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토니 스타크가 빌런 빔에 맞아 199999 지구로 떨어진 사건이 흐른 지 약 3년 정도가 흘렀다. 알콩 달콩 지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지언정 나름 한 달간 티격태격 사이좋게 지냈건만 세 명의 토니 스타크들은 짜기라도 한 듯 서로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서로의 세계로 갈 수 있는 기술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계를 만들어 굳이 찾아가려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스타크가 마지막 헤어지기 전 몇 번이고 강조한 다른 평행 세계와 엮이면 골치만 아프다는 이야기가 한 몫을 하기도 했다. 안 그래도 자기네 세계일로도 눈코 뜰 새가 없건만 단지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기계를 만들어 찾아갈 정도로 세 토니 스타크들은 섬세하지 못했다.
물론 한 두 번 아, 그러고 보니 내 쪽 세계의 이런 상황에서 다른 토니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 녀석들은 잘 지내고 있긴 하겠지? 한 소소한 안부정도의 궁금증 정도는 느꼈지만 굳이 찾아 가야 한다는 생각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그렇게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마인드로 세 토니는 각자의 생활들에 익숙해져만 갔다.
그러니 이번에 이들이 다시 만난 이 사건은 정말로 의도치 않은 두 번째 사고에 의한 것이었다.
분명 앤서니가 기억하는 마지막 기억은 토르와 함께 로키를 상대하던 것이었다. 아니, 솔직히 상대하던 것은 토르 혼자고 앤서니는 넋 놓고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앤서니는 자신의 실험실을 개판으로 만드는 두 사람을 진작에 포기하고 아스가르드 두 왕자님들의 싸움을 구경만 하였다. 어차피 아무리 앤서니가 울상을 짓고 말린다 하더라도 저 두 사람의 귓구녕에 들어갈 리가 만무한 일이었다.
그러던 중 로키가 골렘들을 소환하였고, 거기서부터 그들은 뭔가 기시감을 눈치챘어야만했다. 분노한 토르가 망치를 내리치는 순간 웃음 짓던 로키의 모습에서 불길함을 말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로키의 마법은 무언가 잘못되고 말았다. 분명 골렘의 가슴에 박힌 마력석이 부서진 순간 연구실 전체를 감싸듯 강한 빛이 뿜어졌다. 토르는 그제야 로키가 또 무슨 장난을 친 사실을 깨달곤 몸을 긴장하였지만 빛이 다 사라질 때까지도 마법이 발동된 건 없었다. 그냥 단순히 빛만 난 것이었다. 어이없는 이 상황에 로키도 당황하여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였고, 결국 상황은 로키가 날아오는 묠니르에 맞아 나뒹구는 것으로 끝 맺힐 수 있었다.
앤서니는 괜한 소동을 피워 미안하다는 토르의 사과를 뚱하게 받다가 문득 다 부서진 골렘 쪽에 호기심을 가졌다. 마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픈 연구자의 혼이 들끓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앤서니는 토르가 한눈을 판 사이 골렘의 곁으로 다가갔고, 부서진 마력석에 손을 대었다.
그 다음 그에게 펼쳐진 일은 커다란 암석들로 이루어진 어딘지 모를 곳으로 떨어져 거의 3년 만에 보는 토니가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토니가 앤서니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벙찐 얼굴로 물어왔다.
“여기가 어디야?”
앤서니가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대꾸하기도 전에 하늘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떨어졌다. 어마어마하게 큰 뱀 꼬리였다. 지면을 부수며 떨어진 뱀 꼬리 때문에 근처에 있던 땅들이 모두 갈라졌고, 토니와 앤서니는 기겁하며 그 자리에서 도망을 쳤다.
아머도 없는 상태로 완벽한 평상복 차림의 두 토니는 겨우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가쁘게 숨을 내쉬던 토니는 땀을 닦아내며 성질을 부렸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저 거대 구렁이는 대체 또 뭐고?”
앤서니도 제발 나도 그걸 좀 알면 좋겠다며 진심 어리게 외쳤다. 토니는 절망적으로 토르를 부르짖었다.
앤서니와 비슷하게 토니도 주된 원인은 아스가르드의 두 왕자님들에 의해서였다. 제인이 왜 화가 난건지 모르겠다며 토니를 찾은 토르는 그녀에게 사과의 의미로 멋진 반지를 주고 싶어 했다. 토니가 무슨 아스가르드의 드워프라도 되는 것 마냥 원석을 잔뜩 챙겨 온 뻔뻔한 부탁에 토니는 툴툴거리면서도 특이한 원석들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반지만 만들어준다면 나머지는 다 가져도 된다는 토르의 말에 토니는 남은 원석들로 새롭게 만들 수 있는 기계들 생각에 결국 반지를 세공해주기로 받아주었다. 어차피 기분도 안 좋았는데 심심풀이로는 딱이라 생각한 토니는 토르가 가져온 원석들 사이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원석들 안에는 로키가 몰래 넣어둔 원석이 숨겨져 있었고, 상황은 현재에 이르렀다.
