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와 토니는 여유로운 주말을 맞이하며 보기좋게 소파에 앉아 시간을 떼웠어. 정확히 말하자면 소파에 앉아 나란히 구식 패드를 흔들며 액션 게임을 하였다는 말이지만 말이야.
스티브라면 모를까 토니 스타크에게 어울리지 않는 구식 패드는 손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빠르게 움직였고, 그에 따라 TV 속 게임 캐릭터도 바쁘게 움직여댔어. 한 손만을 사용하면서도 엄청난 속도로 스티브에게 연계공격을 날린 토니는 스티브의 캐릭터 피가 간당간당해지자 마무리를 장식한다며 필살기를 멋드러지게 날려주었어. 자신의 캐릭터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꼴을 보며 스티브가 끙 소리를 내었어.
벌써 18전 18승을 한 토니는 질리지도 않는지 자신의 승리에 매번 다양한 제스쳐로 스티브를 약올려주었어. 이번에는 스티브의 볼을 마구 찌르며 토니가 깐죽거렸어.
"이거 너무 실력차가 심해서 재미가 없을지경인걸? 캡? 좀 더 분발하라고."
그래도 나름 바튼과 자비스를 상대로 연습해왔것만 지금껏 토니의 캐릭터의 피를 반도 못 깍은 스티브는 귀엽게 궁시렁거렸어. 자네가 너무 잘하는거야.. 토니는 그런 스티브가 귀여워 까르르 웃으며 일부러 좀 더 약을 올렸어. 캡시클, 삐졌어요? 응? 게임에 졌다고 삐진거야?
스티브는 입술을 꾹 문채 살벌하게 말했어. 즉당히하게... 토오니... 하지만 토니는 눈치없게 낄낄 웃을뿐이었지.
"그러면 이번에는 캡을 생각해서 처음부터 내가 체력 반부터 시작할까? 필살기도 쓰지않고 기본 공격에 아까처럼 손도 한손만 쓸게. 이정도면 괜찮겠지?"
자존심이 잔뜩 상한 스티브가 얼굴을 잔뜩 구겼어. 그런식의 게임 방식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려했어. 그러나 그 다음 토니의 발언은 의외로 스티브를 움직이게 만들었어.
"만약 캡이 날 한번이라도 이기면 내가 캡이 원하는 어떤것이든 소원을 들어줄게."
호랑이 주둥이에 머리를 들이미는 토끼 격과도 같은 발언에 스티브가 눈을 번뜩였어. 정말인가? 토니는 해맑게 대답했어. 속고만 살았나? 뭐든 다 들어줄께! 마치 입맛을 다시는 육식동물마냥 스티브가 음습하게 웃음지었어.
"..좋네."
평소의 눈치왕 토니 스타크는 어디로 간 것일까. 토니는 스티브의 눈빛을 보지 못하였는지 아무런 생각없이 룰루랄라 다시금 게임을 재시작하였어. 그리고는 약속대로 자신의 캐릭터의 피를 반정도 깍아놓은 토니는 자신만만하게 대결을 시작하였어.
그순간 시작이라는 토니의 목소리와 동시에 스티브의 연계공격이 시작되었어. 아까의 버벅거리던 실력은 여전했지만 투쟁심이라도 생겼는지 패드를 움직이는 스티브의 손놀림이 차원이 다르게 빨라져있었어.
당황한 토니도 재빨리 반격하며 공격을 시도했어. 이제야 좀 게임할 맛이 나는 기분에 토니의 손에 땀이 차올랐지. 역시 기계의 천재 토니 스타크답게 불리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능숙하게 패드를 다룬 토니는 얼마안가 페이스를 되찾더니 차근히 스티브의 체력을 줄여나갔어.
하지만 역시 한손에 기본공격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모양이었어. 거기다 처음부터 체력이 반에서부터 시작한 토니의 캐릭터의 피가 마침내 점점 끝을 향해 줄어들고있었어. 스티브의 손가락이 더욱 빨라졌어. 어찌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투두두두- 소리와 함께 핏줄이 솟을 정도였지. 마치 빌런을 상대하는 캡틴 아메리카마냥 스티브의 이기고야말겠다는 포스가 마구 뿜어졌어.
