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네 천재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었다.
그러나 도저히 무엇이 그 원인이었는지 찾기란 쉽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쉴드가 구해준 대체 광석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보았지만 오히려 대체광석을 이용한 부분은 망가지지 않고, 멀쩡하였기에 쉴드의 잘못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스타크의 설계가 잘못된 건 아닌지 스타크와 토니가 싸워댔지만 이전에도 몇 번 어벤져스 일로 평행 세계로 통하는 기계를 만들어봤다는 스타크는 극구부인 했다.
결국 그 어떠한 원인도 찾지 못하자 골치가 아파진 세 토니는 드물게 말이 없어졌다. 그때 지금껏 말이 없던 배너가 하나의 가설을 내밀었다.
“토니가 셋으로 늘어나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스타크와 토니, 앤서니가 무슨 소리냐며 동시에 배너를 쳐다보았다.
“분명 초기 시행 시범 때까지만 해도 기계는 정상적이었어요. 그렇다면 기계자체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그럼 폭발은 어느 순간 일어난 거죠? 생각해봐요. 분명 초기 시행시범 때 기계에 다가간 건 저였어요. 하지만 폭발이 일어나기 바로 전, 기계 가까이 다가간 건 토니와 스타크, 앤서니. 이렇게 세 사람이었죠.”
“그럼 박사의 말은 강제로 평행 세계와의 포탈을 여는 걸로도 모자라 그 장소에 같은 토니 스타크가 셋이나 있음으로서 공간과 시간의 충돌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건가요?”
“아예 불가능한 가설은 아니죠. 스타크가 설계한 기계는 어쩌면 평행 세계를 열수는 있지만 그 제한이 둘까지일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그럼 이번엔 한명이 멀리 떨어져서 순서대로 해보면 되지 않을까? 어느 정도의 거리가 아닌 이상 기계도 폭주하지 않을 테고 말이야.”
“하지만 그러기위해서는 일단 다시 기계를 만들기부터 해야겠죠. 쉴드가 구해준 대체 광석의 여분도 다 떨어진 이 마당에 말이에요.”
“…체류기간이 더 늘어났군요.”
앤서니가 허탈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토니도 온통 엉망이 된 랩 안을 둘러보며 앤서니의 말에 동의했다.
“괜히 작별인사들을 나눈 거 같네. 다시 진짜 집에 갈 때 인사나누기들 어색해졌겠어.”
“일단 쉴드에 다시 광석을 구할 수 있냐고 물어보도록 하죠.”
배너가 허공에 패널을 틀며 쉴드에 연락을 넣었다. 금방이라도 퓨리의 짜증이 들려오는 것<s>만</s> 같은 느낌에 토니가 두 손을 내저으며 돌아섰다. 더미가 더러워진 랩 실 바닥을 낑낑 거리며 치우는 걸 구경하던 스타크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어디 가는데?”
“머리 좀 식히러. 연기 냄새 때문에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야.”
이미 자비스가 랩 실을 전부 환기시켜놓았건만 괜히 너스레를 떠는 토니를 굳이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우울해진 앤서니도 토니를 따라 나섰다.
토니는 랩을 나서자마자 뒷목을 잡고 눈가를 찌푸렸다. 아무리 스타크와 앤서니가 보호해줬다지만 바로 옆에서 일어난 폭발 탓에 귀와 머리가 울리는 기분이었다. 아까 나타샤가 검진을 받아야 하는 게 좋지 않냐 할 때 스티브만 없었더라면 해볼 걸 괜히 후회가 되었다. 안 그래도 최근 스트레스가 최고치에 오른 토니는 이명과 두통이 합쳐지자 금방이라도 짜증이 폭발할 것 같았다. 숨이라도 트면 낫겠지 싶은 마음에 토니는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아, 토니.”
지금 이 순간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스트레스의 주원인인 스티브의 등장에 토니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토니의 속내도 모른 채 스티브는 드디어 대화할 기회가 생겼다는 기쁨에 헤실헤실 웃으며 도망칠 세야 얼른 토니의 손목을 잡았다.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없나?”
“미안. 어… 내가 지금 저 기계를 수리하는 일로 바빠서 말이야. 캡도 알다시피 앤서니랑 스타크가 집에 가고 싶다고 계속 징징거리는데 얼른 보내 줘버려야 하지 않겠어?”
토니는 무슨 개소리여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앤서니에게 도와달라는 SOS 눈짓을 강력히 보냈다. 하지만 앤서니는 그 신호를 냉정히 무시하기로 했다.
“기계 문제라면 걱정 하지 마. 어차피 재료 문제로 지금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 말이야. 그럼 난 먼저 올라가 볼 테니 편하게들 대화 나누도록 해.”
