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회지/I won't give up

[MCU+616+EMH 스팁토니]I won't give up(6)

스타크와 앤서니가 199999 지구로 온지 대략 3주가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야 쉴드는 두 토니가 돌아갈 수 있는 기계의 중요 광석들을 모두 구해줄 수 있었다. 616 지구와 달리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광석들에 대체 물질을 찾느라 꽤나 진을 뺐다고 퓨리가 생색을 내었다.

 

스타크의 설계에 따라 천재 과학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꼴을 보며 나타샤는 인정하기는 싫지만 정말 대단하긴 한 놈들이라고 일컬었다. 배너 박사와 세 토니들이 탄생시키는 손짓들은 공학도들이 보았더라면 그 자리에서 신을 찾으며 질투할 정도로 천재성 그 자체의 모습들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저런 발상에 기계를 만들어내는지 그 뇌가 다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기계가 거의 완성단계에 다다를 무렵. 빌런이 뉴욕에 나타났다. 어벤져스 멤버들은 각자의 슈트를 뽐내며 전장으로 달려갔지만 아머를 압수당한 스타크와 앤서니는 빌런이 나타났지만 강제 관람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못내 화가 난 스타크와 앤서니는 계속해서 퓨리에게 항의하였고, 결국 전세가 밀리는 상황까지 치닫게 되자 퓨리도 승인 명령을 내려줄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원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도 있는 두 사람이었지만 나름 평행 세계와의 약속을 지킨다고 아머에 손 하나 까닥할 수 없었던 스타크와 앤서니는 오랜만에 돌려받는 아머의 느낌에 기뻐하며 하늘을 날아갔다.


갑자기 공중에 나타난 두 대의 아이언맨의 등장에 빌런들이 패닉에 빠진 사이 199999 지구에 비해 빌런들의 침공이 잦은 베테랑답게 스타크와 앤서니가 능숙하게 전투에 참여하였다. 토니는 활기차게 뛰노는 스타크와 앤서니의 등장에 조금 볼멘소리로 툴툴거리면서도 보기 좋게 둘과 함께 협공에 나섰다. 기동력 좋은 아이언맨이 셋이나 되는데다가 곧이어 번개와 함께 토르의 등장까지 합세하자 전투는 순식간에 어벤져스의 승리로 끝을 내었다.


쉴드 요원에게 상황보고를 듣고 있는 스티브 근처로 스타크와 토니, 앤서니가 내려왔다. 10대 아이들 마냥 히히덕거리며 서로의 아머에 장난을 치거나 투닥거리는 세 토니의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스티브는 안쪽에서 다른 쉴드 요원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발걸음을 옮겼다.


토니는 앤서니에게 장난을 치다가 바쁘게 다른 쪽으로 걸어가는 스티브를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역시 캡틴 아메리카답게 그를 바라보는 쉴드 내 요원들의 얼굴에는 존경심이 뚝뚝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끼는 한 요원의 표정에 토니는 입술을 비죽였다. 인기 좋네.


, 저기도와주세요.”


그때 뒤쪽 어디선가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에 세 토니는 소리가 난 방향을 쳐다보았다. 금발머리의 꽤나 섹시하게 생긴 여성이 다리를 부여잡은 채 그들을 부르고 있었다. 바쁜 쉴드 요원들보다도 가까운 위치에 있던 토니가 여성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데 앤서니가 작게 속삭였다.


기자야. 전에 내 쪽 세계에서 뭐 하나 건져보겠다고 연기를 하더니 이곳에서도 똑같은 모양이네.”


앤서니의 설명에 토니는 눈썹 하나를 치켜 올려 다시금 여성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곧 능숙하게 웃음을 지어 보낸 토니는 여성에게 친절히 손을 내밀어주었다. 여기자는 섹시한 웃음을 흘리며 토니의 손을 잡고 자리에 일어서려다 아프다는 듯 다시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발목을 삔 거 같다는 여기자의 말에 토니는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가득 띠며 여기자를 부축해주었다.


그런데 이 분들은 쉴드 분들이신 건가요?”