이제 토니의 캐릭터는 한방만을 남겨놓은 시점이었어. 스티브는 아까 토니가 했던것처럼 마지막 마무리를 화려한 필살기로 끝매쳐주기위하여 힘들게 외워뒀던 필살 버튼을 마구 눌렀어.한방. 마지막 한방이면 드디어 스티브가 이기는 시점이었어. 패드 버튼을 누르는 스티브의 손에 힘이 들어갔어.
빠작-!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동시에 스티브의 캐릭터가 움직임을 멈추었어. 스티브는 황망하게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어. 어지간히 세게 눌렀는지 패드가 두개로 박살이 나있었지.
토니는 스티브의 패드가 망가진 모습에 손을 멈춘채 벙찐 얼굴로 스티브를 바라보았어. 그러다 잠시뒤 입꼬리를 푸들푸들 올린 토니는 빵하고 웃음을 터트렸어. 스티브가 얼굴을 붉히며 웃지말라고, 힘 조절이 잘 안된거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토니는 무시한채 숨도 제대로 못 쉴정도로 웃어제켰어.
"이건 무효네! 자, 잠시만 기다리게! 다른걸로 교체해서.."
"오, 세상에. 캡. 운도 실력인거 몰라? 가서 새거 가져오도록해. 난 그동안 자네 캐릭터를 여유롭게 때려눕히고 있을테니까 말이야."
손을 부들부들 떠는 주제에 토니는 여유롭게 스티브의 캐릭터를 때려주었어. 어찌나 얄밉게 때리는지 체력 게이지는 찔끔찔끔 조금씩 줄고 있었어.
건드리지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소리를 지른 스티브가 새 패드를 가지고 돌아왔을때는 토니의 예고대로 이미 스티브의 캐릭터는 쓰러져 KO를 띄우고 있을뿐이었어. 거기다 억울하게도 얼마안가 페퍼가 그만 놀고 일 좀 하라고 토니를 끌고가버렸지. 스티브는 억울함과 분노에 휩싸여 새 패드를 연결하여 다시 미친듯이 연습에 돌입하였어. 당연히 패드는 한개 더 부셔지는 수모를 겪어야만했어.
쉴드 내 복도를 걸으며 토니가 스티브의 어깨에 매달린채 회의에 가기 싫다고 징징거렸어. 그러나 스티브는 엄하게 토니에게 회의는 꼭 참석해야한다며 바른 소리를 하였어.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며 거의 끌려가듯 회의실에 가던 토니는 오늘따라 회의실이 먼 느낌에 큰 소리로 툴툴 거렸어. 나같은 귀한 컨설턴트를 오라가라시키다니.. 회의실은 대체 왜 이렇게 멀게도 만들어놓은거야? 스티브는 토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달래주었어.
토니는 길고 긴 쉴드의 복도를 바라보았어. 어찌나 긴지 마치 이 복도가 육상트랙과도 같아보였지. 육상트랙을 생각한순간 토니의 얼굴 위로 장난끼가 떠올랐어.
"캡. 우리 달리기 시합할래? 회의실까지 누가 먼저 도착하나 시합 해보자!"
갑작스런 토니의 제안에 스티브가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한쪽 눈썹을 올려 쳐다보았어. 그러나 제대로 된 설명없이 토니는 그럼 준비, 땅! 하고 먼저 냅다 출발해버렸고, 스티브는 덩그러니 남은채 씰룩이며 도망치는 토니의 엉덩이에 시선을 집중하였어. 순간 무언가 번뜩인 스티브가 고개를 확 들었어.
신이 나 복도를 내달리던 토니는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쿵쿵쿵쿵하는 소리에 기겁하며 뒤를 돌아보았어. 그리고 뒤를 돌아 제대로 확인할 새도 없이 스티브가 토니를 스쳐지나갔어.
토니는 순식간에 자신을 앞질러 저멀리 내달리는 스티브의 뒷모습에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바라보았어. 어찌나 빠르게 달리시는지 코너 쪽 벽에 금이갈 정도로 세게 부딪힌주제에 아무렇지않다는듯이 스티브는 벌써 종적을 감춰버렸어. 솔직히 나잡아봐라 놀이를 할 생각으로 뜀박질을 하려던 토니는 죽기살기로 내달리는 스티브의 모습에 절로 헐소리가 나왔어.
