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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지/우리는 너의 비밀을 알고 있다.

[스팁토니] 우리는 너의 비밀을 알고 있다(2)

쓰러진 이들을 모두 대조해본 나타샤는 신속히 쉴드에 연락을 취했다. 예상한 대답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확인해본 결과, 모두 최근 사라진 실종자들이 맞아.”

“혼자서 벌인 일치고는 상당히 일을 크게 벌려놓았네.”


도심에 나타난 돌연변이 괴물을 쫒아 추적하던 것이 빌런의 연구시설까지 발견하게 될 줄이야. 심지어 실종자들까지 찾아내다니 클린트는 어쩐지 일이 잘 풀린 거 아니냐며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기에는 실험을 자행한 빌런은 이미 도망친 뒤였기에 끝 맛이 찝찝할 수밖에 없었다. 


실종자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아이들의 상태부터 확인하던 스파이더맨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괜찮을까요?”

“글쎄, 일단 외관상으로는 다친 곳이 없다 해도 좀 더 정밀히 확인해봐야겠지. 녀석도 이유 없이 사람들을 납치해온 건 아닐 테니 말이야.”


이렇게 비밀리에 숨겨진 시설에서 아무런 상처 하나 없이 감금만 되어있었다니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분명 그들이 모르는 무언가 실험이 이뤄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지금은 정확한 판단이 어려웠기에 신속한 검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벌써 성인 남자 셋을 어깨에 짊어진 토르가 두 사람 사이를 성큼성큼 지나가 보였다. 이 많은 수의 사람들을 이송하려면 토르나 헐크처럼 움직여 나가야 할 것이었다. 마지막까지 상황을 확인하던 스티브는 토니에게 통신을 넣었다.


“아이언맨. 실종자들은 모두 찾았네.”

[그거 다행이네. 마침 나도 이쪽에서 다른 것들을 좀 찾아냈거든. 와스프. 이쪽에 이것들도 좀 봐줄래?]

[토니. 나 정말 이럴 때마다 네가 미워지는 거 알아?]

[알아, 알아. 나도 사랑해.]


통신기 너머로 자넷의 한숨 소리와 함께 포르르 날개 짓 소리가 들려왔다. 스티브의 미간이 깊어져갔다. 실종자들을 찾았다는 무전을 듣고 모여든 어벤져스들과 달리 토니와 자넷 쪽은 빌런의 연구 자료를 찾아낸 모양이었다. 토니는 스티브가 더 뭐라 하기 전에 재빨리 말을 이었다.


[자동 데이터 파괴를 시도해놔서 일부밖에 복구를 하지 못했어. 당장이라면 이 정도로도 파괴된 부분을 추려낼 수 있어. 금방이면 끝나.]


어느 정도 갈피를 잡아야 치료제를 만들든 그 목적을 알아낼 수 있을 터 였기에 토니는 냉정하게 자료들을 놓치지 않았다. 결국 토니의 고집을 내버려둔 채 스티브는 일단 실종자들의 수송을 우선하기로 했다. 그 순간, 비전에게 들쳐지고 있던 한 남자가 눈을 번쩍 떴다.


“아아악!”


남자는 머리를 붙잡으며 비전을 밀쳐내듯 몸부림을 쳤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벤져스들은 몸을 긴장시켰다. 남자는 한참을 몸을 비틀다가 이내 무릎을 꿇더니 곧장 비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내가, 내가 죽였어요!”


그는 거의 침을 뱉으며 처절히 울부짖었다. 


“존, 내 친구 존은 내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에요! 내가 그 친구에게 조금만 관심을 두고 있었더라면 그는 절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아니, 내가 네 일은 네가 알아서하라 하지만 않았어도…!”


남자는 손을 덜덜 떨며 존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 혼자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존에 대한 이야기가 떨어지기 무섭게 남자의 눈동자가 정신 사납게 흔들렸다. 마치 앞에 있는 이들이 어벤져스이든 누구이든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그리고 루시. 한 달 전 루시가 회사를 그만둔 것도 사실 제가 그녀를 괴롭힌 탓이에요. 그, 그녀와 비교해 전 제 할일도 못하는 것처럼 느껴져 열등감이 생겨 그랬어요. 그래서 일부러 그녀에게…”

“엄마한테 동생을 가지고 싶다 했지만 사실 거짓말이에요! 전 동생 같은 거 하나도 바라지 않았어요! 그저 엄마가 좋아하실 거 같아서 그렇게 말한 거뿐이에요.”

“전 남편의 비서 모니카와 불륜을 저질렀어요! 그녀가 절 꼬신 거라고 매번 절 합리화했지만 사실 처음부터 그녀를 좋아한 건 저였어요.”

“맥 녀석이 마약을 가지고 있다는 걸 들어서 처음에는 위협만 하려 했어요! 그 총에 실탄이 들어있을 거라고는 전 정말로 몰랐어요!”


남자의 고백에 깨어나듯 연이어 다른 실종자들 역시 눈을 떴고 그들은 누가 뭐라 할 새도 없이 시끄럽게 고해성사를 시작해나갔다. 말도 안 되는 광경에 클린트는 질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대체 이게 무슨 일들이야?”

“자백제로군.”


