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회지/I won't give up

[MCU+616+EMH 스팁토니]I won't give up(2)

자기 토니의 머리 위로 뚝! 떨어진 아머는 디자인만 조금 다를 뿐 그 골격구조와 최신 기술 등이 쉽게 토니 스타크의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재료가 어떤 것으로 이루어졌는지 몰라도 사실 토니의 아머보다 좀 더 내구성이나 기동력이 좋아 보이는 게 토니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었지만 그것은 분명 토니 스타크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력이었다.


아머를 벗겨내자 안에선 나온 차분한 검은 머리와 굵은 선의 사내는 묘하게 토니와 닮은 듯 다른 생김새였으며 스티브와 견주어도 될 만큼 빵빵한 가슴에 큰 키를 가지고 있었다. 사내는 자신을 둘러싼 쉴드 요원들을 보고 잠시 경계어린 냉정한 얼굴로 주변을 살피다 토니를 발견하고는 그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과 비슷한 분위기라는 것을 느꼈는지 푸른 눈을 크게 떴다.


곧 이어 비상 신호에 달려온 어벤져스 멤버들의 등장까지 합세하자 사내는 상당히 놀라워하더니 주변을 몇 번 더 살펴본 뒤에야 마치 상황을 완전히 파악했다는 듯 순순히 아머를 벗으며 항복을 나타내었다.

 

갑작스러운 쉴드 천장에 나타난 사내의 등장에 쉴드는 재빨리 사내를 구금시켰고, 나타샤와 퓨리가 심문에 나섰다. 정말이지 순식간에 일어난 이 상황에 다들 황당할 따름이었다. 심문 결과 갑자기 나타난 아이언맨의 정체는 다른 평행 세계정확하게는 616 지구의 아이언맨이라는 걸 알게 된 퓨리는 616 지구의 토니 스타크를 강제적으로 토니에게 맡겨버렸다. 토니가 장난 하냐고 앙칼지게 컁컁거려보았지만 이미 스타크를 위험인물이라 판단한 퓨리는 쉴드 내 구금실보다는 언제든 진압이 가능한 히어로들이 모여 있는 A 타워가 더 낫다고 결정 내려버렸다.


다른 세계에서 온 토니, 스타크도 쉴드 구금실 보다는 원래 자신의 집이었던 A 타워에 가는 것이 더 나은 듯 큰 반항 없이 타워에 들어섰다.타워에 들어오자마자 자신의 세계의 타워와 이곳 타워와의 차이점들을 마구 짚어나간 스타크는 오히려 어벤져스 멤버들에게 편하게들 들어오라며 역 집주인 행세를 하였다. 그 뻔뻔스런 행동에 토니는 스타크가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토니 스타크의 평행 모습이라니. 중년기의 토니와 달리 키며 몸매. 외모할거 없이 모든 것이 완벽한 스타크의 모습은 안 그래도 완벽한 토니 스타크에게 플러스가 더 올라온 것 같아 보여 기분을 참 요상하게 만들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새삼 자기가 봐도 반해버릴 만큼 완벽 그 자체의 토니 스타크가 질투가 났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은 걸지도 몰랐다. 그러니 스타크가 반갑게 악수를 건넬 때 스티브가 홍조를 띄며 수줍게 인사하던 것을 토니는 이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너무도 화가 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긴 정말 내 쪽 세계와 비슷하면서도 다르군.”


신경질적으로 아머의 팔 부분을 뜯어 개조하던 토니는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아무리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지만, 이렇게 조용히 자신의 뒤에 등장한 스타크의 등장에 토니는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그쪽 세계에서는 노크라는 게 없는 걸 보니 정말 다르긴 다른가보네.”


스타크가 피식 웃으며 벽을 몇 번 두들겨주었다.


앙칼진 내 평행모습이라니. 피터가 여기 있었더라면 기념사진 몇 장 찍자고 난리를 쳤을 텐데.”

