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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지/I'm obsessed

[스팁토니]I'm obsessed(2)

피곤한 듯 기지개를 쭉 피던 배너는 잠시 커피를 마시고 오겠다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구 자료에 눈을 떼지 못한 채 자기 것도 가져다달라 건성으로 부탁한 토니는 자비스에게 다른 방식으로 데이터를 추가해보라 명령을 내렸다. 곧 허공에 자료들이 어려운 수식단어들로 복잡하게 뒤섞였다.

 

턱 가를 긁적이며 연구 자료들을 유심히 바라보던 토니는 뭔가 새롭게 발견된 수식어에 황급히 배너를 부르려했다. 그러다 불과 몇 분 전에 배너가 커피 마신다 나갔음을 뒤늦게 깨달은 토니는 입을 비죽였다. 이 놀라운 사실을 어서 빨리 알려주고 싶어 죽겠는데 그것 참 타이밍하고는.


얼른 배너가 돌아와 자신이 발견한 내용에 놀라워할 것을 기대하며 토니는 의자를 뒤로 젖혔다. 금방이라도 넘어질듯 아슬아슬하게 의자 앞다리를 든 채 자료들을 재검토하는 토니의 모습은 꽤나 위험해보였다. 아마 이 모습을 스티브가 본다면 어지간히도 화를 낼 것이 분명했다. 거기다 연구를 시작한지 한참 전부터 시계가 아침을 가리키고 있었으니 절대 그냥 넘어가줄 리가 만무할 것이었다.


토니는 머릿속 스티브가 이럴 줄 알았다며 토니! 하고 자신을 부르는 모습에 킥킥 웃음 지었다. 토니는 그런 관심이 싫지 않았다. 페퍼 때도 그랬지만 언제나 사랑을 갈구하는 토니에게 자신을 챙겨주는 존재란 그에게 만족감을 심어주었다.


잔소리하고 화를 내면서도 그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그들의 눈빛이 토니는 너무 좋았다. 언제나 가까이 자신을 믿고 보호해줄 존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토니는 얼마 전 전투에서 빌런의 공격에 한순간 중심을 잃은 자신을 보호해 주기 위해 달려온 스티브의 등을 떠올렸다.


어찌나 단단하고도 넓다라던지, 만약 토니가 일반 베타 여자였더라면 한 눈에 반해 안겨 들었을 만큼 듬직한 등이었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마냥 폭발하는 전투지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이름을 큰 목소리로 부르던 스티브의 모습은 목가에 소름을 일으켰다. 다정하게 자신을 챙겨주는 스티브의 모습도 좋지만 가끔씩 그렇게 짐승 내를 풍기며 이름을 불러주는 스티브의 모습도 소름 돋게 섹시했다.


베타 여자들이 왜 그리도 스티브에게 하트를 뿅뿅 날려 보내는지 이해가 갈 지경이었다. 아마 그녀들도 오메가인 자신을 가지고 싶어 쫒아 다니는 알파나 베타 남자들과 다를 바 없는 심경이었을 것이었다.


저 사람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소유욕은 인간의 숨길 수 없는 본능 중 하나였다. 토니는 그들의 심경을 이해했다. 자신도 다를 바 없었으니.


"."


토니는 한순간 머릿속을 스친 생각에 정신을 차리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 맙소사. 전에 나타샤와 배너가 한 말 때문인지 아무래도 정신이 나가버린 모양이었다. 토니는 정신을 집중하여 스티브를 밀어내고, 그 위에 오베디아를 떠올리고자 했다.


주로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혼이 날 때마다 자신을 달래주던 오베디아의 모습들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와 본딩을 할 때의 기억들이. 토니는 오베디아의 본딩이 깨지지 않도록 온 신경을 다했다.


괜히 탐내지 못할 큰 나무를 쳐다보다 떨어질 바에야, 지금 잡고 있는 나무라도 꽉 움켜쥐고 있는 편이 안전했다. 한순간이라도 아래로 떨어졌다가는 탐욕스럽게 주둥이를 벌리고 있는 알파들에게 좋은 먹이를 던져주는 거나 다름없었다. 오메가 성 뿐만 아니라 토니의 재력과 두뇌를 원하는 이들이 자신을 평생 복종 시킬 수 있는 이 기회를 그냥 넘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란걸 그 누구보다 잘 아릭에 토니는 당장에라도 끊어질듯 가늘어진 본딩을 꾹 움켜쥐었다.


넌 내게 이용당한 것뿐이었어.


젠장. 토니는 눈가를 찌푸렸다. 아무리 오베디아와의 본딩을 지키려 해도 마지막으로 그가 자신에게 내뱉은 말이 여전히 비수가 되어 날아오고 있었다. 가장 믿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오베디아의 배신은 토니에게 큰 상처만 남겼다. 오베디아는 처음부터 토니를 도구로써만 본 것이었다.


토니는 그것을 다시금 상기하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래. 오베디아에게 토니 스타크는 도구에 불과했던 거였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도, 알파를 원하는 오메가도 아닌, 그저 자신을 위해 무기를 만들어내는 똑똑한 기계 덩어리였을 뿐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 품에 얌전히 안겨 나의 알파, 알파 하며 노래를 불러대기나 했으니 얼마나 우스웠을련지. 토니는 자신의 한심스럽던 과거를 몇 번이고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몇 번이고 되 내이듯 속삭였다.


