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 좋은 햇빛 아래 네 명의 캡틴 아메리카들은 오랜만의 여유를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다. 스티브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품에 있는 토니들을 쓰다듬으며 잔잔한 미소들을 띄웠고 토니들도 골골 소리를 내며 스티브들의 손길을 기분 좋게 받아들었다. 특히 스타크는 로저스가 목가를 긁어주는 것이 기분 좋은지 무의식적으로 로저스의 허벅지에 꾹꾹이를 할 정도였다.
그런 로저스 옆으로 에드워드가 방울 달린 고양이용 낚시대를 마침내 물어내는데 성공하였다.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콧김까지 씩씩 불며 장난감에 물고 늘어지는 에드워드의 모습에 결국 스티븐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발톱까지 세우고 스티븐이 잡아당기는 데로 에드워드가 낚시대에 매달려 질질 끌려갔다.
바닥에 엎어진 에드워드의 털 상태가 걱정된 앤서니가 불안하게 시선을 흔들었다. 그랜트가 어차피 저 둘만 재미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며 앤서니를 달래주듯 이마를 쓸어 만져주었다. 부드럽게 결대로 빗어주는 그랜트의 빗질에 따라 앤서니의 털이 윤기 나게 빛이 났다. 모두 하나같이 꼭 그림으로 그린 것만 같은 평화로운 순간의 모습들이었다.
…토니만 제외하고 말이었다.
"토니. 제발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만 이리 오게."
"하아악-!"
"그래, 내가 잘못했어. 자네 배를 건드리다니 내가 백번 잘못했지. 하지만 토니, 거기는 먼지가 많아. 부탁이니까 이리 내려…."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토니는 앞발을 굴려 선반 위 먼지 덩어리를 모아 스티브의 얼굴로 떨어트려버렸다. 얼굴에 먼지를 정면으로 맞은 스티브가 한참을 콜록거렸다. 스티브의 기침소리에 스타크가 한심하다는 듯 토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괜히 심술부리지마."
"넌 아주 고양이가 되더니 살판났다? 아예 처음부터 고양이인거 같은 모양새인데?"
"솔직히 우리 지금 고양이는 맞잖아."
스타크는 마치 그렇지 않냐는 듯 고로롱 소리를 내며 로저스의 손에 얼굴을 부벼 대었다. 언제 이런 기회를 맛보겠냐며 아주 영악한 표정이었다. 못마땅한 듯 토니가 꼬리를 두들겼지만 반응하는 것은 오로지 스티브 혼자뿐이었다.
"토니이-"
망할 놈의 빌런 빔. 도대체 이런 쓸데없는 기계는 왜 만들어낸 거래? 이런 걸 만들어낼 능력이 된다면 우리 회사로 들어와 좀 더 효율적이고 기발한 물건들을 만들어내야지, 고작 고양이가 되는 빔 따위라니…. 거기다 하필이면 다른 토니들이 자신의 세계로 놀러왔다가 다함께 봉변에 처할 줄이야. 토니는 지금의 사태가 우습게만 느껴졌다. 토니 스타크가 고양이가 되어 스티브들의 귀여운 애완동물로 전락하다니 이거만큼 우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에드워드가 의기양양하게 낚시대를 문 채 토니를 올려다보았다.
"왜? 너도 갖고 놀래?"
토니는 다시 손을 뻗는 스티브의 손을 신경질적으로 탁탁 치고는 마침내 선반 위를 폴짝 내려갔다. 그리고 마치 화풀이를 하듯 한참 털 손질이 끝난 앤서니의 목덜미를 곧장 깨물어버렸다.
"아파, 아파!!"
"우리가 지인짜 고양이냐고!!"