피터고 자시고 그게 누군지 몰라도 여긴 내 개인공간이야. 아무리 자기네 집이랑 비슷하다하더라도 이렇게 맘대로 들어오기나 하다니 엄연히 집주인이 여기 있는 거 안보여?”

나도 이 집 주인이야.”

! 번지수를 잘 못 찾아오신 거 같네요, 배달원 아저씨. 아저씨가 찾으시는 집은 여기가 아니고, 저기 웜 홀을 한번 거쳐야 나오시는 것 같거든요?”

이거 혹시 자기장 제어 장치를 업그레이드한 버전인가?”


테이블에 놓인 기계 하나를 집어든 스타크가 흥미롭다는 듯 기계를 흔들어보였다. 토니가 짜증을 벌컥 내며 내려놓으라고 성화를 부렸지만 스타크는 아랑곳 하지 않고 기계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여기 이 부분은 제네럴 광석으로 대체하면 파워가 더 강해지겠군. 자비스. 이거 설계도면 좀 띄어봐.”

[Yes, sir.]

이봐, 이봐! 댁이 뭔데 남의 아들내미한테 명령 질이야? 자비스! 네가 이렇게 아빠를 구별할 줄 몰랐다니 아빠는 실망이 매우 커.”

[But sir. 두 분의 유전학적 물질이 동일-]

“Mute.”


짜증을 부리며 자비스를 조용히 시킨 토니는 다시 눈앞에 놓인 자신의 적을 노려보았다.

 

내 연구소에서 나가.”

자네 스티브를 좋아하지?”

 

자비스가 띄운 설계도를 이리저리 만져보며 동문서답마냥 아무렇지 않게 묻는 스타크의 질문에 토니가 기겁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내가 그 노친네를? 차라리 헐크랑 토르가 형제지간이냐고 묻지 그래?”


스타크가 설계도면에서 눈을 떼고 조용히 토니를 응시했다. 토니는 차가운 푸른 눈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말한다면 저 시선의 의미가…….

 

“5년이야.”

?”


더 이상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스타크의 시선만은 여전히 토니를 향해 있었다. 곧 찬물을 맞은 듯 토니의 입꼬리가 떨려왔다.

 

최악이네.”

평행 세계니까.”


토니가 마른세수를 하며 깊게 한숨을 내쉬자 스타크가 쓰게 웃어보였다.


내 세계와 이곳 세계는 비슷하면서도 다르지.”

하지만 결국 비슷하다는 게 문제잖아.”

글쎄? 그래도 내 쪽 상황에 비하면 난 네가 부러워 미칠 거 같은데?”


토니가 무슨 말이냐고 바라보았지만 스타크는 대답 없이 다시 설계도면으로 시선을 옮길 뿐이었다랩 실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토니가 걱정되지만 지난번에 싸운 일이 걸려 랩 실에 내려가지도 못하고 근처만 서성이고 있던 스티브의 모습에서 스타크는 자신의 세계의 로저스를 연상했다. 지금쯤 화가 많이 나 있을 것이었다. 어서 빨리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알지만 며칠 전 로저스가 한 말이 스타크의 머릿속을 계속해서 차지했다.


자네를 믿네. 그렇기에 난 자네가 다치지 않기를 바래. 부디 행동을 자제하게. 토니.’


그렇게 다치지 않길 바란다면 자신을 믿지 않아준다면 좋을 텐데. 그럼 더 이상 그가 자신에게 기대도, 실망도 하지 않듯이 자신 역시 그러할 텐데 말이야. 이쪽 스티브와 자신 세계의 로저스를 비교하며 스타크가 이 세계의 토니 스타크를 향해 웃음 지었다.


이 세계에는 제네럴 광석이 없나?”


질투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스티브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보는 이의 마음이 더 안타까울 정도로 캡틴의 어깨가 아래로 축 쳐져있었다. 콜슨이 무슨 일이 있으시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지만 스티브는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만 가로저었다. 물론 스티브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유능한 요원은 천하에 캡틴 아메리카를 저렇게 우울하게 만든 원인을 이미 눈치채있었고, 바튼은 당장에 무기고로 달려가려는 콜슨을 말리느라 진땀을 빼야했다.