스타크와 앤서니를 향한 질문에 토니는 피식 웃었다. 다행히 스타크와 앤서니 모두 전투 도중 한 번도 헬멧을 벗지 않은데다가 기계 섞인 목소리를 하였기에 설마 저 둘 모두 같은 토니 스타크라는 건 그녀로썬 쉽게 예상하기 힘들었을 것이었다. 토니는 보란 듯이 스타크의 헬멧을 주먹으로 두들겨주었다.


아니. 내 인공지능 자비스가 움직이고 있어.”

하지만 안에 사람이 있으신 것만 같으시던데.”

나와 슈트는 한 몸이야, 아가씨. 내가 토니 스타크 이외에 다른 사람에게 허락 없이 아머를 내줄 거라 생각하는 거야? 실험단계로 가동시켜 본건데 제법 사람 같아 보이지?”


여기자는 수상스러운 눈으로 스타크와 앤서니를 바라보았지만 토니가 이렇게 발뺌하는 이상 강제로 헬멧을 뜯어볼 힘이 없는 그녀로써는 겉으로나마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그녀는 다른 인터뷰로 방향을 틀기로 한 건지 의료반에게 가는 짧은 거리인데도 쉴 새 없이 입을 조잘거렸다.


어벤져스 중 토르의 출동이 늦으시던데 무슨 일 있으셨던 건가요? 전투 중에 호크아이가 블랙위도우를 부축하는 걸 봤는데 세간의 소문대로 두 분이 사귀시는 사이이신건가요? 헐크는 어디로 갔나요? 캡틴 아메리카는.


토니는 요령 좋게 여기자의 말을 장난으로 대충 받아쳐낼 뿐 그 어떤 질문에도 자세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러자 조금 심통이 난 여기자가 토니에게 직설적으로 물어왔다.


페퍼 포츠 양과 헤어지신지 꽤 되신 것 같은데 새로 만나시는 여성분은 없으신 건가요? 혹시 포츠 양을 못 잊으셔서 그러시는 건 아니신지.”

? 아가씨가 나랑 사겨주기라도 해주려고? 이렇게 아름다운 여성분이라면 난 환영인데?”


슬쩍 토니가 여기자의 손등에 입술을 데며 능글맞게 웃어보이자 여기자는 괜스레 콧소리를 냈다. 질문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정말 연기도 어색하고 감정표현을 숨기는데 재능이 없는 여자였다. 토니는 부디 이 여기자가 다른 직업을 구해보기를 진심으로 충고해주고 싶었다. 여기자는 억만장자의 작업이 기분 나쁘지는 않는지 최대한 매력적으로 보이려는 듯 입술을 비틀어 웃어보였다.


이렇게 잘생긴 히어로님의 요청이라니. 상당히 매력적인데요?”

, 내가 한 매력 한다는 건 맞지만 불행히도 우리의 짧은 데이트는 이만인거 같군. 헤이, 거기 요원. 이리와 봐.”


토니가 쉴드 의료차량에 여기자를 앉히며 의료반 요원을 부르자 여기자가 조급해졌다. 제대로 얻어낸 정보도 없고, 이렇게 어영부영하게 넘어갈 수 없다는 생각에 여기자는 조금 격한 방법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갑자기 두 손을 뻗은 여기자는 토니의 머리통을 부여잡았다. 자신 쪽으로 확 끌어당겨 입술을 부빈 한 여기자는 은근슬쩍 토니의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 쪽에 가져다대었다. 앤서니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여기자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는 사실은 불쾌했지만 토니는 손 안에 만져지는 풍만한 가슴과 여기자의 훌륭한 몸매에 그냥 페퍼에게 좀 잔소리를 듣고 말자 싶었다. 아마 근처에서 여기자의 동료가 미친 듯이 셔터를 누르고 있을 거였다.


기습키스 같은 건 꼬꼬마시절부터 수없이 당해 왔던 만큼 토니는 당황하지 않고 여기자의 키스를 적당히 받아주다 떼어내려고 했다그래.단지 스티브가 이 모습을 보고 있지만 않았더라면 토니는 절대 당황하지 않고 이 상황을 잘 대처 했을 것이었다.


