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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지/I'm always your hero

[스팁토니] I'm always your hero(3)

거의 문을 부술 듯 문을 열어 제킨 피터는 홀에 서 있는 어벤져스들을 보자마자 다급히 소리쳤다.


보스가 뭐, 어떻게 됐다고요?!”

! 조용히 해!”


그들보다 먼저 병실에 와 있던 제니퍼가 검지 손가락으로 입가를 가린 채 창가 방향을 가리켜주었다. 피터는 황급히 창가에 모여 있는 어벤져스들을 헤집고 얼굴을 빼꼼이 내밀어 보았다.


창문 반대편, 병실 안에는 자비스가 느린 동작으로 과일을 깎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 커다란 병실 침대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새하얀 볼은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듯 통통하였고, 이불 보 아래로 비죽이 나온 손가락은 잘못 쥐면 부서질까 두려울 정도로 너무도 작고 연약해보였다. 어벤져스들의 강렬한 시선들을 느꼈는지 아이는 고개를 돌려 창가를 바라보았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머리카락 아래로 깜빡이는 파란색 눈동자가 유독 누군가를 연상케 하고 있었다.


. 지금 누가 이 상황 좀 자세히 설명해줄 사람 없어요?”


간절한 스파이더맨의 부탁에도 어벤져스 중 그 누구도 입을 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시선을 한 곳에 둔 채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 뿐이었다. 결국 행크가 피곤한 어투로 몇 번이고 했던 말을 다시 설명해주었다.


설명할게 뭐있겠어. 토니 스타크가 빌런 빔에 맞았고, 어린애가 됐다. 끝이야. 그나마 갓난쟁이로 변하지 않아 우리가 똥 기저귀 갈아주는 일은 없다는 게 다행이지.”

그럼 이게. 아니, 그러니까 정말 저 애가 보스가 맞다는 거예요?”

그래. 몸은 물론 정신까지 완전히 어린아이가 된 모양이더라고. 대체 뭔 짓을 해놓은 건지 우리에 대한 것은 물론, 지금이 몇 년도인지조차 전부 잊어버려서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니까.”


행크는 그때 한 고생을 생각 만해도 아직도 피곤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처음 스티브가 당황한 얼굴로 품 안에 조그마한 아이를 안고 연구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을 때만해도 토니와 꼭 빼닮은 아이의 얼굴에 행크는 드디어 토니 스타크 그 미친놈이 사고를 친 걸로도 모자라 스티브에게 들킨 건가?! 란 정상적인 생각이 들 수 밖 에 없었다. 그러나 곧 스티브가 아이를 향해 토니라고 외친 순간 그의 빠른 두뇌는 순식간에 사태 파악을 완료시킬 수 밖에 없었다.


아이는 분명 서재에서 책을 보고 있던 자신이 눈 깜짝하는 사이에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장소와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사실에 상당히 경계하고 있는 듯 해보였다. 일단 진정시켜보기 위해 행크가 토니의 아버지의 이름을 들먹이며 내가 니네 아빠랑 친한 아저씨인데, 라는 말들을 읊어보았지만 그건 오히려 유괴범들의 흔한 레파토리답게 사태의 심각성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었다.


틈만 보면 두 사람에게서 도망칠 기회를 보는 토니의 경계어린 모습에 결국 행크는 결단의 조치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피터가 빽 소리를 내질렀다.


그럼 지금 저 토니는 여기가 자기 미래 세계라고 알고 있다는 거예요?!”

그럼 어쩌냐? 뭔 말만 하려하면 말도 안 되는 거짓말 하지 말라고 물건부터 집어던지는데.”

하지만 그래도. 근데 믿긴 믿어요?”

안 믿으면 뭘 어쩌겠어. 주변 건물들만 봐도 그나마 저 꼬맹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사실이 이거 하나 뿐인걸. 게다가 대충 빔의 성분을 분석해보니 며칠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원래대로 돌아갈 건데 괜히 일을 더 키우는 것보다야 저 녀석도 자기 상황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는 게 우리로써는 편하지, .”


냉정한 행크의 말투에 피터는 질린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물론 어린 토니가 그 말을 납득했다는 건 다행이라지만 그런 건 보스같은 천재들이나 이해할 범위이지 일반적인 아이들은 그게 더 무섭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행크는 정말로 모르는 모양이었다.


