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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지/우리는 너의 비밀을 알고 있다.

[스팁토니] 우리는 너의 비밀을 알고 있다(3)

“차라리 데드풀의 결혼식을 두 번 보고 오는 편이 낫지.”


로건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시가만 뻑뻑 피어대었다. 독한 시가 냄새에 참다못한 캐롤이 나가서 피우라 소리를 질렀지만 로건은 꿋꿋이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이들 중 심각한 표정을 하지 않은 이가 없었지만 그 누구도 자리를 벗어나려는 이는 없었다. 


특히 스티브는 연구실 방향에서 시선을 떼는 일이 없을 정도였다. 그때, 마침내 연구실 문이 열리고 리드가 나오자마자 스티브는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 다가갔다.


“상태는 어떤가?”

“괜찮아. 약물을 알아본 결과, 단순 자백제 역할 외에 큰 문제는 없었어. 다른 실종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약 성분이 떨어져 일시적으로 발작이 온 것뿐이야.”


일생을 다 바쳐 만든 약물치고는 효과가 옅었다며 리드는 가볍게 대꾸했다. 하지만 리드의 대답에도 어벤져스들은 그의 다음 말을 조급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선의 의미를 모를 리 없는 리드는 그답지 않게 난처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뒷말을 이었다.


“다만….”


리드는 토니가 있을 병실 방향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들처럼 토니 역시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못하겠지.”


빌런이 만든 약은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아니었다. 일종의 자백제를 가스화 시킨 것을 제외하고는 리드같은 천재 입장에서 보더라도 조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 상황에서 녀석의 허술한 약물은 의외의 결과를 만들고 말았다. 


발작 증세가 끝나고 나면 한참 뒤 정신이 든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공통점을 보였다.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도, 자신이 빌런에게 납치당했다는 사실 전후조차 완전히 사라진 것이었다. 앞선 실종자들이 똑같은 증상을 보인다면 토니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을 터였다.


“아, 머리 아파. 왜 미치광이 과학자란 놈들은 하나같이 만드는 것들이 다 저런 이상한 것들뿐인 거야?”


클린트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짜증을 부리자 다른 어벤져스들도 누가 먼저라 할새 없이 빌런에 대해 욕지기들을 섞어대었다. 어쩜 이렇게 일을 복잡하게도 만드는지 참 재능일 지경이었다. 


스티브는 초조하게 리드를 붙잡았다.


“아이의 건강에는 문제가 없는 건가?”

“…일단은 이상이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추후로 어떤 반응이 나올지는 솔직히 나도 확답을 할 수는 없어.”


리드는 과학자이지 신이 아니었다. 어떤 경우라도 1% 확률이 어떤 결과를 유추할 수 있는지 잘 아는 이였기에 리드는 대답을 신중히 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과 달리 재빨리 수가 끼어들었다.


“그래도 지금 아이는 건강해.”


리드와 함께 토니의 상태를 확인했던 수가 뭐라 말하려는 리드의 입을 막은 채 스티브에게 사진 하나를 건네었다. 초음파 사진에는 아이라고 할만 한 형태보다는 작은 반지모양으로 동그란 알맹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경이롭다는 얼굴들을 지어보였다. 


수가 애기 집도 정상적이었고 심장소리까지 잡음 없이 씩씩하다며 안심시키자 스티브의 표정이 더욱 묘하게 바뀌었다.


“토니 스타크가 임신이라….”


한참을 사진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루크가 정말로 토니가 임신했다는 사실에 실감하듯 신기함을 내비쳤다. 다른 이들 역시 뒤늦은 감탄사들을 이어갔다.


“그 작자가 아이를 가진다니 뭔가 상상이 안가네.”

“그것도 캡틴의 아이라니. 이 애는 태어나자마자 놀랄 일이 대체 몇 개나 되는 거야?”

“그런데 스타크 알파 아니었어?”


클린트의 물음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스티브에게로 향했다. 스티브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해보였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어보였다. 딱히 토니가 숨기려던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어벤져스들 일부도 이미 알고 있던 사실 중 하나였다.