앤서니는 끙 소리를 내었다. 하필 타이밍 좋게 쉴드 요원과 이야기를 끝낸 스티브가 토니에게 말이라도 한마디 더 건네고픈 마음에 돌아오던 중 눈앞에 펼쳐진 토니의 키스 장면에 다시 얼음이라도 된 것 마냥 굳어버렸다. 토니는 황급히 여기자를 밀쳐내며 스티브를 불렀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오히려 바람피우다 걸린 사람 모습처럼 더 이상하게 비쳐 보일 뿐이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토니를 응시하던 스티브는 가차 없이 뒤로 돌아갔다. 토니의 얼굴이 하얗게 창백해졌지만 차마 스티브를 따라갈 용기를 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여기자는 토니와 스티브 간의 심상찮은 기색을 눈치 챘는지 눈을 반짝였다.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라. 테러 중 피해자를 성추행한 아이언맨이라는 기사를 쓰려던 여기자는 그보다 더 큰 기삿거리에 대피하지 않고 몰래 숨어있던 보람이 든다고 생각하였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리 위로 그늘이 졌다. 아이언맨이 여기자 앞에 서 있었다. 넋 부랑자가 된 토니를 못 본 척 스타크는 여기자의 손목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너희 쪽 사진기자가 건질만한 사진은 없을 거야. 레이디. 괜히 큰 물고기 건드린답시고 입방정 잘못 놀리면 인생 밑바닥이 어떤 건지 경험시켜주도록 하지.”


소름끼치도록 낮은 협박 목소리에 여기자는 스타크를 올려다보았다. 인공지능이 하는 말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뼈가 시린 어투였다. 익스트리미스를 사용하여 여기자의 신상 읊어낸 스타크는 그녀의 얼굴이 토니만큼이나 하얘지는 꼴을 감상하였다. 맹수가 눈앞에서 발톱을 들이대는 것 마냥 여기자를 잔뜩 협박한 스타크는 가차 없이 뒤로 돌아 걸어갔다. 앤서니는 스타크가 향하는 곳이 멀리 숨어서 셔터를 누르고 있을 사진 기자 쪽 방향이라는 걸 말하지 않아도 눈치 챌 수 있었다.


바보 같은 표정의 토니와 스티브가 사라진 방향을 번갈아 바라보던 앤서니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 역시 가차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현장에 홀로 남겨진 토니를 챙겨준 것은 일이 끝났으니 슈와마를 먹으러 가자는 토르뿐이었다.


 

퀸젯에 올라탄 스티브는 한숨을 내쉬었다. 전투의 피로도가 한 번에 물밀듯이 퍼지는 기분에 스티브는 손등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직 쉴드에 상황보고를 올리지 않은 만큼 상황이 다 끝난 게 아니라는 군인정신이 들었지만 방금 전 충격으로 더 이상 몸을 바로잡을 정신도가 남아있지 않았다.


스티브도 눈치는 있기에 그 여성분이 먼저 토니에게 기습적으로 키스했단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기습키스를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가볍게 받아주던 토니의 모습은 스티브의 뇌에 깊숙이 박혀 머리가 터져버리게 만들고 있었다. 어째서 그는 그렇게 가벼울 수 있는 것일까? 아무렇지 않게 상대를 껴안고 능숙하게 키스하는 토니의 모습은 TV 속 몇 번이고 봐온 유명인사 토니 스타크의 모습 같아 그가 너무도 멀게 느껴졌다. 마치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아오는 것은 스크린뿐이라는 사실을 자각시켜 주는 것만 같았다. 플레이보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토니는 수없이 많은 여자들과 항상 가볍게 만났었다고 들었다. 화려한 여성들과 하룻밤 화끈하게 침대에서 뒹구는 토니 스타크는 스티브와 너무도 어울리지 않았다.