그때 또 다른 뱀 한마리가 토니와 앤서니를 발견하고 큰 주둥아리를 벌리며 달려들었다. 거의 산만한 크기의 위협적인 뱀의 공격에 두 영웅은 답지 않게 비명을 내질렀다.
그 순간 하늘에서 벼락이 치더니 무언가 강하게 뱀의 머리를 내리쳤다. 콰광! 한 소리와 동시에 뱀의 머리가 터져 사방으로 피비를 내렸다.기겁할만한 그로테스크한 장면에 토니와 앤서니가 아무런 말도 못한 채 부서진 뱀의 머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어마어마한 거구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흩날리는 긴 금발머리와 독특한 갑옷은 두 사람에게 익숙하였지만 사람이 맞기나한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엄청나게 우락부락한 사내의 모습은 공포스러워 낯설게만 느껴졌다. 사내는 묠니르를 집어 들고 천천히 두 토니에게 다가왔다. 그 포스가 너무도 무서워 두 토니가 얼떨결에 도망가려는 기색을 보이자 사내는 지체 없이 묠니르를 날려 마치 도망가면 저 뱀 꼴을 내주겠다는 식의 협박을 했다. 토니가 침을 꼴깍 삼키며 힘겹게 사내의 이름을 불렀다.
“…토르…?”
자신을 알고 있다는 듯 한 토니의 말투에 토르는 굵직한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바로 앞까지 토르가 서자 멀리서 보던 것 이상으로 큰 덩치에 두 토니는 주눅이 들었다. 토르가 두 토니의 멱살을 잡아들어 올렸다. 건장한 체격의 두 남자를 아무렇지 않게 각 한손에 든 토르는 이를 들어 내며 분노를 표출했다.
시빌 워는 많은 것들을 앗아갔다. 동료들 간의 신뢰는 떨어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쳐나갔다. 그리고 그 죽음 중에는 캡틴 아메리카의 죽음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스티브 로저스는 다시 돌아왔고, 그들은 이미 망가질 데로 망가진 세계를 더 이상 내버려둘 수가 없다 판단 내렸다. 더 이상 무엇이 옳고 그르다의 판단은 옳지 못했다. 이제 그들은 그 날의 악몽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움직여나갔고, 시빌 워의 악몽은 그렇게 모두의 기억 속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로저스가 돌아온 후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결국 다시 화해에 성공한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은 예전의 어벤져스 생활을 이어나갔다. 옛날처럼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들은 서로의 문제를 고치고자 노력하였고, 끊어질 뻔 한 친구 관계를 다시 맺어나갔다. 그러나 과거는 흔적이 남 듯이 모두가 잊으려한다 하더라도 한번 일어났던 사건은 쉽게 잊혀 질 수 없는 법이었다. 그저 모두가 그 사건에 입을 다물 뿐이었다.
스파이더맨은 지루하게 TV 리모컨을 넘기며 길게 하품을 했다. 스파이더맨 못지않게 평화가 지루한 다른 히어로들 역시 다를 바 없는 무료한 얼굴로 소파에 늘어져있었다. 운동을 하고 왔는지 수건을 목에 걸친 채 홀에 들어선 로저스는 그런 동료들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매일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면서도 막상 평화로운 나날이 지속되니 하나같이 축축 늘어지는 꼴들이 제법 우스웠다. 로저스는 거실 홀에 모여 있는 인원들 중 스타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파이더맨을 불렀다.
“토니는?”
“몰라요. 연구실에 있나?”
로저스는 그런가… 한 마음에 슬쩍 연구실로 발을 옮기려했다. 그때 여전히 심심하다며 리모컨을 만지던 스파이더맨이 갑자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스파이더 센서가 미친 듯이 울리고 있었다. 다른 어벤져스 멤버들이 살짝 신나하는 기색까지 보이며 뭐야, 뭐야? 뭐가 일어 날거 같은데? 하면서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 순간 타워에 창문이 와장창 깨지며 안으로 무언가 들어섰다. 잔뜩 기대하고 있던 어벤져스 멤버들은 곧 들어선 상대를 보고 실망했다.
“뭐야, 토르잖아. 그런데 손에 들고 있는 걔넨 뭐야?”