익스트리미스는 베타였던 토니의 성질을 변화시켰고, 알파이면서 동시에 오메가 성질까지 보이는 등 이변적인 모습을 보였다. 토니는 매번 변화는 자신의 수치를 확인하며 그 어디에도 자신이 소속되지 못하게 되었다며 자조 섞인 농담을 하기도 하였다. 그중에서도 오메가 성질은 열성에 가까웠기에 가끔 있던 히트사이클마저도 약만으로 조치가 가능해 토니에게 오메가 성을 붙인다는 것은 조금 애매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스티브와 교제를 시작하면서부터 토니는 만약이라는 상황에 항상 대비를 해두었다. 언제나 챙겨 먹던 피임제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콘돔을 상비한 채 자신만만하게 웃던 토니를 떠올리던 스티브는 작게 읊조렸다.


“필라델피아….”


딱 한번이었다. 그날의 토니는 유독 섹시한 얼굴로 허리를 비틀며 스티브의 이름을 애타게 불러대었다. 스티브 역시 그런 토니의 부름에 호응하듯 거침없이 목덜미에 이를 세웠다. 


토니의 신음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그리고 비상용과 추가 비상용마저 다 쓴 채 그들은 이번 한번만이라 되내이던 자신들의 행동에 결과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항상 챙기던 준비성에 단 한 번의 실수를 한 것이었다. 


“두 사람의 실수 이야기는 궁금하지 않으니 더 이상 말하지 마. 상상 가니까. 어쨌든 지금 중요한 상황들부터 확실히 정리를 좀 하자.”


대충 상황을 파악한 나타샤는 어벤져스들을 돌아보았다.


“스타크가 임신했어. 그것도 6주차. 아이 아빠는 캡틴 아메리카가 분명해. 여기서 우리는 그에게 뭐라고 반응해야할까?”

“아이를 가진 걸 축하해준다?”

“100% 도망갈 거야.”

“어, 그럼 보스 입으로 말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준다?”

“기회를 보다가 자기 혼자 이상한 생각에 빠져 몰래 도망가겠지. 지금 스타크가 도망치지 않고 여기 있는 건 그냥 도망갈 각을 재고 있는 것뿐이라고.”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을 터였다. 클린트는 골치 아프다는 듯 끙 소리를 내었다. 생각지도 못하던 아이의 존재와 그 아이를 가진 당사자가 토니 스타크라니…. 일이 너무 복잡했다.


“우리는 모른 척 하고 캡틴이라도 아는 척을 해주면 되지 않아?”

“뭐라고 아는 척을 해? 기뻐해?”

“내가 장담컨대 도망친다.”

“같이 미래를 꿈꾸자고 하는 건 어때? 천천히 시간을 들여 스타크를 설득하면… ”

“그건 스타크 성격 상 아머 타고 멀리 도망친 뒤 잠수부터 탈거다. 옛날에 캡틴이 스타크한테 고백했을 때 기억 안나? 그때도 그 난리를 피웠는데 이번에는 오죽하겠어.”

“아니, 애초에 지금 이거 선택 사항의 결과가 도망 외에는 없는 거야?”


평소 토니의 성격을 아는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똑같은 대답을 생각할 터였다. 토니 스스로 스티브에게 솔직하게 임신 사실을 알려준다? 그런 게 가능했다면 토니 스타크가 아니었겠지. 어디로 튈지가 더 다방면의 재주를 보여줄 작자였기에 자신의 임신 사실을 다른 이들이, 그것도 스티브가 알게 되었다는 걸 깨달으면 토니의 반응은 하나같이 똑같을 것이었다. 


그때 지금껏 말이 없던 스티브 쪽을 본 자넷이 진지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스티브. 토니가 당신 아이를 가졌대요. 지금 솔직히 무슨 생각부터 들어요?”

“난….”


처음 토니의 입에서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들은 순간 스티브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어쩌면 처음 토니와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정해진 걸지도 몰랐다. 언제나 토니를 볼 때마다 느끼던 생생한 감정들 사이 새로운 생명체가 생겨난 것이었다. 스티브는 자신과 토니를 반씩 닮았을 아이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땡. 2초 걸렸어. 이건 분명히 도망칠 거야. 최소한 수트 입고 우주로 간다.”