만약에. 만약에 자신이 그에게 고백한다면 토니는 어떤 반응을 할까? 캡틴 아메리카가 게이였냐며 놀리거나 혐오하는 모습을 보일지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그렇지 않고 자신을 받아줘 사귀게 된다 하더라도 자신 역시 그에게 그저 가벼운 파트너일 뿐이라면?


금방 질려버린 토니의 입에서 헤어지자는 말이 나오는 장면까지 상상한 스티브는 우울하게 어깨를 늘어트렸다쉴드 요원들은 캡틴이 이번 전투가 많이 피곤하신 모양이라 생각했는지 몇 번 말을 건네려다가 스티브의 무기력한 대꾸에 그저 내버려주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고는 자신들의 업무에 충실하기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그때 누군가 스티브의 어깨를 쳤다. 스티브는 또 요원인가 한 마음에 조금 짜증난 얼굴로 상대를 쳐다보다가 그 상대가 앤서니라는 사실을 깨닫곤 깜짝 놀랐다. 사실 스타크라면 몰라도 앤서니는 자신만 봤다하면 못 볼 거라도 본 사람마냥 눈도 한 번 제대로 마주친 적 없고, 제대로 된 대화 한번 해본 적이 없었기에 그가 이렇게 먼저 말을 걸어 왔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앤서니가 옆에 앉아도 되냐고 묻자 스티브는 허겁지겁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앤서니가 앉을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퓨리에게 전투가 끝나자마자 다시 아머를 압수하는 것에 동의했기에 앤서니의 차림새는 몸에 딱 달라붙어 정직한 라인을 드러내는 언더아머 차림새였다. 스타크만큼 남자답게 근육으로 돼있는 것도, 토니처럼 말랑말랑한 애기배가 나오지도 않은 앤서니는 얇은 허리라인을 자랑하면서 딱 필요한 마른 근육으로 짜여있었다. 괜스레 앤서니의 차림새를 흘겨보던 스티브는 언더 아머를 토니가 입는다면 어떨 가하는 생각에 곧 고개를 푹 숙였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끙끙거린 게 무색할 정도로 언더 아머를 입은 토니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온 몸이 베베 꼬일 정도로 귀엽고 섹시했다.


상황을 모르는 앤서니는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는 스티브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다가 이름을 불러보았다. 뭔가 나쁜 상상이라도 한 사람마냥 화들짝 놀라는 스티브의 모습에 앤서니는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 이건 변호하는 것도 이상한데. 아까 그 여자 기자야. 가십거리 하나 잡아보겠다고 이쪽 토니에게 접근한 것뿐이니까. 괜히 오해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 오해 같은 건 하지 않습니다. 저도 여성분이 먼저 토니에게 접근하신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예상보다도 빨리 용건이 끝난 앤서니와 스티브 사이 짧게 침묵이 흘렀다. 어색함에 손가락 장난을 치던 앤서니는 스티브의 눈치를 살폈다.

자신의 세계의 그랜트와 달리 조금 체구가 작은 이쪽 스티브는 같으면서도 다르게 느껴졌다. 그래도 전투 때의 캡틴 아메리카 모습은 동일해 보였지만 비전투시의 스티브는 그 분위기가 확 달라보였다. 뭐랄까. 확실히 20대의 면모가 보인다고나 할까?


스티브는 뭔가 대화가 끊기자 어색함에 어떻게든 말을 이어가고자 땀을 흘렸다.


, 그쪽도 저와 많이 친하셨나요?”

? 나랑 스티브 말이야?”


스타크와 마찬가지로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는 앤서니의 반응에 스티브는 씁쓸하게 웃음을 지었다. . 캡시클 등 토니는 스티브를 별명으로만 부를 뿐 단 한 번도 이름으로 자신을 불러준 적이 없었다. 한번쯤 그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듣고 싶다 욕심이 났지만 스티브는 쉽게 용기를 내지 못했다. 앤서니는 잠시 망설이다가 힘겹게 입을 뗐다.


친했었지.”

? 과거형이시네요?”

지금은 사귀거든. 스티브랑.”