앤서니는 배신감에 자신을 노려보는 토니를 피해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토니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슬쩍 손목을 비틀어 빠져나가려 시도했다. 그러나 스티브는 토니의 손목을 절대 놓아주지 않았다.
“기계에 문제를 찾았나?”
“어…일단은.”
토니는 스티브의 눈을 피하며 계속해서 몸을 틀었다. 손목부근이 벌게지는 지경까지 가자 결국 스티브가 먼저 손을 놔주었지만 스티브는 여전히 토니가 도망갈 수 없게 어깨를 잡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정말 잠깐이면 되네. 토니.”
가까워진 스티브의 얼굴에 토니는 결국 도망을 포기했다. 순순히 토니가 반항을 멈춘 게 느껴지자 스티브는 환하게 웃음 지었다. 그러다 스티브는 토니의 눈가에 아까 폭발 때 묻은 듯 한 검댕이를 발견하고는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뻗어 닦아내었다. 토니가 다시 긴장해 몸을 주춤했다. 단순히 스티브가 검댕이를 닦으려 했단 사실에 토니는 괜히 자신이 예민하게 군 것 같아 부끄러웠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뭔데?”
“지난번 그… 여성분과의 일 말인데….”
“아, 그거? 그냥 그 여자가 먼저 나한테 들이댄거야. 어디 좋은 기사거리 하나 얻어 보려고 용 쓴거지. 괜히 그 일 가지고 잔소리할 생각이라면…”
“그녀가 기자라는 것도, 자네에게 먼저 접근 했단 것 역시 나도 아네.”
차분한 스티브의 목소리에도 토니는 어서 이 상황을 끝내고 싶단 마음에 짜증을 부리듯 말했다.
“그럼 대체 뭐가 말하고 싶은 건데?”
토니의 속눈썹이 굳게 닫히더니 다시금 시선이 돌아갔다. 스티브는 자꾸만 자신을 피하려는 토니의 태도에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조금 세게 쥐었는지 토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날 좀 보면서 말해주게, 토니. 왜 그렇게 자꾸 날 피하나.”
“내가 언제 피했다고….”
“지금도 그러지 않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이가 좋았건만 그날 이후로 나만 봤다하면 피하고 있고. 혹시 내가 자네에게 뭐라 한소리할거란 생각에 그러는 거라면….”
사이가 좋았다고? 댁이랑 내가? 겉으로 웃으면서 속으로는 끙끙 앓아가던 토니는 스티브가 말하는 사이좋았던 기간을 떠올리자 훼까닥 도는 기분이었다. 결국 토니가 스티브의 손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젠장. 대체 뭐가 문제인건데!”
토니가 버럭 지른 소리가 넓은 홀을 울렸다. 너무 놀라 아무런 말도 못하고 눈만 껌뻑이는 스티브를 향해 토니는 얼굴이 벌게진 채 씩씩 거리며 노려보았다. 지금껏 힘겹게 꾹꾹 눌러 담았던 감정이 폭발하듯 쏟아졌다.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대체 나보고 뭘 어떡하라는 건데? 선을 그었으면 확실히 해! 왜 매일 나만 보면 사람 오해하는 얼굴로 쳐다보는 건데? 잔뜩 사람 속을 헷갈리게 해놓고 또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대체 뭐냔 말이야?! 내가 마음에 안 들면 확실히 해! 이런 식으로 엿 먹이지 말라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내가 자네를 엿 먹이다니?!”
“그랬잖아! 뭐가 어벤져스의 동료고, 날 이해하고 받아들여? 내 속도 모르는 주제에 그런 소리 막 하지 말란 말이야!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나한테 다가오지 말라고! 내가 어떤 심경으로 댁이랑 밥을 먹고,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하는지도 모르면서 멋대로 희망을 줬다 뺏었다 하는 게 사람 엿 먹이는 거지, 그럼 뭔데? 내가 우스워? 재미있냐고!”
“토니! 진정하게! 난 한 번도 자네를 가지고 장난친 적 없네. 자네 지금 너무 흥분했…”
“친구? 동료? 좋아. 댁이 좋아하는 그 진정한 동료 놀이 따위 얼마든지 해줄게. 그러니까 제발 날 좀 내버려두란 말이야!”
스티브를 밀치며 토니는 뒤로 물러섰다. 잔뜩 흥분해 씩씩 숨을 내쉬던 토니의 눈가에 서러운 눈물이 고였다. 바보 같고, 한심스러웠다. 그리고 한편으로 여전히 멍청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스티브가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토니는 거칠게 눈가를 비볐다. 당황한 스티브는 토니의 눈물에 시선을 고정 시킨 채 한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토니…“
“다가오지 마.”
토니는 두 걸음 더 뒤로 물러섰다. 머릿속을 웅웅 울리던 두통이 더 크게 느껴졌다. 피가 쏠려서 그런지 머리가 어지러웠고, 속이 울렁거려서 정상적인 판단이 힘들었다.