토니를 걱정하는 자신을 대신해 당당히 랩 실로 내려가 준 스타크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니면 무슨 쿵짝이 그리 잘 맞았는지 어느새 합심하여 며칠째 랩 실에 처박혀 버리고 말았다. 걸어 다니는 재앙이라 불리 우는 두 악동이 합쳐 한동안 나오지 않자 따라 불안해진 나타샤가 상황을 보러 가보았지만 그녀는 곧 공돌이들이 모이면 일어나는 흔한 공돌 현상 일뿐이라 간단히 결론 내렸다. 하지만 그런 결론은 토니가 밥은 제대로 먹는지, 잠은 제대로 자는지에 대한 스티브의 걱정을 줄여주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하루 종일 방에서 한숨만 팍팍 내쉬던 스티브는 답답한 마음이라도 풀고자 체육관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체육관에 내려간 스티브는 예상외의 깜짝 선물을 받게 되었다.

 

아오, 난 필요 없다고!”

여기 살이나 만져보고 필요 없다고 다시 한 번 말해보시지? 세상에. 이 물컹물컹한 기름 덩어리 좀 봐. 아무리 나이가 있다지만 너무 해이한 거 아니야? 히어로에게 자기관리가 얼마나 필요한지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하루 종일 집에 쳐 박혀 인스턴트나 먹고 뒹굴 거리면 피둥피둥 살만 찌는 거 몰라?”

필요 없어! 그리고 난 매일 필라테스를 하기 때문에.”

유연성이라면 몰라도 필라테스가 전투 기술을 올려 주는 건 아니지. 거기다 넌 익스트리미스도 없고, 그 아머 벗으면 완전 민간인이잖아. 최소한 밖에 나가 불량배 한 둘은 상대할 기술정도는 익혀놔야지.”


며칠 만에 듣는 까랑까랑한 토니의 반가운 목소리에 한걸음에 달려간 스티브는 곧 가벼운 트레이닝복의 두 토니를 볼 수 있었다. 싫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몸으로 표현하는 토니를 끌고 강제로 보호 장비를 끼우려던 스타크는 스티브의 등장에 반가움을 표했다.


헤이, 스티브! 시간 괜찮으면 스파링 한 판 어때?”


처음 받는 스파링 제안에 스티브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스파링이요?”

요 며칠 몸을 움직이지 않았더니 금세 굳었나 봐. 여기는 빌런도 잘 나타나지 않고. 이렇게 있다간 나도 여기 토니처럼 뱃살 나올까 무서워서 좀 움직여야 할 것 같아서 내려왔는데 이쪽 토니는 보시다시피 너무 반항이 심해서 좀 짜증이 나던 차였거든. 보아하니 운동하러 내려온 거 같은데 잠깐만 좀 상대해주면 안되겠나?”


토니가 눈을 반짝이며 얼른 스티브를 쳐다보았다. 마치 구원의 빛을 보는듯한 토니의 기대어린 눈빛에 스티브의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결국 스티브가 스파링 제안을 받아들자 토니는 만세를 외치며 빠져나가려했다. 그러자 스타크가 토니를 붙잡고 으름장을 놓았다.

 

넌 운동 좀 해야 돼.”

 

토니가 무어라 항변하려 했지만 스타크는 뱃살을 잡아당김으로써 토니의 입을 닥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이 스파링을 할 동안 구석에서 몸이나 먼저 풀라고 시킨 스타크는 곧 스티브와 함께 연습용 링에 올라섰다.