그때 뒤에서 배너가 토니를 불렀어.
스티브는 몇번 지나가는 쉴드 요원들과 부딪혀 인명사고를 낼뻔하거나 기물파손을 내긴했지만 끝내 토니보다도 한참은 먼저 회의실에 도착하자 뒤쪽을 향해 씨익 웃어주었어. 여유롭게 토니를 기다려 약올릴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어.
스티브는 자신만만하게 회의실 문을 열어제켰어.
"..어?"
회의실 안에는 아무도 없다는걸 확인한 스티브는 당황하였어. 분명 평소 이용하던 회의실이 맞는데 나타샤도, 배너도, 바튼이나 토르까지 모두 자리를 비우고 아무도 없었어. 자신이 너무 일찍 온건 아닌가 시간을 확인해보았지만 평소라면 모를까 오늘은 회의에 가기 싫다는 토니를 달래느라 제법 시간이 늦었기에 첫번째로 회의실에 왔다라는건 조금 이상했어.
고개를 갸웃하던 스티브는 마침 복도를 지나가던 요원 하나를 불러세웠어. 그러자 요원은 스티브가 하고자 싶은 말을 금방 눈치채었는지 웃으며 대답을 들려주었어.
"회의실 위치 바뀌셨다는데 이야기 못 들으셨나요?"
스티브가 굳은 얼굴로 바라보자 요원은 친절하게 회의에 사용될 3D 입체 영상기기를 토르가 망가트려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말해주었어. 스티브는 허탈함에 어깨를 늘어트렸어.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요원은 친히 캡틴 아메리카를 바뀐 회의실로 안내해드렸고, 회의실 문을 열자 여유롭게 배너와 잡담을 늘어트리던 토니가 스티브를 반겼어.
"늦었네? 캡?"
스티브는 회의실이 바뀌어서 그렇지 원래는 자기가 이긴거라고 작게 투덜거렸지만 토니는 우쭈쭈- 그랬쪄요? 하고 장난을 치며 물을 건내줄뿐이었어. 받아든 물을 원샷한 스티브는 몰래 이를 갈았어.
스티브는 오늘 하루 점심도 거른채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토니를 위해 샌드위치를 만들어 랩실로 내려갔어. 한참 아머의 팔 부분을 수리하고 있던 토니는 스티브가 이거 좀 먹으면서 쉬라는 말에 처음으로 하루종일 숙이고있던 허리를 폈어.
길게 기지개를 핀 토니가 반갑게 샌드위치를 베어무는 동안 스티브는 토니가 막 만들고 있던 아머의 팔 부분을 신기하다는듯이 손가락으로 찔러보았어. 토니가 스티브의 손등을 찰싹 내리쳤어.
"캡이 만지면 기계 망가져."
"..너무하는군. 그냥 한번 만져본거뿐인데 망가질리가 없지 않나."
"좋아. 캡의 전적을 읊어주도록할까? 스타크 인더스트리 신작 핸드폰, 전자렌지, 커피포트, 나타샤의 노트북, 심지어 자비스 일부 시스템까지. 더 많지만 그러기에는 내 입이 조금 아플거같지않아?"
스티브는 더이상 반박하지 못했어. 토니는 남은 샌드위치를 모두 입에 쑤셔넣으며 아머의 팔에 연결된 전선들을 뽑아냈어. 아이언맨의 빨강과 황금빛의 겉 표면을 알맞게 맞춘 토니는 순식간에 완성된 아머의 팔 부분을 흔들어주었어.
"이렇게 간단하고도 쉬운 작업을 왜 캡은 망가트리기만하는건지.."
"자네에게만 간단한거야. 이런 아머를 만들수 있는 사람이 자네 외에 더 있을리가 없지않나."
토니는 은근슬쩍 자신을 업시켜주는 스티브의 말에 기분이 좋은지 얼굴을 붉혔어.