자신을 완벽하게 거절하는 토니의 모습에 스티브는 가슴이 찢어지는 심정이었다. 무엇 때문에 저리 성을 내는지는 모르나 당장에라도 토니를 품에 안고 싶은 마음에 스티브는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런 스티브의 손마저 쳐낸 토니는 도망치듯 엘리베이터로 달려갔다. 조금만 더 일찍 움직였어도 붙잡을 수 있을 거리였건만 스티브의 행동은 한발 늦었다. 이미 올라가버리는 엘리베이터 숫자를 올려다보며 스티브는 이를 악물었다.
몇 번 엘리베이터 문을 두들겨보았지만 자비스는 침묵할 뿐 절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제대로 알기도 전에 끝이 난 바보 같은 결말에 스티브는 머리를 감싸며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무슨 심정인지 모른다고? 자신의 금발머리를 쥐어뜯는 스티브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스티브는 눈을 질끈 감았다. 방금 전 토니가 외친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머릿속에서 어지러이 뒤섞였다. 토니는 마치 무언가 자신에게 기대했던 것 같은 말투였다. 그리고 그 기대가 무너지자 토니에게 밀쳐진 스티브는 그가 자신에게 기대한 것이 대체 무엇인가 생각했다.
스티브는 바보가 아니었다. 단지 20대 청년은 짧았던 첫사랑 이후 70년 만에 만난 새로운 사랑에 정신이 없었다는 것이 옳았을지도 모른다.게다가 그 대상이 다른 사람이었다면 모를까 토니 스타크라는 상대가 놓인 길은 꼬일 대로 꼬여 험난하기만 한 길이었다. 청년은 꼬인 길을 헤매다 자신 앞에 놓인 장애물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뒤를 돌아보면 언제나 토니가 있었다. 늘상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던 토니였지만 종종 스티브는 그에게서 자신과 같은 의미의 시선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설마 하는 마음에.. 혹시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스티브는 스크린 속 남자에게 다가갈 용기를 내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스티브는 얼마 전 앤서니의 한마디에 희망을 갖기로 했다.
더 이상 스티브는 일어날지도 모르는 미래의 일 때문에 망설이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답을 깨달은 스티브의 푸른 눈이 번뜩였다.
“도와줄까?”
토니가 고함을 지를 때부터 랩에서 나와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스타크가 언제 다가왔는지 스티브 앞에 똑같이 쭈구리고 앉아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토니 스타크는 분명 다른 토니 스타크이것만 그 푸른 눈은 스티브에게 확신을 주고 있었다. 스타크는 익스트리미스로 자비스가 잠가놓았을 최상층을 강제로 열어주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활짝 열렸다. 스타크는 스티브에게 말했다.
“전진하라고. 솔져.”
거의 뛰다시피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은 스티브의 등이 천천히 닫혔다. 스타크는 자리에 일어나지 않은 채 최상층을 향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끝까지 바라보았다. 스티브가 향하는 도착지를 바라보는 스타크의 눈빛에는 질투가 담겨있었다.
잠시 뒤 배너가 차를 끓여 가지고 왔다. 스티브가 자리에 없다는 사실에 만족한 배너는 스타크에게 차를 건네주었다.
“드디어 길고 긴 짝사랑이 끝나는가보군요?”
스타크는 배너가 준 차에 입을 가져다대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스타크의 웃음은 너무도 초라했다. 배너는 그런 스타크의 등이 어울리지 않게 작아 보인다 생각했다. 그가 느끼는 질투를 이해하지만 누군가에게 위로나 상담 같은 거에 재능이 없는 배너는 그저 말없이 스타크의 등을 동정하였다. 조개 중에서도 최고급 아다만티움 합금 조개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앤서니는 소파에 누워 아이스 팩을 이마에 가져다 대다가 갑자기 엘리베이터를 타고 씩씩거리는 토니의 등장에 깜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정말 잠깐 이야기만하고 왔나보네?”
토니는 앤서니를 한번 째려봐줄 뿐 자신의 방으로 쾅! 소리를 내며 들어가 버렸다. 앤서니가 다시 편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려는데 곧이어 방 안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거의 발악하듯 자신의 한심스럽던 모습을 자책하는 쪽팔림의 가까운 비명소리에 결국 앤서니는 한숨을 내쉬며 토니의 방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베개로 자신의 머리를 누른 토니는 뭐가 그리 미치고 팔짝 뛰는지 손발 할 것 없이 침대를 마구 두들겼다.
“또 왜 그러는데?”
“다 망했어! 이제 다 끝났다고!”