토르는 대답 하지 않은 채 로저스를 바라보았다.
“스타크는 어디 있지?”
“…그건 왜 묻는 거지?”
화가 난 듯 한 토르의 모습에 로저스가 몸을 긴장시켰다. 토르는 여전히 입을 굳게 닫고는 자신이 들고 온 두 짐 덩어리를 어벤져스에게 던져 보였다. 어벤져스 멤버들은 어안이 벙벙하다고 해야 할지 놀랍고, 무서워 떨고 있다고 해야 할지 모를 복잡 미묘한 두 남자를 둥글게 모여 내려다보았다. 어딘가 비슷한 분위기와 수염모양에 누군가를 떠올린 스칼렛 위치가 중얼거렸다.
“토니 스타크?”
토니와 앤서니는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괴팍한 코스프레 집단의 모습에 똑같이 동그랗게들 눈을 떴다. 8096 지구에서와 비슷한 복장인 듯 싶으면서도 그걸 입고 있는 이들 하나하나가 그 위압감이 너무도 다르게 느껴졌다. 어벤져스 멤버들은 신기한지 토니들에게 손을 뻗어 보았다.
“음…. 뭔가 토니랑 닮은 거 같은데….”
“잠깐. 어, 어딜 만져! 이거 안 놔?!”
아머도 없이 강제로 하늘을 날아야했던 토니가 추위에 잘 열리지 않는 입을 달달 떨며 다가오는 손들을 쳐 반항했다. 제법 앙칼진 그 모습에 어벤져스 멤버들도 더 이상 쉽게 손을 뻗지는 못했다. 대신 자넷이 모포를 구해와 두 토니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모포를 꼭 끌어안으면서도 주변을 잔뜩 경계하는 토니와 앤서니를 보며 토르가 뿌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갈았다.
“이젠 자기 자신의 클론까지 만든단 말인가….”
시빌 워 때 스타크가 토르의 클론을 만든 일을 떠올리며 토르는 당장에라도 스타크의 얼굴에 묠니르를 날릴 기세를 뿜었다. 지난 과오를 잊지 못하고 다시 한 번 같은 일을 저지르려하다니, 어리석다고 읊조린 토르는 다시 한 번 로저스에게 스타크의 행방을 물었다. 그때 로저스가 대답하기 전에 앤서니가 끼어들었다.
“아니, 잠깐. 저, 누, 누가 누구의 클론이라고요?”
“…자네들은 대체 누구지?”
로저스가 살짝 몸을 숙여 질문하자 토니가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보면 몰라? 토니 스타크! 천재, 억만장자, 플레이보이…, 엣츄! 젠장. 여긴 대체 어디 길래 뭐 이렇게 쫄쫄이 매니아들이 넘쳐나는 거야? 맘대로 사람을 들고 하늘을 날지 않나. 오, 이런 나 토할 거 같아. 롤러코스터 연속으로 20번 넘게 탄 기분이야.”
토니가 과장되게 토할 거 같은 시늉을 하자 그 꼴이 조금 걱정이 됐는지 로저스가 토니의 등을 쓸어주었다. 토니는 건들지 말라고 짜증을 부릴까도 했지만 제법 그 손이 진중하고도 익숙하여 쉽게 피하지는 못했다.
그때 소란의 중심 속에서 스타크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등장했다. 스타크는 둥글게 모여 있는 어벤져스 멤버들의 모습에 황당한 시선을 보냈다.
“뭐하고 있는 거야?”
토르가 스타크에게 금방이라도 달려들듯 몸을 움직이려는데 그보다 토니의 목소리가 더 빨랐다.
“스타크! 도와줘! 이 이상한 놈들 좀 어떻게 떨어트려봐.”
토니의 아는 체에 모든 어벤져스 멤버들이 스타크를 바라보았다. 스타크는 어딘가 익숙한 그 목소리에 성큼성큼 멤버들을 헤치고 중심부를 확인했다. 아까보다도 더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단 얼굴로 스타크가 토니와 앤서니를 쳐다보았다.
“토니? 앤서니? 뭐야, 니들이 여긴 어떻게 있는 거야?”
토니와 앤서니는 누가 먼저랄 세도 없이 와락 스타크에게 안겨들었다. 마치 도와달라는 듯 스타크의 뒤에 숨은 토니와 앤서니는 다른 어벤져스 들을 경계했다. 스타크는 그런 두 토니의 행동에 잠시 당황하다가 곧 어벤져스 멤버들과 두 토니를 번갈아보더니 납득했는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재회 인사치곤 우리 쪽 환영인사가 조금 격했던 모양이군.”
근 3년 만에 세 명의 토니 스타크가 다시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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