스티브는 목이 메이면 안된다며 오렌지 주스를 토니의 입가에 데어주었어. 얌전히 스티브가 주는데로 주스를 마시면서도 토니는 손으로는 섬세하게 아머의 상태를 점검하였어. 결국 스티브가 얼굴을 찌푸리며 좀 쉬라고 한소리를 하였어. 토니는 주스에서 입을 떼고 입을 비죽였어.
"제대로 작동하는지만 확인하면 끝난단 말이야."
"그건 나중에 확인하면 되는거 아닌가. 먹을때만큼은 기계를 내려놓도록하게."
하지만 토니는 스티브의 잔소리에도 아머를 내려놓지 못한채 오히려 뻔뻔하게 팔에 장작해보기까지 하였어. 스티브가 화를 벌컥 내려는데 토니가 여유롭게 스티브 앞에 아머가 장착된 자신의 팔을 들이밀며 눈웃음을 지었어.
"팔씨름 한판 해볼래?"
이제 막 완성된 아머의 완력을 테스트하기에 눈 앞에 있는 슈퍼솔져가 제격이라며 토니가 키득거렸어. 그런데 의외로 스티브는 토니의 제안에 아무런 말도 하지않은채 눈을 가늘게 뜰뿐이었어. 스티브는 조용히 연구대 위에 물건들을 옆으로 치워내고는 결연한 얼굴로 손을 올려놓았어.
"덤비게."
토니는 왠지 스티브의 눈빛이 무섭게 느껴졌지만 여기서 그냥 하지말자고 말했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것만같아 얌전히 아머를 장착한 팔로 스티브와 손을 붙잡았어. 아직 시작도 하지않았것만 스티브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간것이 아머를 통해서까지 느껴졌어. 캡. 너무 긴장하는거 아니야? 힘 좀 빼라고. 스티브는 알겠다고 대답하면서도 그리 손에 힘이 빠지지는 않았어.
어쩔수없이 토니는 자신도 손에 힘을 준채 카운트를 셌어.
"그럼 하나, 둘.. 시작!"
민간인 상태의 토니라면 절대 슈퍼솔져의 상대가 되지 않겠지만 아머의 기계 힘을 빌린 토니는 제법 팽팽하게 스티브와 겨룰수있었어. 둘 다 지지않기위해 이를 악물고 팔의 근육들이 올라왔고, 얼굴들이 시뻘개져갔어. 스티브와 토니 모두 있는 힘을 다해 팔에 힘을 주었어.
그런데 예상보다 스티브가 힘을 과하게 주었는지 미는 힘이 아닌 손을 쥔 악력에 힘이 들어가 기계를 서서히 눌러 망가트리고 있었어. 철판이 스티브의 손모양대로 눌려오는 모습에 토니가 놀라 소리쳤어. 자, 잠깐! 스티브! 그러나 스티브는 다급한 토니의 목소리를 깔끔히 무시한채 이를 악물고 더욱 힘을 주었어. 토니의 아머에서 더욱 찌그러지더니 속에서 파직파직 스파크가 일었어.
부품이 망가져 간 아머는 제대로 힘을 내지 못하였고, 두사람의 손은 서서히 토니쪽 방향으로 내려가기 시작했어. 금방이라도 닿을듯 토니의 손이 아슬아슬한 모양새를 취했어.
스티브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어. 조금만 더 하면...! 그때였어. 결국 스티브가 전선을 건드리고야 말았는지 토니의 아머에서 파지직-! 소리와 함께 전기가 올라왔어. 그리고 그 전기는 손을 맞잡고 있는 스티브에게로 흘러들어갔지.
아머 내 보호 장치로 토니에게까지는 전기가 통하지않았지만 순간 확 올라오는 전기에 스티브가 놀라 팔을 주춤하는 바람에 토니의 손이 따라 올라갔어. 역으로 돌아간 팔은 순식간에 반대의 장면을 연출하였고, 토니는 그것을 놓치지않았어. 스티브의 손등이 먼저 닿았어.
토니는 자신이 슈퍼솔져를 상대로 팔씨름에 이겼다는 사실에 너무 좋아 방방 뛰며 더미와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었어. 그러나 기뻐하는 토니와 반대로 스티브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마치 왜 거기서 팔을 움추려들였냐고 타박하듯이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어.