이번에는 어디서 헐크가 헐크 스매쉬를 날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앤서니는 충격에 떡 벌어진 스티브의 입을 친히 닫아주며 피식 웃었다. 조금은 여유로워진 앤서니의 웃음이 토니를 연상시켰다.


불쾌해?”

,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좀 놀라서. 그러니까 그쪽 세계에선 저와 앤서니 당신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천하에 캡틴 아메리카랑 아이언맨이 세기의 연인이 되다니 말이야. 닥터 둠이랑 판타스틱포가 같이 휴가를 떠나는 거만큼이나 어이없는 사건일거야.”

, 잠시 만요. 제가 이해가 안 되서 그런데, 방금 말 농담이셨던 건가요?”

아니. 말이 안 된다는 거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아니야. 나랑 스티브 사귀는 거 맞아.”


재차 사귄다는 앤서니의 대답에 스티브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혼란에 빠지더니 어느새 올라가있는 자신의 입 꼬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깨달았다 하더라도 주체할 수 없이 파들거리는 웃음은 좀처럼 가릴 수 없었다. 비웃는 것이라 생각 될까 걱정이 된 스티브가 변명하려했지만 앤서니는 가볍게 대꾸했다.


괜찮아. 너도 이쪽 세계의 토니를 좋아하잖아. 괜히 숨기려 드는 게 더 우스워.”

, 어떻게?!”

그렇게 좋아하는 티를 팍팍 내는데 모르는 사람이 눈치 없는 거겠지.”


스티브는 얼굴을 붉혔다. 좋아하는 게 그렇게 티가 났다면, 그럼 토니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걸까? 그는 눈치가 좋은 인간이니 다른 토니들이 눈치 챈 거라면 당연히 그 자신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 알면서도 그런 태도를 한 것일까? 스티브는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퀸젯을 뛰쳐나가 토니에게 달려가고픈 마음에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런 스티브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 앤서니가 한 발 빨리 대답했다.


그런데 이쪽 토니는 생각보다 무척이나 눈치가 없더라고.”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만 같던 스티브의 다리가 진정되었다. 스티브의 얼굴 위로 눈에 띄게 안도와 실망 그리고 아쉬움을 내비쳐졌다. 정말이지 그랜트와 달리 이쪽 스티브는 속이 뻔히 보였다턱을 괴고 스티브를 빤히 바라보던 앤서니는 솔직한 스티브의 모습에 잠시 망설이다가 그 누구에게도 묻지 못했지만, 정말로 묻고 싶던 질문을 건넸다.


하나만 물어보자. 대체 토니 스타크가 어디가 그렇게 좋은 건데?”


평행 세계이지만 당사자를 앞에 두고 묻는 질문에 스티브는 어안이 벙벙해져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앤서니는 비록 그 당사자는 아니지만 같은 동일인물에게 몇 번이고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었다.


바람둥이에 자기 파괴적인데다가 전형적인 자아도취감에 젖어있는 인간이잖아? 대체 캡틴 아메리카가 뭐가 부족해서 그런 인간을 좋아하는 건데?”


마치 자신은 토니 스타크가 아닌 것 마냥 앤서니는 정말로 이해가 안 간다는 말투였다. 스티브는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망설이다가 대답을 기다리는 앤서니를 보곤 그냥 솔직하게 얼굴을 붉혔다.


솔직히 처음에 저와 토니는 사이가 영 좋은 편은 아니었어요. 첫 만남부터가 싸움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예상외로 그가 책임감 있고, 강한 사람이란 걸 알게 된 뒤부터 그와 친해지고 싶어지더라고요.”


앤서니는 말없이 스티브의 말에 경청하였다. 토니를 떠올릴수록 스티브의 얼굴 위로 미소가 떠올라갔다.


같이 지내게 되면서부터 제게 현대문물을 가르쳐주겠다는 토니의 도움이 기뻤고, 나를 존경하고 우러러 보며 캡틴 아메리카로 바라보는 다른 이들과 달리 절 한명의 스티브 로저스로서 대해 주는 것이 처음으로 누군가 제대로 제 존재를 인정해주는 것만 같았어요.”