눈물을 펑펑 흘리며 토니가 울부짖었다. 아까부터 상태가 안 좋아 보이던 거 같더라니 이젠 얼굴이 벌게져 우는 모습이 조금 걱정이 되었다.앤서니는 자신이 쓰고 있던 아이스 팩을 토니의 이마에 대어주었다.
“이젠 됐어. 나도 지쳤어. 처음부터 될 리도 없는 문제 따위 이젠 나도 포기할거야.”
더 이상의 짝사랑은 심장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토니는 방금 전 한심스럽던 자신의 모습을 몇 번이고 되뇌며 모든 것이 끝났다고 외쳤다. 앤서니는 그런 토니를 한참을 내려다봤다. 잠시 뒤 입을 연 앤서니의 목소리는 꽤 날이 선 목소리였다.
“니가 한 게 뭐가 있는데?”
토니는 울던 것을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앤서니를 쳐다보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앤서니는 지금 기분이 많이 우울했다. 기껏 자신 역시 그랜트에 대한 마음을 깨달아 후회스럽던 과거의 일들과 그에 대한 그리움은 복합되어 앤서니를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어서 빨리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기계에 더 공을 썼건만 결국 그 기계는 지금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망가져버리고 말았다.
최소한 이곳 세계에 넘어오고 나서 토니의 징징거림을 모두 받아주었지만 이젠 그럴 여유마저 잃은 앤서니는 자신 역시 스타크처럼 토니의 어리광을 마냥 받아주면 안 됐다는 걸 깨달았다.
“도대체 네가 한 게 대체 뭐가 있다고 그렇게 멋대로 포기한다 하는 건데? 넌 그냥 기다리기만 하고, 너희 쪽 스티브가 다가오기만 기다리고 있었잖아. 울지 말고 일어나. 도망치지 말고 부딪혀보란 말이야.”
앤서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가기 전 토니를 향해 진심어린 한마디를 더해주었다.
“도망간다고 해결 되는 건 없어.”
토니의 방에서 나온 앤서니는 얼마안가 엘리베이터에서 스티브가 등장하는 걸 보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없이 토니가 있는 방을 가리켜보였다. 스티브가 허겁지겁 달려오자 앤서니는 스티브의 등을 한대 세게 쳐주었다. 제법 매선 손길에 스티브는 잠시 앤서니를 돌아보았지만 곧 다시 토니의 방을 향해 빠르게 전진하였다. 등 뒤에서 앤서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이 안 통하면 행동으로 보여줘 버려.”
두 토니의 응원에 스티브는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벅차올랐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방문을 열어젖힌 스티브는 아직도 앤서니의 말을 곱씹고 있던 토니를 찾아내었다. 스티브는 토니를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토니는 분명 들어오지 못하도록 모두 잠가놓았을 자신의 방에 당당히 침입한 스티브의 등장에 어지간히 놀랐는지 딸꾹질을 했다. 스티브는 토니의 벌게진 눈가를 손으로 쓸었다. 그 행동이 너무도 다정하고 거침이 없어서 토니가 피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난 자네와 친해지고 싶었네. 다른 토니들만큼 가까워지고 싶었고, 동등해지고 싶었어. 캡틴 아메리카라는 칭호를 뺀 스티브 로저스는 토니 스타크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해서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는 자네에게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게 싫었네.”
말을 하며 스티브는 자신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뒤죽박죽 섞이던 머리가 이제야 완벽하게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바보 같은 짓이었지. 그런 것 따위 생각할 틈이 있을 바에 좀 더 자네를 제대로 봤었더라면 됐을 것을.”
스티브는 토니의 손을 단단히 움켜잡았다. 토니는 이번에는 스티브의 손에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내 감정하나 정리하지 못한 마당에 자네가 무슨 심경으로 날 대했는지 신경 쓰지 못한 나를 용서해주게. 토니.”
토니는 코를 훌쩍였다. 늘 상상하던 분위기 있는 자리에서의 낭만적인 고백과 달리 현실 속 토니의 몰골은 온통 눈물, 콧물로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상상 속 장면보다도 눈앞에 스티브는 그 이상으로 빛이 났고, 토니의 감정 역시 그 이상으로 벅차올랐다. 아까부터 머리를 괴롭히던 이명소리는 이제 사라지고 없어졌다. 토니는 스티브의 손을 끌어 자신의 볼가에 비볐다.
“후회할거야.”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스티브는 토니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가져다댔었다. 금방이라도 닿을 듯 가까이 느껴지는 거리에서 두 사람은 눈을 마주했다. 푸른색과 갈색의 눈동자가 상대방을 완벽히 담아내고 있었다. 토니는 배시시 웃었다.
“아니.”
누가 먼저 상대의 입술에 키스하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두 사람은 서로 놓칠 새야 손을 뻗어 강하게 끌어안으며 드디어 상대를 마주보고 탐하는 데에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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