나타샤는 침착하게 자신을 붙잡고 울부짖는 실종자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동공의 상태가 심하게 불안정했다. 약을 사용한 건가. 스파이인 그녀에게 이런 건 낯선 모습이 아니었지만 이런 식으로 많은 수의 사람들이 질문이 아닌 스스로 모든 걸 고백하는 방식은 그녀가 주로 사용하던 자백제와는 다른 방식이었다. 


정보는 곧 무기가 되기 마련이었다. 아무리 강한 자들이라도 숨기고 싶은 비밀들은 있기 마련이었고, 누구라도 자신의 비밀이 이렇게 남들에게 들키는 것은 꺼려할 터였다. 나타샤는 피해망상증에 시달리던 빌런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녀석의 목적을 추측했다.


그때, 목이 쉴 정도로 소리를 지르던 실종자들 중 일부가 몸을 크게 흔들기 시작했다. 그중 어떤 이들은 발작 증세를 보이며 연이어 쓰러져갔다. 다시금 정신을 잃은 것을 확인한 스티브는 황급히 무전을 향해 외쳤다. 


“당장 이쪽으로 돌아오게 아이언맨! 실종자들을 당장 확인해봐야…”

[제길, 토니! 조심해!]


스티브와 겹쳐진 자넷의 목소리를 뒤로 무언가 괴음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둔탁한 것이 벽에 부딪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연구실 내 남아있었던 돌연변이 괴수의 울음소리와 함께 얕은 신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곧 이어 리펄서 빔과 함께 자넷의 외침이 뒤섞이는 무전기 너머 상황에 스티브는 더 듣지 않고 곧장 토니가 있을 방향으로 달려갔다. 


건물 반대편에 있는 것치고 몇 코너를 급하게 돌자 곧 저 멀리 토니가 있을 연구실 방향이 보였다. 스티브는 부서진 벽 너머로 돌연변이 괴물이 토니의 목을 붙잡은 채 들어 올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헬멧이 벗겨진 채 토니의 이마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녹색 연기가 괴물의 입을 통해 토니의 얼굴에 쏟아졌다. 금방이라도 토니의 목을 물어뜯을 듯 이빨이 목가에 닿는 것을 보며 스티브는 방패를 내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방패가 괴수의 얼굴을 강하게 가격했다.


“토니!”


재빨리 자넷이 떨어지는 토니를 받아냄과 동시에 스티브는 거의 날아오르듯 괴물의 머리에 올라탔다. 놈이 움직일 때마다 건물이 무너질 듯 쿵쿵 흔들렸지만 스티브는 끈질기게 목을 졸랐다. 곧이어 어벤져스들의 합류가 이어졌다.


“토니. 정신 차려봐. 내 말 들려?”


잠시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던 토니는 자넷이 뺨을 두드리자 이내 숨을 몰아쉬듯 거칠게 기침을 해대었다. 막혔던 숨이 풀리며 공기가 폐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바닥에 이마를 댄 채 숨을 내뱉던 토니는 무언가 하얀 점들이 시야를 가려가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산소가 부족한 것과는 다른 의미로 머릿속이 어지럽게 빙빙 돌았다. 희미한 환청이 그에게 무엇인가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토니. 정신이 드나?”


어느새 돌연변이를 제압하는데 성공하고 상태를 확인하러 달려온 스티브의 목소리에 토니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푸른 눈동자가 흐릿함을 내비치는 것을 본 나타샤의 눈썹이 찌푸러졌다. 벌어진 입술과 탁해진 시야로 잠시 천장만을 바라보던 토니는 느리게 스티브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토니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뱉어졌다.


“…6주야.”

“뭐?”


스티브가 토니의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토니는 갑자기 스티브의 팔을 꽉 붙잡았다. 강하게 움켜쥔 힘이 아이언맨 수트 탓에 아프게 조여 왔다. 무슨 짓이냐며 스티브가 반응하기도 전에 토니의 얼굴이 바싹 들이대졌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그의 표정에 스티브는 몸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캡. 내가 의도한 게 아니었어. 처음에는 나도 자네를 위해 지울까 생각도 했지만…. 차마, 내 손으로 그럴 수 없어서 이 지경까지 되고 말았어. 정말 미안해.”


횡설수설하는 토니의 말에 스티브는 이해할 수 없지만 본능적으로 긴장감을 느꼈다. 토니의 중얼거림이 끝없이 이어지는 동안 스티브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나타샤는 스티브를 밀쳐내고 먼저 토니의 동공 상태부터 확인했다. 역시나 방금 전 실종자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분명 돌연변이의 입에서 나온 가스를 흡인한 탓이겠지. 약물이 아닌 자백제를 가스화로 만들었다니. 잠시 맡았을 뿐인데도 이 정도의 반응인데 만약 대도시 한 가운데서 테러라도 터졌더라면 대대적으로 난리가 났을 터였다.


다행히 그 전에 빌런의 연구소를 이렇게 저지하는데 성공했다지만 이미 소량의 가스를 흡인한 토니는 자기가 가진 가장 큰 죄악을 숨길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실낱같이 남은 이성이 물길을 막듯 말투는 어쩐지 빙빙 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숨겨진 의미를 이들 중 그 누구도 정말로 모른다 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결국 참다 못 한 나타샤가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누구의 애야?”


그녀의 질문에 아무도 반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토니의 떨리는 입술에 시선이 꽂힐 뿐이었다. 짧지만 긴 침묵을 뚫고 토니는 자신의 배를 감싸 안았다. 


“스티브 자네 아이를 가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