말을 하면서 스티브는 마치 눈앞에 토니가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멍청이 캡시클. 이것도 못 하는 거야? 어쩔 수 없지. 도와줄게. 핸드폰 하나 제대로 못 만지는 자신을 한심스럽다는 듯 바라보면서도 토니는 스티브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입으로는 잔뜩 툴툴거리는 주제에 토니는 언제나 스티브를 향해 웃음 지었다. 스티브는 그 미소가 좋았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개구진 장난을 치는 토니의 모습. 자신에게 매달려 일하기 싫다며 어리광을 부리던 토니의 모습. 빌런들 앞에서 절대 피하지 않고 당당한 등을 내비치던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모습. 스티브는 눈앞에 아른거리는 토니를 향해 말해주듯 대답했다.


언제부터인가 토니와 있으면 어긋나기만 했던 내 시간이 조금씩 맞춰지는 기분에 이 세계에 눈을 뜬 이후로 처음으로 편안하다 느껴졌어요.그러다 그와 있으면 설렜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무엇을 하나 궁금하고, 다른 이들과 가깝게 지내는 걸 볼 때면 질투가 났어요. 그러다 아. 하고 어느 날 깨닫게 되었죠.”


스티브는 앤서니와 눈을 마주치며 행복하게 웃어보였다. 앤서니는 그 웃음이 낯 익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구나.”


자네를 좋아하네. 그랜트의 떨리는 목소리가 다시 환청처럼 들려왔다. 앤서니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대체 언제부터 내 감정이 사랑으로 가게 되었는, 난 정확하게 알 수 없어요.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 언제부터 토니가 나에게 이렇게 스며들게 되었는지 난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확실하게 하나만큼은 알게 되었죠. 내가 토니를 사랑한다는 사실 말이에요.”


말을 내뱉으면서 스티브는 속이 시원하다고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 고민하고 걱정하던 자신이 어리석을 정도로 스티브의 허리는 바르게 펴졌고, 어깨는 다시 당당해져 갔다. 스크린 속 토니는 화면을 뚫고 스티브의 옆에 앉아있었다. 손에 닿아오던 그 따뜻한 체온도, 자신을 향해 만연히 띄운 웃음까지도 모두 화면 속 이들은 보지 못할 스티브만이 볼 수 있는 현실의 토니였다.


앤서니는 스티브의 당당해진 모습과 대조되게 서서히 고개를 숙였다. 너무도 낯익은 스티브의 모습이 앤서니를 누르고 있었다. 스티브는 문득 매번 자신의 눈을 피하던 앤서니의 행동에서 불안감을 느꼈다.


그쪽 세계의 저와헤어지실 생각이신건가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앤서니가 눈을 크게 뜨고 스티브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앤서니는 천천히 고개를 다시 돌렸다. 그럴리가. 앤서니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사실 난 내 쪽 스티브와 우정 이외에 감정은 없었어.”


앤서니에게 캡틴 아메리카는 어린 시절의 영웅으로써 동경의 대상이었다. 때로는 아버지처럼 엄격하게, 조언을 아끼지 않던 친우는 앤서니에게 그 어떤 이들보다도 특별했지만 그랜트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해줄 존재라 생각했던 그랜트는 앤서니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스티브는 말없이 앤서니의 말을 기다렸다. 앤서니는 스티브 로저스의 저 올곧은 푸른 눈빛이 부담스럽다 생각했다. 그래. 언제나 금방이라도 자신의 깊은 곳까지 뚫어 버릴 것 만 같은 저 눈이 그는 두려웠다.


그가 처음 내게 고백했을 때 난 그 자리에서 도망쳤었어. 그럼에도 그는 무섭게 쫒아와 어떻게든 날 붙잡고 말았지. 어찌나 무섭게 쫒아오던지 정말 헐크에게 쫒기는 기분이 들더라고. 주변에 우리가 사귀는 사이로 공표된 후에도 난 내가 캡틴 아메리카와 사귄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어. 계속해서 도망치고, 또 도망칠 뿐이었으니 말이야.”