 

이렇게 나란히 두고 세워보니 스티브와 스타크의 체격이 제법 비슷해 보였다. 시작 링이 울림과 동시에 스타크와 스티브가 물 흐르듯 가볍게 몸을 움직였다. 스티브도 혼자 샌드백을 치는 것이 아닌 오랜만에 제대로 된 대련에 기분이 좋아보였고, 마치 오래전부터 상대해온 사람마냥 스티브의 패턴을 읽어내는 스타크도 꽤 실력이 좋아보였다.


두 다리를 쭉 뻗고 손을 뒤로 해 편한 자세로 두 사람을 지켜보던 토니는 어쩐지 저 두 사람 사이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진 것만 같단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토니 스타크라. 환상적이군. 스티브가 좋아할만해.


매일 으르렁거리며 떽떽거리고 싸우는 자신과 달리 스타크는 다른 세계에 떨어진 주제에 금방 친화력 좋게 모든 어벤져스 멤버들과 친해진 것이 자신보다 성격이 나아보이는 것 같았다. 물론 이 말을 616 지구 사람들이 듣는다면 어이가 승천했겠지만 지금은 예상할 수 없는 문제였다. 자신에 비해 어른스럽고 섹시한 스타크야말로 캡틴 아메리카에게 어울리는 동료, 아이언맨이 아닌가 한 생각에 토니는 우울감을 맛보았다. 그에게는 좀 더 어른스럽고, 강한 동료가 어울렸다.

 

한참을 주거니 받거니 하던 스타크와 스티브는 적당히 땀을 빼고 나자 암묵적으로 타임을 했다. 만족스럽게 스티브의 어깨를 두들긴 스타크는 개운하단 표정으로 물을 마시는 모습까지도 한 편의 cf 같았다. 뒤에 선 금발 미남과 나란히 선 것이 너무 잘 어울린다는 표현조차 아쉬울 정도였다. 스타크가 물통을 옆으로 건네자 스티브가 물통을 건네받았다.

 

실력이 꽤 좋으시군요?”

좋은 스승이 있어서 말이야.”

누군지 몰라도 어지간히 실력이 좋나보네? 설마 해피는 아니지?”


스타크가 토니의 농담에 웃음을 터트리며 엄지손가락으로 스티브를 가리켰다.


“Nope. 내 스승은 이 분이라서.”

슈퍼 솔져 개인강습이었어? 그거 강습비 장난 아니게 깨졌겠는 걸?”

그만큼 실력 있는 선생 아니겠어?”


태연하게 링에 몸을 기댄 스타크는 수건으로 땀을 닦아냈다.


좋은 스승은 언제나 곁에 있는 법이지. 스티브, 자네도 시간 날 때 이쪽세계의 나 좀 끌고 와서 가르쳐주지 그래? 저 살 좀 봐. 흐미-.”

살 안 쪘어!”

어디보자. 치즈버거 한 개에 보통 560kcal니까.”

너 진짜 짜증나!”


처음으로 일방적으로 당하는 토니의 모습이 귀여워 스티브는 살짝 웃음을 짓다가 그걸 또 캐치한 토니의 매선 눈빛에 얼른 입을 다물었다.


크흠. 꽤 친하신가 보군요?”

나랑 스티브 말이야? 물론이지. 몇 년을 함께 해온 사이니까 말이야. 세세한 버릇까지도 서로 잘 알 정도인걸. 우리 쪽 스티브는 뭔가 불만스럽거나 그러면 작게 손가락을 두들기거든? 어찌나 미세하게 움직이는지 나 아니면 웬만한 녀석들은 모르는 버릇일거야.”

그거 이쪽이랑 비슷하네. 이쪽 캡시클도 그러는데.”

“? 내가 말인가?”

맨날 회의 때마다 그러잖아.”


자신도 몰랐던 버릇 이야기에 신기해하는 스티브를 향해 토니가 손가락을 까닥여 보였다. 특히나 토니의 의견이 마음에 안 들 때 나오던 스티브의 버릇이었다.


그래도 성격 측에서는 정말 둘이 다른 걸?”

어떻게 다른데?”

무섭지. 우리 쪽은 아주 무서워.”

