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회지의 단편 에피소드 입니다.
스타크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아머를 벗으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었다. 히어로도, 빌런에게도 특별히 공휴일이 지정된 직업이라 분류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최근 넉 달간은 아예 작당하고 모인 건 아닌 가 의심이 들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을 정도로 바쁜 일정들이었다.
특히 직업이 히어로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스타크로서는 회사일과 연구 개발 기타 업무들까지 물밀 듯이 들어와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었고, 제대로 된 수면시간이 언제였는지조차 의심이 갈 정도의 몸 상태였다. 거기다 몸을 가눌 틈도 주지 않고 오늘 하루 또 다시 빌런들의 대규모 공습을 가까스로 지구로부터 구해낸 아이언 맨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까무룩 소파위에 쓰러지듯 엎어졌다. 코를 박고 숨을 들이쉬자 소파의 가죽 냄새가 깊게 들이마셔졌다.
아무리 아머를 입고 싸운다한들 모든 충격을 흡수해주는 것은 아니었기에 스타크의 몸에는 석 달 간의 고생을 고스란히 보여주듯 여기저기 상처들이 새겨져 있었다. 잘생긴 얼굴을 그 무식한 주먹으로 된통 맞은 탓에 입가가 터져 살짝 부어올랐고 몸 여기저기에서 통증이 올라왔다.
스타크는 이거 무기징역을 먹여야한다 투덜거리면서도 밀렸던 잠을 청하고자 눈을 감았다. 얼마만의 꿀잠인지 얼마가지 않아 정신이 비몽사몽 했다. 그림자가 스타크의 위로 드리워졌다.
“상처는 치료하고 쉬도록 하게.”
“나 지금 손가락 하나도 까딱 못하겠어.”
“나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야. 토니. 자네만 힘든 게 아니일세.”
엄한 말투와 달리 로저스의 손에는 구급약이 들려 있었다. 단순히 모든 상처를 익스트리미스에 의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특히나 연인이 된 이후 로저스는 스타크의 몸에 난 상처들을 가만히 두는 것을 유독 싫어했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것 마냥 연고 약을 꼼꼼히 발라주는 로저스의 손길을 느끼며 스타크는 최애 캐에게 치료 받는 지금이 내 인생 최고의 황금기라며 속으로 복창했다. 입술에 난 상처를 유독 쓸어 만지며 로저스가 말했다.
“그래도 이걸로 한동안 숨 쉴 틈은 주어지겠군.”
“이번 전투에 대한 차후 보고와 뒤처리가 좀 많이 남았지만 말이야.”
“그거라도 어디겠어.”
구급약을 옆으로 치운 로저스가 씩 웃음을 지었다. 가슴 깊숙이 올라오는 간질간질한 기분에 일부러 스타크가 이죽거렸다.
“왜 그렇게 웃어? 내 얼굴이 새삼 잘생겨 보이는 거야?”
“몇 년을 죽네 마네 끔찍이 봐온 얼굴인데 새삼 그럴 리가.”
너무하다며 스타크가 웃음을 터트렸다. 기껏 약을 발라둔 입가의 상처가 따끔거렸지만 아까의 피로감과 상반될 정도로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손끝을 쓸어 만지는 감촉을 느끼며 스타크는 로저스의 다정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도 너무 오랫동안 보지 못하긴 했군.”
“…우리 얼마 만에 보는 거지?”
“내가 자네 얼굴 잊어버릴 뻔 할 정도로.”
살짝 서운한 기색을 들어내는 말투에 그제야 뒤늦게 스타크가 상체를 일으켜 로저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근 석 달만에 겨우 보게 된 연인은 지금의 시간이 아쉬운지 얼굴 가득 그리웠던 감정을 토로하고 있었다.
솟아오르는 달달한 감정에 스타크가 느릿하게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기다렸다는 듯 느릿하게 자신의 입술을 핥아오는 로저스의 혀의 감촉이 온 몸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스타크는 그에 답하듯 금발 머리를 헤집으며 입술 주변을 쪼아대었다. 천천히 스타크의 몸이 뒤로 젖혀져갔다.
얽혀진 혀끝으로 로저스가 새삼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였다.
“피곤하지 않겠나?”
“그럴 리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무조건 자고 말겠다 소리쳐 대던게 우스울 정도로 옷 속으로 들어간 손이 살을 지분거리도록 내버려둔 채 스타크가 유혹적으로 속삭였다.
“그리고 나도 오랜만에 캡 얼굴을 보니 달아오르기도 하고 말이야.”
그러니 걱정 따위 훌훌 털어 던져 버리라는 뒷말도 없이 로저스는 스타크의 허락을 받아들였다. 그대로 스타크를 소파에 드러눕혀 위를 장악한 로저스는 쇄골 주변에 키스마크를 새겨나갔다. 뒤늦게 최근 씻지 못해, 냄새가 나지는 않을까 걱정이 올라왔지만 흥분감을 그대로 담아내듯 목덜미에 코를 박고 얼굴을 부비는 로저스의 모습에 굳이 분위기를 깰 필요성은 없을 듯싶었다.