자조하듯 앤서니는 피식 웃어보였다.


처음에는 마음에도 없는 이 짓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막상 그와 마주하게 되면 그런 생각 따위 꺼낼 엄두가 나지 않더라고..”


앤서니는 그랜트를 떠올렸다. 자신을 볼 때면 사랑스러워죽겠다는 듯 언제나 활짝 웃던 그랜트의 모습은 앤서니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곤 하였다. 그 넓은 품에 앤서니를 꼭 껴안고 행복의 노래를 부르던 그랜트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난 그를 상처 줄 수 없었어.”


스티브는 앤서니를 응시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질문하였다.


토니 스타크에게 스티브 로저스는 어떤 존재이죠?”


앤서니는 망설이며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몇 번이고 그에게 다른 이들이 물어온 질문이었다. 스타크도. 두 사람의 관계를 걱정한 이들이 계속해서 질문해온 말이었지만 그들은 회피하는 앤서니에게 정확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앤서니의 앞에 선 이는 그가 너무도 약한 캡틴 아메리카였다.


그것도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굳은 의지를 가진 캡틴 아메리카가 앤서니에게 질문하고 있었다.


난 내 쪽 토니를 사랑해요. 그쪽 스티브 역시 당신을 사랑하겠죠. 당신은 어떤가요? 여전히 우정 이외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나요?”


스티브는 마지막 망치질을 하듯 말을 덧붙였다.


도망친다고 해결 되는 건 없어요. 토니.”


앤서니의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마치 겁에 질린 사람마냥 몸을 떨던 앤서니는 잘 열리지 않는 입을 몇 번이고 달싹였다. 스티브는 차분히 앤서니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그 익숙한 기다림이 앤서니를 흔들었다. 처음 이 세계에 떨어진 순간부터 느꼈던 감정들이 터진 물 마냥 드디어앤서니의 가슴 속에서 새어나왔다. 앤서니는 질끈 눈을 감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침대 옆자리가 비어있다는 사실이 싫어. 언제 다가왔는지 다정하게 어깨를 쓸어주던 그 손도, 데이트하자며 내밀던 촌스러운 장미 꽃다발 냄새도, 날 한가득 담아내던 그 푸른 눈까지 모두 내 곁에 없다는 게 너무도 싫어.”


앤서니는 입술을 부르르 떨며 목소리 톤을 올렸다. 금이 가고 있었다.


그렇게 거부해 왔건만 언제부턴가 나한테 스며든 것인지 모를 스티브 로저스를 그리워하는 내 자신이 바보 같기만 해.”


데이트 약속을 여러 번 까먹거나 의도적으로 핑계를 대며 피할 때마다 그랜트는 괜찮다며 금방 수긍하곤 하였다. 그도 알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랜트만큼 앤서니가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쩌다보니 끌려 왔다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그랜트에게 안긴 앤서니는 최대한 자신이 할 수 있을 만큼의 반항을 하였다. 그리고 반항하느라 앤서니는 처음으로 제대로 누군가에게 안기는 포근함을 눈치 채지 못했다.


온도가 다르면 어떠하단 말인가. 그저 이렇게 서로 붙어있는 것만으로도 온도는 언제든 변화될 수 있을 텐데. 그 따뜻함은 곁에 없어질 때야 비로써 깨닫는 법이었다.


아무리 도망쳐도 매번 자신을 잡으러오던 그랜트가 이번에는 너무 멀리 도망치는 바람에 쫒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이 자각되자 앤서니는 눈가를 적혀 나갔다. 분명 처음에는 토니 때문에 스티브를 찾아왔건만 어쩌다 자신이 이리 파헤쳐지는지 억울할 따름이었다.


스티브는 서서히 젖어가는 앤서니의 갈색 눈을 바라보았다. 스티브는 알고 있을까? 앤서니 스스로 그랜트와 사귄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것을? 처음으로 자신의 입으로 사귄다고 말했다는 것을?


앤서니는 외면하려고만 했던 마지막 커다란 댐을 무너트렸다.


나는 그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