다시 망가진 아머를 수리해야했지만 토니는 그날 기분이 너무 좋아 오늘의 장면을 영상으로 보존하였고, 어벤져스 멤버들의 방을 급습하여 자신이 스티브를 팔씨름으로 이겼다며 자랑질을 해대었어. 스티브의 눈에서 뭔가 더 음습한 눈빛이 흘러나오는것도 모른채 토니의 기분은 한결 업되어 있었지.
바튼은 자켓을 벗어던지며 허겁지겁 가게 안으로 들어섰어. 나타샤의 단골 술집은 어느새 어벤져스들의 주 회식자리가 되었고, 멤버들은 종종 쉬는날이 겹칠때면 오늘처럼 다같이 모여 그간의 회포를 풀곤하였어. 거기다 오늘은 중요한 야구 경기가 있는 날이었기에 남자 멤버들은 한껏 들뜬 모습으로 술들을 들이키며 TV를 향해 응원전을 펼쳤어. 바튼은 차가 막혀 후반부만이 볼수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며 재빨리 자리에 착석하였어.
토르는 경기의 규칙도 모르는주제에 토니와 신이 나서 목청껏 응원전을 펼쳤고, 스티브도 야구를 꽤나 좋아하는지 TV에 눈도 돌리지않은채 옆으로 조금 움직여 바튼이 앉을 자리를 만들어주었어. 배너만이 지금 점수가 어떻게 되고 있냐는 바튼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주었어.
나타샤는 한심스러운 남자들의 모습에 혀를 차며 바텐더와 잡담을 나누었어.
그때 한참 야구 경기에 집중하고 있던 토니가 버럭 승질을 내었어.
"아니, 거기서 쟤를 타자로 내보내면 어쩌자는건데?! 감독 자식 생각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토니는 자신의 머리를 잡아당기며 이번 판은 졌다고 좌절하였어. 그러자 스티브가 저 선수가 그리 못하는것은 아니라고 누구에게나 균등한 기회를 줘야한다고 반박하였어. 하지만 토니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어.
"내가 장담하는데 스트라이크야."
스티브는 두고 볼 일이라며 콧김을 내뿜었어. TV속 문제의 선수가 야구 배트를 들고 자세를 취했어. 스티브는 주먹을 꽉 쥐고 열혈히 선수를 응원하였어. 마침내 투수가 공을 던졌고, 배트가 휘둘러졌어. 토니는 자신의 이마를 치며 짜증을 냈어.
"아, 거봐! 쟤는 못한다고!"
토니의 예언대로 배트는 공을 치지 못한채 허공만을 휘둘러졌어. 스티브는 테이블을 손으로 쾅! 내리쳤어.
"아직 기회는 남았네! 한번의 경우를 두고 모든걸 결정하려하지말게."
"쟤가 여기서 아웃되면 지는거나 다름없는데 무슨 놈의 기회? 캡도 희망만 가지지말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아웃당하지 않아!"
무얼믿고 그리도 외치는지 모르겠다며 토니가 씨익 웃었어.
"좋아. 그럼 내기할래?"
뭐? 스티브가 토니를 쳐다보며 되물었어. 대화를 하는중에도 벌써 타자는 투 스트라이크가 되어있었어. 토니는 자신만만하게 그 꼴을 가리켜보였어. 스티브는 TV속 선수를 바라보았어. 그리고 굳건하게 고개를 끄덕였어.
"그러도록하지."
나타샤는 술잔을 기울였어. 남자들이란.. 나타샤는 애써 바튼과 토르까지 내기에 동참하는 모습을 무시하기로 하였어. 토르는 스티브와. 바튼은 토니와 팀을 나누었고, 각자의 염원을 받은 타자는 느껴질리없는 중압감에 식음땀을 흘렸어. 배너는 허허 웃으며 상황을 감상하였어.
거의 이를 악문채 타자가 배트를 휘둘렀어. 그리고 동시에 깡! 소리와 함께 공이 멀리 허공을 날라갔어. 스티브와 토르가 두 팔을 벌려 환호하였어. 봤지? 봤지? 스티브가 토니에게 잘 보라며 저 선수가 드디어 성공했다고 좋아했어. 하지만 토니는 냉정하게 아직 아니라고 대답할뿐이었어.