깜짝 놀란 앤서니가 털을 확 세우며 파드득 움직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랜트가 토니를 떨어트리려했지만 두 고양이는 금세 얽혀 그랜트의 허벅지 위에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거의 토니가 앤서니의 목덜미를 잡고 흔드는 데에 따라 움직였지만 앤서니도 아프다며 발버둥치는 바람에 두 마리는 한참을 더 데굴데굴 굴러가야만 했다. 괜히 옆에서 낚시대를 물고 장난을 치다가 토니와 앤서니에게 부딪힌 에드워드가 캬오옹!하고 화들짝 뛰어올랐다. 스티브가 토니, 그러면 안되는거야! 하고 허둥지둥 토니의 뒤를 쫒는 바람에 낚시대가 무참히 스티브의 발아래 부서져 버렸다. 순식간에 깨져버린 평화 속에서 스타크 만이 로저스의 품에 안겨 골골송을 불러댈 뿐이었다.
"도대체 해독제는 언제쯤 만들어지는 건데! 캡시클들은 하나같이 우리가 진짜 고양이라도 되는 양 굴고 있고, 니들은 마냥 여유롭기만 하고!사람으로 돌아갈 생각은 아예 안 하는 거야?!"
"그걸 왜 나한테 화풀이 하는 건 데에…."
토니와 앤서니를 떨어트리자마자 앤서니는 서럽다는 듯이 그랜트의 품에 안겨 미야아 하고 작게 항의하였다. 하지만 토니는 자기 잘못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짜증나 죽겠다는 듯 스티브의 팔뚝을 발톱으로 마구 할퀴어댈 뿐이었다. 스티브는 그랜트와 앤서니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어떻게든 진정시키고자 토니를 쓰다듬어보았지만 오히려 손만 더 물려버렸다.
"지금 여기서 가장 고양이답게 행동하는 건 바로 너잖아."
자신의 낚시대가 망가진 것에 대해 상당히 화가 났는지 에드워드가 토니를 사납게 쏘아보았다. 흥분한 토니가 스티브의 손 안에서 몸을 비틀며 발버둥 쳤지만 이번에 스티브는 토니를 놓아줄 마음이 없어보였다. 결국 스티브의 팔을 잘근거리는 걸로 (그렇게 할퀴고 난리를 쳤는데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는 점이 더욱 토니의 신경을 긁었다.) 한참을 분을 푼 토니는 아까보다 가라앉은 모양새로 끝내 씩씩거리며 스티브의 팔에 얌전히 안길 수 있었다. 스티브가 드디어 이겼다는 듯 감격의 미소를 띄었다. 그러나 다시 다른 스티브들처럼 토니와의 시간을 가지기도 전에 곧 배너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배너의 목소리에 반응하듯 토니가 귀를 까딱였다.
"아, 배너 박사. 뭔가 좀 알아내셨나요?"
"어느 정도 진전이 있는 듯 싶네요. 잠깐 연구실로 와주실 수나요?"
"토니들도 데리고 갈까요?"
"아뇨, 그럴 필요는 없을 거 같네요. 아직 다 완성된 것도 아니고, 연구실에 위험한 물건도 많고 하니까…."
오지 말라는 배너의 말에 토니가 귀를 축 늘어트리며 실망감을 나타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배너가 나보고 연구실에 오지 말라니…!배신감 당했다는 걸 표현하듯 토니가 길게 야오오옹 하고 울었지만 배너는 일부러 못 들은 척 할 뿐이었다. 그럼 금방 가보겠다며 스티브들이 토니들을 품에서 내려놓았다. 모두 하나같이 옷에 검은색 고양이털들이 잔뜩 묻어나 있었다. 로저스가 나가기 전 스타크는 마치 잘 다녀오라는 듯 꼬리를 위로 세운 채 로저스의 다리 부근에 몸을 부비며 애교를 떨었다. 지극히 고양이다운 애교였고, 공격력은 확실하였다.
"…미안하지만 잠깐만 기다려주게."
다른 스티브들에게 양해를 구한 로저스는 곧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보였다. 그리고 다른 스티브들에 비하면 매우 능숙한 솜씨로 카메라를 킨 로저스는 스타크가 자신의 다리에 머리를 비비는 장면을 연속 촬영해나갔다.