스타크의 어깨에 난 시퍼런 멍 자국으로 입술을 옮긴 로저스는 그 부위를 잠시 손으로 쓸어 만지다 마치 간을 보듯 이를 들어내 깨물었다. 통증감에 흥분한 스타크가 신음을 흘리며 로저스와 맞닿아진 아래를 비볐다. 흥분감은 고조되었고, 숨소리는 점차 더욱 거칠어져갔다.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스타크가 성급하게 로저스의 바지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활기찬 목소리가 방 안으로 예의 없이 들어왔다.
“스타크-! 우리 놀러왔어!”
정말로 우연히 타이밍 좋게 들어온 것인지, 아니면 엿 같은 타이밍을 재고 일부러 들어온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당당히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선 토니의 뒤로 에드워드와 앤서니가 따라 들어왔다. 그리고 방 안의 진풍경에 모두가 동작들을 멈추었다.
무례한 자신들의 침입에 앤서니는 예의 있게 눈을 가리며 미안하다 비명을 내질렀고, 스타크는 짜증을 실 듯 당장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 로저스는 보고야 말았다. 토니 스타크를 가까이에서 몇 년을 봐온 그라면 절대 놓칠 리 없는 반짝이는 토니와 에드워드의 눈빛을.
“세상에, 스타크! 얼굴에 그 상처들이 다 뭐야!”
“맙소사! 지금 가정폭력당하는 중인거야?!”
“앤서니, 뭐하고 있어! 당장 경찰서 신고해!”
“뭐?! 무슨 헛소리야? 야 이, 미친놈들아! 이거 놔봐! 야! 안놔?!”
일부러 소란을 피우듯 호들갑을 떨며 토니가 로저스의 등을 마구 때려대었고, 에드워드는 스타크의 팔을 잡아끌어 로저스로부터 떨어트렸다.
당황한 스타크가 뭐하는 짓들이냐고 화를 내려했지만 토니와 에드워드가 어떻게 캡틴 아메리카가 가정폭력을 할 수가 있냐며 얘 몸에 난 상처를 보라고 바락바락 지르는 소리들에 먹혀버리고 말았다. 빌런에게 난 상처들을 무기삼아 억지를 부리는 두 사람 뒤로 앤서니가 어떻게든 둘을 말려 보려했지만 소란스러운 현장에서 앤서니의 존재감은 사라질 뿐이었다.
힘을 주고 버티던 스타크가 실수로 몸을 삐끗한 틈을 타 에드워드와 토니가 스타크를 끌고 방에서 도망치는데 성공하였고, 어. 하는 순간 이미 스타크의 목소리는 복도 저편으로 끌려가 울려 퍼질 따름이었다. 앤서니는 황망히 연인을 빼앗긴 로저스와 복도 너머를 번갈아 보다가 눈치를 보듯 토니와 에드워드의 뒤를 따라 방을 빠져나왔다.
폭풍같이 지나간 토니와 에드워드의 만행에 순식간에 불타오르던 분위기가 꺼져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로저스는 멍하니 손으로 얼굴 가를 가렸다. 그때 타이밍 좋게 싸하게 내려앉은 방 안으로 로저스의 핸드폰이 울렸다. 로저스는 느린 동작으로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핸드폰을 받는 로저스의 목소리는 낮고 음울했다.
“…무슨 일이지.”
“쉬고 계실 텐데 죄송합니다. 캡틴. 호송 중이던 빌런들 일부가 탈주를 시도해서…”
“당장 가도록 하지.”
대답과 동시에 거칠게 핸드폰을 끈 로저스가 방패를 챙겨들었다. 그래. 어차피 중간에 끊길 일이었던 것이다. 절대 토니와 에드워드가 스타크를 억지로 끌고 가지 않았어도….
다시 캡틴 아메리카로써의 일을 하러가기 전, 문 앞에 선 로저스가 주먹으로 벽을 쾅! 내리쳤다.
“석 달 만이었는데….”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바로 눈앞에서 참고 참은걸 뺏겨버린 분노는 오갈 데를 잃었다. 분노를 터트리듯 빌런들을 향해 걸어가는 캡틴 아메리카의 모습은 살벌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러한 분노는 로저스만 터진 것이 아니었다. 거의 반강제적으로 에드워드와 토니에게 끌려간 스타크는 짜증을 내며 팔들을 뿌리쳐 냈다. 간만의 분위기를 깨버린 걸로도 모자라 이렇게 완전히 훼방을 늘어놓다니. 하지만 화를 내며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스타크는 보고야 말았다.
빙긋빙긋 웃음을 지으며 캡틴 아메리카가 가정폭력범이라니 그럴 줄 몰랐네, 우리가 스타크를 구해줬네 하며 눈을 빛내는 장난기 가득한 토니와 에드워드의 모습을. 스타크가 이를 뿌득 갈았다.
좋아. 해보자 이거지? 전쟁의 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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