오비. 그렇게 나를 도구취급하고 싶었다면 나도 당신을 도구취급해주겠어. 알파니 오메가 같은 엿 같은 규칙을 이겨낼 수단으로, 토니 스타크를 보호할 도구로 삼아주겠어. 오베디아가 자신에게 대했듯이 그를 완벽한 자립의 도구로써 사용한다. 그건 토니가 끝까지 오베디아와의 본딩을 이어가는 원천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본딩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오베디아를 놓아주고 싶은 마음을 먹어서도, 자신의 처지를 절대 잊어서도 안 되었다. 본딩은 믿음을 근거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토니는 마음을 다스리듯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래.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알파인 스티브와 이렇게 가까이 지낼 수 있게 된 것도 오베디아 덕분이라고 할 수 있기도 할 거였다.


페로몬에 영향 받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뭐라 할 알파조차 이제는 없으니 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만약 토니가 무방비한 오메가에 불과했더라면 스티브는 둘 사이가 단순히 친구로 지낼 수 없다 판단하여 토니를 멀리 하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것도, 친근하게 팔을 부대끼거나 심지어 불규칙한 토니의 생활리듬을 챙겨주려 하지도 못할 것이었다.


내외를 해야 하는 알파와 오메가의 관계에 스티브와 토니의 관계는 들어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의 본딩 된 알파가 없어 감시받을 일조차 없이 자유로이 스티브를 만날 수 있게 된 건 어떻게 본다면 오베디아의 덕이 큰 걸지도 모른다며 토니는 오베디아의 미운 감정을 누르고 그 안에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과 고마웠던 감정들을 강제로 집어넣었다. 흔들리던 본딩이 다시금 안정화되었다.


몇 번 더 숨을 내쉬고 나서야 눈을 뜬 토니는 눈앞에 연구 자료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안정된 본딩과 별개로 어쩐지 가슴 한 편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이어나가야 하는 걸까. 일평생 누르고 다 죽은 사람을 붙잡아야 하는 미래의 자기 자신에게 피곤함이 몰려왔다.


그러나 토니는 마음을 다잡듯 눈가를 꾹 눌렀다. 가장 안전하고 평화로운 방법이 자신을 지치게 만든다는 사실은 굳이 상기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었다.


곧 배너가 커피를 들고 다시 연구실에 들어왔다. 배너는 피로해 보이는 토니의 얼굴에 괜찮냐 물으며 토니 몫의 커피를 내밀어보였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커피를 받아든 토니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토니는 자신이 발견한 연구 자료들을 보고 놀라워하는 배너의 뒤통수 너머로 커피를 홀짝이며 간식거리들을 생각했다. 정확히 스티브가 만들어준 간식들이.


. 그래도 역시 본딩과 별개로라도 스티브가 좀 보고 싶기는 했다.

 

§ § §

 

"알았어, 알았어. 페퍼. 그래서 오늘은 별로 놀지도 않고 바로 집에 들어가잖아. . 나도 알아. 괜히 그쪽 놈들한테 꼬투리 잡힐 일 따위 안한다니까, 그러네."


샤워를 막 마친 토니는 페퍼의 닦달하는 전화에 능숙하게 대꾸하며 수건을 목가에 걸쳤다. 아무래도 내일 타워를 방문한다는 정부 요원에 대한 소식에 토니나 어벤져스들보다 페퍼가 더 긴장되는 모양이었다.


토니는 청문회 때처럼 마구잡이로 굴지 말라는 페퍼의 잔소리를 반쯤 흘려듣다가 도무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전화기를 더미에게 맡겨버렸다. 더미가 전화기를 든 채 기잉기잉 소리를 내며 쩔쩔거렸다.


페퍼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말리던 토니는 문득 방 안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잠시 몸을 굳히던 토니는 곧 그 상대의 정체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음 지었다.


"스티브!"


스티브는 방금 막 임무에서 돌아온 사람마냥 흙먼지를 뒤집어 쓴 수트차림 그대로 토니의 방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한순간 심각한 얼굴로 침대를 바라보던 스티브가 토니의 부름에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바꾸었다. 얼굴 한가득 부드러운 미소를 띄운 채 스티브가 토니의 환영을 반겼다.


사흘 안에 온다면서 일주일 만에 와?”

"일이 좀 복잡하게 꼬여져서 말이야. 늦어서 미안해."


스티브가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변명하자 토니는 스티브가 돌아오지 않는 일주일 간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가 한 걱정에 전전긍긍하던 것도 모두 잊고 짐짓 새침한 표정으로 뭐, 무사히 왔으니 됐어 라며 가볍게 넘어가주었다. 그러다 문득 스티브의 얼굴 여기저기에 난 상처에 토니의 눈이 향했다. 토니의 시선을 읽어낸 듯 스티브는 자신의 상처를 손등으로 가렸다.


", 좀 긁혔네. 어차피 금방 나으니까 괜찮아."