"크흠. 그, 혹시 우리 쪽 토니도 좀 부탁할 수 있을까요?"
"아…. 내 쪽도."
"이 모습도…."
로저스가 스타크를 사진 찍는 모습에 기다렸다는 듯 스티브들이 자신들의 토니들을 가리켜보였다. 특히 그랜트는 앤서니가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만큼은 반드시 찍어달라며 간곡히 부탁할 정도였다. 토니가 어처구니없어 지금 사진이 중요해?! 얼른 배너에게 가서 해독약을 가져와야지! 하고 고양이 소리로 소리를 질렀지만 로저스는 모두 한 마음이라는 듯 기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나중에 전부 모아 같이 보내도록 하지."
그렇게 배너에게 무례가 되지 않을 정도로 토니들의 사진을 한참 찍은 스티브들은 있다가 다른 구도 방식으로 사진을 찍어보는 것도 좋겠다며 화기애애하게 연구실로들 향해갔다.
마침내 방 안에는 네 마리의 고양이들만 남게 되었다. 스타크는 여유롭게 자신의 털들을 그루밍 하다가 토니 때문에 잘 빗어진 털이 엉망이 된 앤서니의 상태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곁으로 다가와 얼굴 부근을 핥아주었다. 망가진 낚시대를 아쉽다는 듯 툭툭 치던 에드워드가 문득 문 앞을 서성이는 토니를 쳐다 보았다.
"또 뭔 짓을 하려고?"
"역시 이대로는 안 되겠어. 당장 배너박사한테 가봐야겠어."
"어차피 그 몸으로 가봐야 연구에 방해만 될 뿐이잖아. 그냥 믿고 가만히 기다려봐."
"배너라면 몰라도 스티브를 못 믿겠어. 지금 당장 해독제가 완성 되도 우리 사진첩을 만들어야한다고 숨길지도 모른다고."
"왠지 너에 대한 캡틴의 신뢰를 알 수 있게 된 거 같네."
토니는 에드워드의 말을 무시하듯 문 주변을 폴짝폴짝 뛰거나 앞발을 벅벅 긁어대었다. 하지만 아무리 토니가 연구실에 가고자 한다하더라도 고양이가 되어버린 자신의 주인을 자비스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였고, 무엇보다 자비스에게 고양이 언어 프로그램은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먼저 지쳐버린 토니가 씩씩 거리며 문을 노려보던 중 문득 복도를 걷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토니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소리 없이 가벼운 발걸음 소리. 군인다운 무거운 스티브들의 발소리와는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토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곧장 책장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일부러 틈을 비집듯 책들 사이에 억지로 몸을 쑤셔 넣었다. 앤서니의 몸단장을 해주던 스타크가 불안감에 동공을 줄였다. 곧 스타크의 예상대로 토니가 온 몸을 이용해 책장에 책들을 와르르 마구 쏟아버리는데 성공하고 말았다.
"키야옹-!"
"캬옹!"
또 다시 토니의 돌발사고에 에드워드와 앤서니가 놀라 제자리에서 확 뛰어올랐다. 털을 확 세우고 등을 굽힌 채 족히 일 미터는 넘게 뛰어 오른 거 같아보였다. 스타크는 방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곧 문가로 달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토니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책장위에서 폴짝 내려오는 것과 동시에 문이 열리고 말았다. 방안에서 들려온 소리에 잔뜩 경계하던 바튼은 곧 자신의 다리 사이로 빠르게 뛰쳐나가는 고양이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듯 반사적으로 열린 문 틈 사이를 도망가는 두 마리의 고양이도 함께. 아직 토니가 고양이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바튼이 어째서 타워에 고양이가 있는지 제대로 상황파악을 마치기도 전에 천천히 스타크가 세 마리의 고양이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복도를 걷던 스타크가 바튼을 돌아보며 길게 목을 울어주었다.
"미야아옹."
바튼은 검은 고양이가 복도 코너 저편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보 같은 얼굴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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