, 댁을 다음번 쉴드 회의 때 대동해가야겠는걸? 저 순둥이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려면 말이야.”


말을 내뱉고 나서야 토니는 다시금 영 좋지 않게 끝난 지난번 회의 일을 상기시키며 자신을 비난했다부드럽게 웃음 짓던 스티브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져갔다. 얼간이. 멍청이. 분위기 좋았는데 도대체 왜 거기서 그런 말을 한 거야? 이놈의 생각 없는 주둥이스타크는 표정 변화 없이 홀로 자책 하는 토니의 속마음을 읽어내듯 피식 웃으며 둘 사이를 끼어들었다.


아니. 근본적으로 분노의 크기가 다를걸? 우리 쪽 스티브는 정말 화가 나면 입을 다물거든.”

난 그거 싫어.”


토니가 미간을 찡그리며 작게 중얼거리자 스티브는 자신이 그에게 그런 식으로 화낸 적이 있나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생각해보면 처음 타워에 들어섰던 날 몇 번 그랬던 거 같기도 한 거 같았다. 스타크는 덧붙이듯 뒷말을 추가하였다.


그리고 난 그의 빅 팬이거든.”

팬이요?”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스티브를 향해 스타크가 백만불짜리 사장님 미소를 날려주었다.


내 타워 내에는 캡틴 아메리카 신전이 있지.”

세상에.”


입이 떡 벌어진 토니가 뭐라 말을 하기 전에 스타크가 단호하게 외쳤다. 취향 존중! 쉴드 내에도 스티브를 좋아하는 팬들이 많지만. 콜슨이라던가. 콜슨이라던가. 천하의 토니 스타크가 캡틴 아메리카를 신으로 추대하다시피 만들었다는 신전 이야기에 스티브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몰라 더듬더듬 스타크를 불렀다.


그럼 그쪽 저도 알고 있나요? , 그 신전이란 거를요?”

. , 그래봐야 우리 쪽 타워 내 녀석들 대부분이 캡틴 아메리카에 대한 팬심으로 가득한 녀석들이다 보니 스티브도 크게 뭐라 말은 안하고 적당히 취향을 존중해주지.”


타워 모든 인간들이 캡틴 아메리카의 팬이라는 말에 토니가 질린다는 듯 팔을 긁었다.

 

그쪽 세계는 여러 가지로 나랑 안 맞는 거 같네.”

걱정 마. 넌 너무 민간인이라 네가 만약 반대로 내 쪽 세계에 떨어진다면 그 이상으로 맞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이쪽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괴짜 같은 히어로 녀석들과 해괴하다 싶을 정도로 일어나는 괴팍한 각종 사건들. 그리고 하루도 쉬지 않고 날뛰는 난폭한 빌런 녀석들 이야기를 굳이 꺼낼 필요는 없을 것이었다. 스타크는 스티브와 토니를 향해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난 그를 존경하고 좋아하지. 그래서 그가 화나면 무서워. , 그만큼 화가 나도록 돋우게 만드는 원인은 주로 나지만 말이야. 하지만 적어도 우린 아무리 싸우고 화가 나도 언젠간 결국 화해하곤 해. 주로 캡틴이 날 용서해주는 구조이긴 하지만 우린 우리 나름대로의 화해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하지. 서로간의 방식이 있듯이 천천히 말이야.“

 

덧붙이듯 들려오는 스타크의 충고어린 목소리에 스티브와 토니는 눈을 돌렸다. 스치듯 스티브와 토니의 눈이 마주친 것 같았지만 두 사람 모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스타크의 한마디 한마디가 그들을 찔러오고 있었다스타크는 어색해하는 둘의 꼴을 구경하다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 그럼 이제 몸도 풀렸으니 너도 올라오도록 해.”

? ?”

당연하지. 어디 한번 해피한테 배운 실력이나 보여줘 보라고.”