토니의 예언이 저주가 된 것이었을까. 토르가 어, 어? 하며 탄식을 흘렸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 공은 수비수에게 너무도 쉽게 안착되었고, 4루를 향해 공이 던져졌어. 심판이 휘슬을 불었어. 토니는 자신의 말이 맞지않냐며 스티브를 약올리려했어.
그러나 토니는 스티브를 놀리지 못했어. 나타샤는 술잔을 내려놓고 어이가 없다는듯 스티브를 쳐다보았어. 쾅! 소리와 함께 분노한 스티브의 주먹에 박살이 난 TV는 완전히 야구중계를 꺼버리고 말았어. 방금전까지만해도 야구 경기에 열광하던 술집안에는 긴 침묵이 흘렀어.
결국 그날의 경기는 마지막 후반부에 달해서 기적적인 역전을 성공하였지만 어벤져스들은 그 기적을 실시간으로 보지 못하였어. 다음날 술집에는 토니가 새로 변상한 TV가 들어왔으나 어벤져스들은 술집내 금지 처분을 받을수밖에 없었어. 나타샤는 자신의 단골집에 쫒겨나게 만든 사건의 원흉인 스티브와 토니를 향해 분노를 내뿜었어.
쉴드 난간에 매달리듯 기댄채 토니는 블루베리를 먹으며 바쁘게 오고가는 쉴드 요원들을 구경하였어. 토니 역시 저 쉴드 요원들만큼 할 일이 태산같이 많았지만 요원들과 일에 대처하는 방식이 남다른 토니는 여유롭게 자신의 일들을 무시하는 편이었어. 어쩐지 저 멀리 페퍼가 토니 스타크 이 씹사장 새끼야-!하고 소리치는 환청이 들려오는것같았어.
그렇게 여유롭게 시간을 떼우고 있는데 오늘 막 임무를 다녀오기라도했는지 수트를 입은 차림새 그대로 스티브가 토니에게 아는체를 했어. 토니는 반갑게 스티브를 반기며 블루베리를 내밀었어. 한주먹 블루베리를 받아든 스티브는 토니와 똑같이 난간에 몸을 기대면서 토니가 무얼 보고 있었는지 확인하였어.
"다들 바빠 보이는군.."
"Strategic Homeland Intervention, Enforcement and Logistics Division이라는데 지구의 평화를 위해 많이들 노력해야겠지."
"..자네 그걸 다 외웠나?"
"난 천재니까! 그치만 장담컨데 이 이름 너무 길어서 저기 가는 녀석중에 다 외운 녀석들은 거의 없을껄?"
토니는 낄낄 웃으며 블루베리 한 주먹을 입에 털어넣었어. 몇개가 토니의 손에서 빠져나와 바닥으로 떨어졌어. 지나가던 쉴드 요원들은 자신들의 머리위로 떨어지는 블루베리를 확인하고, 토니와 스티브를 향해 음식물을 흘리는것을 자제해달라 부탁했어. 토니는 그런 그들의 부탁을 보란듯이 무시해주었어.
스티브는 쉴드 요원의 얼굴이 잔뜩 구겨지자 한숨을 내쉬며 토니의 블루베리를 뺏어들었어. 블루베리를 빼앗긴 토니는 40살 먹은 아저씨가 어린아이마냥 잔뜩 성이 난 얼굴로 빽빽거렸어.
"내꺼야!"
"흘리면서 먹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돌려주겠네."
잔뜩 볼을 부풀린 토니는 여전히 자신들을 올려다보는 쉴드 요원과 스티브.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블루베리를 번갈아 눈을 돌리다가 훽 고개를 돌려버렸어. 안먹어! 블루베리보다도 자존심이 더욱 중요한 모양이었어.