"맙소사, 아무리 금방 나아도 그렇지 이걸 이대로 가만히 나뒀대? 슈퍼 솔져가 무슨 만능이야? 하다못해 약 정도는 발라줘야 하잖아."


토니는 사람을 그렇게 부려먹고 약하나 발라주지 않고 돌려보낸 쉴드의 복지혜택에 대해 마구 화를 내며 더미를 불렀다. 그러나 더미가 휴대전화를 들고 낑낑 거리고만 있자 정말이지 도움이 안된다고 꿍얼거리며 직접 움직이려하자 스티브가 웃음을 터트리며 토니를 말렸다. 스티브는 그래도 좀 치료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토니의 걱정에 정말로 괜찮다 달래주면서 토니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방금 막 샤워를 끝낸 토니의 촉촉한 몸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나고 있었다. 스티브는 그제야 임무 내내 긴장됐던 몸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물기 젖은 토니의 머리를 손가락을 쓸어 만지던 스티브는 토니의 목가에 걸쳐둔 수건을 받아들어 손수 머리를 말려주며 다정하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내일 타워에 손님이 온다하던데, 괜찮나?"

"로마노프 요원한테 들었어?"

"그래. 듣자하니 헐크 문제로 정부에서 온다하던데.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나."

"캡은 임무 때문에 바빴잖아. 전장을 뛰노는 사람한테 내일 손님이 온다고, 올 때 손님맞이 선물이라도 사오라고 어떻게 연락을 하겠어?"


토니는 짐짓 스티브의 가슴께를 두들기며 안심시켰다.


"걱정 하지 마. 그 작자들 상대하는 건 내 전문이라는 거 잊었어?"


자신만만한 토니의 웃음에도 스티브가 근심어린 표정을 지우지 못하자 토니는 일부러 말을 돌리듯 스티브의 다친 상처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보다 이번 임무는 어땠어? 오래 걸린걸 보니 많이 힘들었나봐?"

". 아무래도 우리 측 정보가 잘못되었던 모양이었나 봐. 미리 매복해 습격하는 바람에 좀 위험했거든."

"그래서 이렇게 다치셨구먼."

"그래도 다른 요원들의 재치로 무사할 수 있었네. 샤론이 날 감싸느라 크게 다칠 뻔하기도 했고 말이야."


순간 토니의 입가가 짧게 움찔했다. 그녀도 같이 임무를 갔었던가. 토니는 단지 이름이 거론된 것만으로도 확 하고 올라오려는 감정을 누르기위해 꽤나 노력해야만 했다.


"많이 다쳤어?"

"다행히 팔에 경미한 부상을 입는 수준으로 끝났어. 정말 천만다행이었지."


토니는 안도하는 스티브의 미소가 처음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캡틴 아메리카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몸을 던진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 스티브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어쩌면 다른 무언가가 생길 수 있는 걸지도 모를 일이었다. 토니는 페기 카터를 꼭 닮은 샤론을 떠올리며 씁쓸하게 웃음을 삼켰다. 안타깝게도 스티브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생각났다는 듯 토니의 양 볼을 쭉 잡아당겼다.


"그보다 자비스에게 이야기 다 들었네. 아주 나 없다고 살판났다 하더군."

"자 이르을주른 모랐지."


양 볼이 잡힌 토니가 이상한 발음으로 변명 하면서도 나 혼낼 꺼야? 하는 눈빛으로 올려다보자 그 모습이 꽤나 귀엽고도 우스워 스티브의 입 꼬리가 씰룩여졌다. , 정말 적들에게 둘러 싸였을 때, 샤론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토니를 이렇게 다시 마주할 기회마저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간담이 서늘하기까지 했다. 또 다시 춤 약속을 잃어버릴 뻔한걸 되내이며 스티브는 토니의 어깨를 소중히 감싸 안았다.


"한순간이지만 정말 이대로 죽는 건 아닌가 생각도 했었어."

"그토록 수많은 생사를 오간 캡틴 아메리카가 그런 소리를 할 정도라니. 정말 힘들긴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네?"


새삼 약한 소리를 하는 스티브의 모습에 토니가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스티브는 그런 토니의 말을 부정하려 하지 않았다. 토니를 품에 안고 나서야 점차 긴장감이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정말 소중한 걸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다시금 겪으니 그런 생각이 강해졌을지도 모르겠지."


스티브는 굳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토니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스티브의 침묵이 토니에게는 그저 소중한 대상이 지금의 시간이리라 받아들여지리라는 걸 내버려둔 채 스티브는 묘한 미소만 지어보일 뿐이었다.


죽을 고비를 끝 넘기고 타워에 돌아오자마자 가장 보고 싶었던 이를 보고픈 마음에 참지 못하고 늦은 시간 침실까지 찾아왔다는 걸 스티브는 굳이 토니에게 가르켜 주지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여린 오메가의 향을 맡고 싶단 생각에 좀 더 가까이 몸을 붙일 뿐이었다.


더 이상. 더 이상 바보같이 시간만 끌며 기다리는 건 어리석다 다짐한 스티브의 눈빛은 집요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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