“오해란 오해는 충분히 하고도 남을 시간이지.”

“더 한 짓도 충분히 할 놈이야. 절대 찾지 못하게 우주의 시공간으로 떠날걸.”

“아니, 오해 이전에 지금 스티브 표정만 봐도 뭘 할지 답이 나오잖아.”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어벤져스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황에서 스티브의 생각은 그들이 굳이 정신적 데미지를 입으면서까지 들어야 할 정도로 예상이 불가능한 대답은 아니었다. 아이 아빠의 결정이 확실하다면 지금 중요한 건 스타크 그 작자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해결책뿐이었다.


“에이, 아무리 보스래도 임신한 상태로 우주로 도망가겠어요?”

“정말로 안 갈 거라고 생각해?”

“그럼 난 다른 차원의 지구를 열어서 다른 토니 스타크들을 만나 숨겨 달라 한다에 내 지갑을 걸겠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 게 더 짜증난다.”

“지금 내 표정이 어떻지?”

스티브가 슬쩍 수에게 묻자 수는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잠시 주저하였다. 그러다 결국 솔직하게 답해주는걸 선택하였다.

“너무 좋아 당장에라도 토니를 끌어안고 빙글빙글 돈 다음에 결혼하자 반지부터 꺼내들 거 같은 표정이네.”

“…….”


수는 스티브가 자신의 입가를 더듬는 것을 모른 척 해주기로 하였다. 처음 아이에 대해 들었을 때조차 눈을 빛내던 스티브의 눈빛을 어벤져스들 모두가 모를 리 없었다. 적어도 토니가 지금 스티브의 표정을 본다면 그들이 예상하는 돌발 행동들을 백퍼센트 할 것이 분명했다.


“이건 캡틴의 문제라기보다는 애초에 상대가 토니 스타크라는 것부터가 문제잖아.”


계속되는 토니의 예상 행동이 전부 도망치거나 숨는 거뿐이라는 사실에 짜증 섞인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머리를 쓰고 달래주어도 임신을 한 토니 스타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만큼은 말이었다.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토니를 제압하는 게 가능한 이답게 스티브는 어벤져스들의 만약이라는 방법들을 모두 곰곰이 생각해본 후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솔직히 그가 아이를 가졌다는 게 너무도 기쁜 건 사실이지만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건 토니의 의견이야.”

정공법으로 토니를 설득(?)하는 것은 처음 고백했을 때의 경험이 있기에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그런 식으로 해서는 정말로 알고 싶은 걸 알 수가 없게 되고 말 것이었다. 처음 토니의 이름을 부르며 사랑한다 속삭일 때처럼 스티브는 토니의 마음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다.

“난 토니가 정말로 아이를 낳고 싶은지 알고 싶어.”


지우려고 했는데 차마 그러지 못해 이 상태까지 갔다는 토니의 말은 무슨 의미였을까. 아이에 대한 감정 때문에? 아니면 그 아이가 스티브 로저스의 아이이기 때문에? 단지 스티브의 아이를 죽일 수 없다느니 하는 이유를 대며 토니 스스로 원하지도 않은 아이를 낳는 것을 스티브는 바라지 않았다. 


만약 토니가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 뒤 얼마안가 곧장 쓰러지지만 않았더라면 알 수 있었을 진실을 궁금해하며 스티브는 초음파 사진을 매만졌다.


“내가 그걸 묻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는 게 아니라 쉽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군.”

“차라리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겠네.”


나타샤는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의 일에 끼어드는 것만큼이나 바보 같은 짓이 없다는 걸 다년간의 경험으로 알고는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둘만 알아서 해결해보라고 하기에는 상황의 스케일이 너무도 크게 벌어져 있었다. 


시빌 워인가 세기의 결혼식인가. 결국 그것을 결정짓는 것은 지금 토니의 뱃속에 있는 아이로 인해 정해지는 셈이었다.


“적어도 우린 지금 스타크가 하는 고민을 미리 알고 있는 거잖아. 스타크가 도망치던, 아이를 포기하던 혼자 사고를 저지르는 걸 나중에 알게 되는 것보다는 백배 나은 입장이란거지.”


최소한 최악으로 가지 않을 대비는 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어벤져스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들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