쉴드 요원들은 속으로 도대체 저 인간은 나이를 어디로 먹었나 진지하게 고찰하며 자신들의 업무에 충실하기위해 다시금 바쁘게 움직였어. 토니는 그런 요원들을 내려다보며 입을 비죽 내민채 툴툴거렸어. 스티브는 토니의 새빨간 입술에 눈을 뗄줄을 몰랐어. 자꾸만 시선이 갔고, 자신도 모르게 입맛이 다져졌어. 토니의 몸에서 블루베리의 달콤한 향이 흘러나오고 있었어.
"..토니. 게임 한 번 해보지 않겠나?"
"? 게임? 어떤거?"
스티브는 잠시 주변을 살피며 뭔가 좋은게 없나 찾아보았어. 그러다 문득 쉴드 요원들이 바쁘게 문을 오가는 모습을 발견한 스티브는 손으로 그곳을 가리키며 말했어.
"10분간 저 문을 오가는 사람이 홀수이면 내가 이기고, 짝수이면 자네가 이기는거네."
토니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자신이 이기면 블루베리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티브의 제안을 가볍게 받아들였어. 스티브는 씨익 웃으며 그럼 지금부터 시-작! 하고 작게 소리를 쳤어.
두 사람은 한 명이라도 놓칠새야 눈을 빠르게 돌려대었고, 스티브는 손가락까지 쫙 펼쳐 손수 하나하나 세어나갔어. 지정된 시간이 다가올수록 요원 중 한명이라도 문을 지나갈때마다 두 사람의 얼굴이 시시각각으로 변했어. 어떤 요원은 문을 지나가려다가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몸을 돌려 되돌아가다가 토니에게 갑작스럽게 욕을 먹었고, 이미 한번 나갔던 요원이 다시 들어오자 스티브와 토니는 서로 저건 숫자로 치는거다 아니다 투닥거렸어.
마침내 남은 시간은 10초 정도를 남겨놓은 시점에서 현재 지나간 인원수는 24명정도가 되었어. 토니는 남은 시간동안 누가 더 지나가기라도 할까봐 눈에 불을 켜고 고개를 훽훽 돌려대다가 더이상 문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한번 더 확인하고는 자신만만하게 스티브를 돌아보았어. 스티브는 처절하게 문을 바라보았어. 제발 한명만. 한명만 더 들어온다면...
그 순간 스티브의 레이더망에 그 누군가가 잡혔어. 50m정도 떨어진 곳에서 콜슨이 요원 하나와 무언가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어. 스티브는 앞뒤 가리지않고 콜슨을 향해 소리쳤어.
"콜슨!"
콜슨은 갑자기 캡틴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소리치자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고 스티브와 토니쪽을 쳐다보았어. 스티브는 이건 반칙이라며 입을 막으려는 토니의 손을 피하며 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어.
"달리게! 어서!!"
평생을 바친 인생의 덕질상대가 자신을 향해 앞뒤 설명없이 달리라고 명령한다면 어떡해야하는걸까? 그러나 콜슨은 이러한 고민따위 단 0.1초도 생각하지 않는 훌륭한 덕후대장답게 캡틴 아메리카의 명령을 곧장 시행하였어. 무엇인지 몰라도 캡틴이 저렇게까지 다급하게 외치는데 뭔가 사정이 있으리라 생각한 콜슨은 쉴드 최고의 요원다운 실력으로 들고 있던 서류도 집어던진채 문을 향해 빠르게 돌진하였어.
토니가 안돼!! 하고 절규하였고, 스티브는 힘을 내라며 목청껏 콜슨을 응원하였어. 그리고 잠시뒤 50m를 순식간에 6초대로 끊어버린 콜슨이 멋있게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갔어.
콜슨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순간 ????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어린 후배들의 시선에 잠시 숨을 들이쉬다가 특유의 웃음으로 일들 열심히 하게^^;;하고는 손을 흔들어주었어.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와 캡틴에게 무슨 일이 있으신거냐고 제대로 자초지경을 들으려는데 막상 테라스에서 스티브와 토니는 이건 반칙이네, 아니네 떠들어대고 있었어.
"달리라고 시키는게 어디있어! 반칙이잖아! 무효, 무효라고!!"
"난 정확히 왜 달려야하는지 이야기하지않았네! 그냥 소리친거뿐이야."
"소리친거 좋아하네. 캡이 시켰으니 달린거잖아!"