다시금 토니 쪽을 바라보던 피터는 새삼 작고 연약해보이기만 해 보이는 어린 아이의 모습에 묘한 기분을 느꼈다. 어느 누가 되었든 어린 시절이란 누구에게나 존재했을 법 하지만 그 토니 스타크에게조차 저런 아이의 모습이 있었다는 사실은 조금 신기할 정도였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 상당히 미남이 될 거라는 걸 예상시켜주기라도 하듯, 뚜렷한 이목구비와 총기어린 눈빛은 그 나이 또래 아이들보다도 유독 선명한 것 같았다. 만약 이 사태가 아니었더라면 보스의 아이라 했어도 믿었을 정도로 곳곳에 어른 토니의 잔상이 남아 있었다. 아니, 이런 경우에는 어른 토니에게 아이의 모습이 남아있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


어찌되었든 아이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생김새로 순식간에 어벤져스들의 마음을 쏙 빼앗기에 충분하였다. 아무리 저 아이가 토니 스타크라는걸 인식하고 있다하더라도 아이의 눈 깜박임 몇 번만 보면 모두가 그것을 잊고 귀여움에 이상한 신음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피터는 아무리 미래의 자신이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믿고 있다고는 하지만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그것도 각양각색의 수트들을 입은 일반인보다 조금 덩치 큰 히어로들)사이에서 겁을 먹지도, 울음을 터트릴 기색도 없이 오히려 그들을 관찰하듯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가 꽤나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보통 저 나이 또래 애들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상당히 성숙한 모습이었다. 캡틴 아메리카조차도 얼음 속에서 70년을 건너 눈을 떴을 때는 꽤나 난리를 친 거 같은데, 저런 어린 아이가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거지?


잠깐! 근데 캡은요?!”


번뜩 떠오른 생각에 피터가 황급히 행크를 돌아보았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무언가를 놓친 것 같더라니, 지금 이 상황에서 어쩌면 가장 필요한 이는 스티브일 것이었다.


적어도 캡틴은 기억할 거 아니에요. 그도 그럴 게 보스가 얼마나!”

제발 조용히 좀 말해라.”

웁우움. 우우웁?!”


행크가 황급히 입을 막았지만 피터는 눈동자를 굴리며 무언의 말들을 쏟아내었다. 한숨을 내쉰 행크는 피터의 턱을 억지로 틀어 한쪽을 가리켜주었다.


토니가 있는 병실 문 앞에서 스티브는 팔짱을 낀 채 창가 쪽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왜 자비스는 토니가 있는 병실 안에 있는데 스티브는 밖에 저러고 있는 것일까. 어쩐지 스파이더 센서가 울리는 기분이었다. 행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해주었다.


저 토니는 지금 캡틴 아메리카조차 몰라.”


왜 당연히 캡틴 아메리카를 생각하지 못했겠는가. 토니의 연인으로써는 물론이고, 그나마 어린 토니의 기억 속 남아있는 인물이라고는 자비스 외 캡틴 아메리카 뿐인데. 특히 제일 먼저 토니를 발견한 스티브가 그를 안심시키며 다독여주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꿈에 그리던 캡틴 아메리카의 등장이라며 당장 품에 안길거란 그들의 기대와 달리 토니는 눈앞에 나타난 자신의 영웅을 두고도 오히려 납치범이라 소리칠 정도였다. 피터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투로 외쳤다.


아니, 대체 왜요?”

캡틴 아메리카는 고사하고 말하는 걸 보면 어린 시절의 기억들조차 이것저것 뒤섞인 모양이야.”


마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대충 몇 살 때쯤 일인데같은 두루뭉실한 표현 그대로 토니가 기억하는 사건들은 이것 저것 뒤섞였을 뿐 아니라 자비스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일들조차 제대로 떠올리지 못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잊혀진 기억들 중에서 캡틴 아메리카까지 없어졌을 줄이야. 그것이 처음 빌런의 목적이었을 수도 있었고, 혹은 단순한 우연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변한 것은 없었다. 행크는 가지가지 한다며 속으로 욕을 씹었다.


캡은 뭐래요?”

궁금하면 네가 직접 물어봐.”

, .”


자기는 할 만큼 다 했다는 듯 행크는 피곤하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순간에 연인이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걸로도 모자라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니. 다른 어벤져스들처럼 그저 지금의 상황을 즐길 수도 있을테지만 스티브는 조금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는 모양이었다.


피터는 문가에 등을 기댄 채 도저히 표정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스티브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결국 한걸음 물러 설 수밖에 없었다. 호기심보다도 그의 스파이더 센서가 경고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자비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성큼성큼 창가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곧 부담스러운 어벤져스들의 얼굴들을 치워버리듯, 매정하게 커튼을 닫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