도와 해온 자신의 공적들에 대해 시시콜콜 이야기해주는 것을 들으며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줄 뿐이었다.

 

스티브도, 토니도. 지독하리만큼 아이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었다.


그날도 언제 나와 다를 바 없는 하루였다. 제임스는 저를 무시하고 어벤져스들을 통솔해나가는 캡틴 아메리카를 쫒아 어떻게든 자신을 증명해보이려 했지만 스티브는 능숙하게 제임스가 할 수 있을만한 일들을 주려하지 않았다. 마치 넌 이 일이 어울리지 않으니 이제 그만두라는 식의 경고와도 같은 단호한 태도였다. 그러나 제임스는 아버지의 뒤를 쫒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그 결과 제임스는 그나마 자신을 챙겨주던 스파이더맨마저 잊어버린 채 말 그대로 빌런의 아지트에서 미아가 되어버리는 일을 초래하고 말았다.


언제 빌런이 나타나고 무슨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장소에서 제임스는 잔뜩 위축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다. 토니에게 배운 대로 방패를 휘두르며 다른 어벤져스를 찾아 이곳저곳을 달려갔지만 끝내 제임스가 만난 것은 대규모의 빌런 무리들이었다.

 

캡틴 아메리카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빌런들은 제임스를 인질로 잡고자 달려들었지만 제임스는 제 아버지의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 정말이지 죽기 살기로 싸워나갔다. 그러나 어린 소년의 노력에도 대규모의 빌런들을 상대하기에 제임스의 경험은 현저히 부족한 편이었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제임스가 눈을 떴을 때, 제일 처음 본 광경은 놀랍게도 스티브의 얼굴이었다. 자신이 빌런에게 사로잡혀 목에 칼이 들이밀어진 채 캡틴 아메리카가 협박당한다는 사실을 자각한 제임스는 치욕감에 스티브와 눈조차 마주칠 수 없었다. 캡틴 아메리카에게 무릎을 끌라는 빌런들의 명령어린 웃음소리가 천장을 울렸다.


그 순간 제임스는 부디 캡틴 아메리카가 자신을 선택하지 않기를 바라였고, 그와 동시에 아버지가 자신을 구해주기를 바랬다. 복합적인 감정은 성인조차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스티브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캡틴 아메리카가 빌런들의 명령에 따라 아들을 구하기 위해 방패를 버리고 빌런들에게 무릎 끓은 그날을 제임스는 절대 잊을 수 없었다. 가슴 속 이루 말할 수 없는 환희와 괴로움이 뒤섞여 그것을 도무지 뭐라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 그라면 자신을 버릴지도 모른다 느꼈던 불안감이 죄책감으로 돌아왔다. 피를 흘리면서도 끝까지 두 눈을 번뜩이는 스티브의 모습은 그야말로 제임스가 바래온 아버지의 상이었다.

 

스티브가 빌런들에게 몰매를 맞으며 시간을 끈 덕에 다행히 어벤져스들을 이끈 아이언맨의 등장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제임스는 병실에서제 곁을 지켜준 토니를 보자마자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려버렸다.

 

토니는 아이가 하고자싶은 말들을 다 이해한다는 듯 말없이 계속해서 등을 쓸어주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확신을 담아 아이가 가장 듣고자싶었던 말을 속삭여주었다.


"네 아버지는 너를 사랑해."


제임스는 그 말이 그토록 서럽고 기쁠 수가 없었다. 지금껏 의심하고 절대 아버지에게 기대하지 못했던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다. 그래서 그토록 어른스럽게 굴고자 싶었던 아이는 토니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다 잠이 들었다.

 

토니는 잠이 든 제임스의 벌게진 눈가를 한참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병실을 나왔다. 토니가 향하는 발걸음은 당연하게도 스티브가 있는 병실이었다. 스티브는 늦은 시간까지 자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 토니의 등장에 놀라워하지 않았다. 문가에 등을 기댄 토니가 스티브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제임스를 선택해줘서 고마워."


스티브는 아무런 대답 없이 오로지 토니만을 바라보았다. 떨려오는 목소리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휘청거리는 토니의 모습은 무언가 불안해보였지만 스티브는 그와 동시에 토니의 눈에 담긴 결심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 토니의 위태로움은 정신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스티브는 드디어 몇 십 년 만에 제대로 자신의 앞에 선 토니를 마주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스티브가 입을 열었다.


"제임스는 내 아들이야."

"그래. 나도 알아."


토니는 숨을 들이키듯 파르르 눈가를 접었다. 그토록 안된다 밀어냈던 자신의 감정이 아들을 지켜낸 스티브의 진짜 모습에서 터무니없이 흔들리고 말았다.

 

스티브는 제임스를 사랑했다. 단지 그 감정은 하워드가 그러했듯 표현할 줄 모르는 무뚝뚝함이었고, 또한 토니 자신이라는 존재 때문에 막히고 흔들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토니는 그제야 제임스를 궁지로 몰아넣은 사람이 제 자신임을 인정했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것을 하나 인정하고 나자 그토록 안된다고 세뇌했던 이유들을 모두 무너트리고 스티브와 제임스의 곁을 더욱 탐내도록 만들고 있었다. 토니는 끝까지 자신을 제임스의 대부로 선택하지 않은 스티브를 원망했다.


"난 자네와 나타샤가 제법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

"."


처음 제임스를 낳았을 때 제안한 바대로 양육권을 스스로 포기한 나타샤는 가끔씩 제임스가 자라오는 모습을 돌아보기는 했지만 저보다 토니를 따르는 제임스의 모습에 말없이 자리를 떠나곤 했었다. 단 한 번도 아이의 손조차 잡아주지 않고 매정히 몸을 돌리는 그녀를 토니는 몇 번이고 붙잡으려 했지만 끝내 잡지 못한 스스로를 되내이 듯 목이 졸리는 소리를 내었다.


"언젠가는 자네들 셋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어. 그게 원래 있어야 할 자리였고, 제임스를 위한 길이었으니까."


더 이상 견디지 못한 토니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덜덜 떨리는 두 손이 토니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스티브. 마지막 기회야. 이제는 나도 더 이상 못 버텨."

"토니."


천천히 느린 동작으로 스티브가 침대에 일어나 토니의 곁으로 다가갔다. 묵직하지만 분명히 저를 향해 다가오는 그 발걸음 소리에 토니는 숨을 죽였다. 이제 더 이상 도망칠 수도 없었다. 토니는 스티브가 자신의 손을 잡아 얼굴을 가까이 들이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토니. 제임스는 이미 자네의 아들이야."


토니는 멍청한 표정으로 자신의 입술에 입을 맞추는 스티브의 속눈썹만을 바라보았다. 말캉한 입술은 자신이 그토록 가지고 싶어 하던 사내의 것이었다. 마침내 가슴 속에 있는 북받쳐 오르는 것을 이기지 못한 토니가 잔뜩 일그러진 웃음을 터트렸다.


"냇이 날 죽이려 들 거야."


그럴 리 없을 거란 말을 스티브는 굳이 하지 않았다. 그저 이제야 자신을 받아준 토니를 다시 놓칠 새라 어깨를 쥔 손에 힘을 줄 뿐이었다. 오랜 시간 어긋나고 비틀어진 두 영웅은 드디어 서로를 제대로 받아들이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 제임스에게는 행복한 결말은 아니었다.

 

차라리 그날, 스티브가 제임스를 선택해주지 않았더라면 토니는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외면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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