"어쨌든 이번 게임은 내가 이겠네. 어찌되었든 콜슨은 제 시간 안에 저 문을 지나가지 않았나."
토니는 억지를 부리는 스티브를 어처구니가 없다는듯이 바라보았어. 저렇게까지해서 나한테 이기고 싶었나? 스티브의 눈이 이번엔 무조건 나의 승리야!! 하고 불타오르고 있었어.
콜슨이 스티브와 토니를 불러 물어보았어. 혹시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제게 설명해주실분은 없는건가요? 스티브는 자세한 설명 대신 콜슨을 향해 엄지 손가락을 척! 올려주었어.
"수고했네! 콜슨. 자네는 정말 최고였네!"
단지 자신을 이용해 게임에 억지로 이겨낸거란걸 모른채 콜슨은 그저 스티브가 자신을 잘했다며 칭송해주자 황송해죽겠다는듯이 환하게 웃었어. 그것이 찔리지도 않는지 스티브도 콜슨과 함께 마주웃어보였어. 토니는 잘들 논다.. 한 얼굴로 둘을 쳐다보다가 뒷머리를 긁적였어.
"알았어. 그럼 이번건 내가 진거라 치지뭐.."
토니의 인정과 동시에 스티브의 고개가 훽 돌아갔어. 스티브의 눈이 무섭게 번뜩였어.
"그럼 내가 이긴건가?"
"그래. 캡이 이겼어. 이기니까 그렇게도 좋아? 무슨 얘도 아니고.."
그 다음 뒷말은 토니는 이을수가 없었어. 순식간에 스티브에게 허리춤을 안긴 토니는 눈 앞에서 맹수와 같이 자신을 향해 눈을 빛내는 스티브의 푸른눈과 마주했어.
순간 등골이 오싹한게 머릿속에서 위험 신호가 마구 울려퍼졌어. 그러나 스티브는 토니가 위험 신호를 눈치채고 도망치기전에 더욱 단단히 토니를 안아든채 어느새 엉덩이까지 마음껏 주물러보였어. 토니가 기겁하며 팔짝 뛰었어. 스티브는 너무도 순수한 얼굴로 밝게 웃었어.
"그럼 이제 내 소원을 들어줄 차례로군."
"뭐, 뭐? 소.. 소원? 그게 무슨 소리야? 소원이라니?"
"저번에 자네가 그러지않았나? 한번이라도 내가 이기면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겠다고."
"내가 언제 그런 소리를..?! 히익! 자, 잠깐만! 잠깐 엉덩이 좀 주무르지말아봐! 아프다고!"
"토니.."
스티브는 토니의 목덜미에 입을 갖다대었어. 그리고 그동안 기다려온 먹이를 마침내 손안에 넣은 맹수는 만족스럽게 으르렁거렸어.
"내가 이겼네."
그대로 토니를 어깨에 둘러맨채 스티브는 유유히 쉴드를 빠져나왔어. 토니의 비명 소리가 쉴드 내 멀리멀리 퍼졌지만 쉴드 요원들은 어떠한 움직임도 보일수 없었어. 굶주린 맹수에게서 먹이를 빼앗아가는 행동은 자살행위라는걸 아는 현명한 태도들이었지.
단지 스티브가 이길 수 있도록 일등공세를 한 콜슨만이 지금 일어난 일과 방금전 자신의 달리기와의 연관성을 찾다가 결과를 도찰해내었는지 곧 절망의 비명을 내질렀어.
후에 스티브는 너무도 밝아진 얼굴로 콜슨에게 감사의 의미로 자신의 트레이닝 카드에 싸인과 더불어 기념사진들을 찍어주었어. 정확히 스티브가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는 모르나 그날 자신의 마음까지 모두 고백하는데 성공한 스티브는 얼마뒤 토니와 함께 쉴드를 다정하게 손을 잡고 나타났고, 시간이 지날수록 엉덩이와 허리를 부여잡는 시간이 많아진 토니는 콜슨을 원망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곤 하였어.
콜슨은 그저 이유모르고 뜀박질을 해댄 과거의 자신을 후회하며 눈물을 삼킬뿐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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