스타크가 토니에게 권투 장갑을 집어 던졌다. 장갑을 받아든 토니는 잠시 고민하다가 스티브를 올려다보았다. 스티브에게 어울리는 강한 동료 곧 토니가 결심한 얼굴로 당당히 링에 올라섰다두 거구 사이에 이렇게 가까이 서보니 새삼 자신의 체구가 작다는 게 느껴졌지만 작다고 해서 얕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토니는 최대한 스파크를 튀기며 멋들어지게 권투 자세를 취했다.


, 덤벼!”

 

쩌렁쩌렁한 토니의 외침과 동시에 스타크가 조용히 링에서 내려왔다.


“Fight!”


링 밖으로 나온 스타크는 멋대로 시작 링을 울렸다. 토니가 당황하여 주춤거렸다.


, , 뭐야?! 니가 상대해 주는 거 아니었어?”

바로 앞에 좋은 스승이 있는데 내가 왜? 헤이, 스티브. 봐주지 말고 저 쬐끄만 녀석 날려버려.”


스타크는 열정적으로 링 주변을 돌면서 두 사람을 응원하거나 야유하며 대련을 강요했다.  엉겁결에 토니와 대련하게 된 스티브가 난감함을 표했다. 아까 스타크에 비해 조그마한 토니를 상대로 어디 하나 잘못 치기라도 할까봐 스티브의 행동은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런 스티브의 태도는 토니에게 불을 붙이는 꼴만 되었다. 계속 그렇게 시간만 죽일거냐는 스타크의 비아냥에 정신을 차린 토니가 먼저 스티브에게 주먹을 날렸다.


은근 개인감정이 담긴 듯 한 공격을 가볍게 피해낸 스티브는 통통거리며 계속해서 주먹을 날려대는 토니에 맞춰 자세를 취했다.

 

아까 스타크와 하던 때에 비하면 어린애들 장난만큼이나 진지하지 못한 느린 동작들이었지만 스티브는 이런 식으로 토니를 상대하는 것도 썩 괜찮다 생각했다. 자신에게 쌓인 화를 풀어내기라도 하듯 이를 악물고 날리는 토니의 근육 상태를 섬세하게 살펴보며 스티브가 어드바이스를 했다.


토니. 자네는 상체에 너무 힘을 주고 있네. 허리를 좀 더 숙여 하체에 무게를 줘보게.”


잠시 주춤거리던 토니는 곧 스티브의 조언대로 허리를 숙여보였다. , 이렇게? 여전히 무언가 엉성한 토니의 자세를 직접 손으로 잡아주고 나서야 스티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스치듯 닿아오는 피부와 진하게 풍겨오는 남자의 땀 냄새가 기분 좋단 생각이 들었다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둘 사이를 향해 외치던 스타크의 목소리가 사라졌는데도 둘은 처음부터 들리지도 않았다는 듯 서로에게 집중했다. 입을 다물고 상대의 눈을 보고, 스스로를 감추는 방어막 없이 움직이는 두 사람의 움직임은 더 없이 즐거워보였다


더 이상 두 사람을 방해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한쪽에 주저앉은 스타크는 조용히 둘을 지켜보았다. 저 둘이 저러고 있는 걸 보고 있노라니 문득 예전 로저스와 스파링을 할 때 쉬 헐크가 한 말이 생각났다.

 

그래, . 장소가 중요한건 아니지.‘


로저스가 쉬헐크의 말에 웃음을 지었다.


이런. 그녀는 자네 체육관이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이군?’


스타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로저스의 말에도. 쉬 헐크의 말에도. 단지 운동하는 장소의 중요성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뜻과 달리 그녀의 말은 체육관에서 데이트 흉내를 내려던 스타크의 속마음을 찌르는 것 같아 도저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스타크가 겨우 입을 뗄 수 있었던 것은 로저스가 샤론의 전화를 받고 한참이 지나고 난 뒤였다. 데이트가 생겼다며 다녀오겠다는 로저스를 향해 스타크는 잘 다녀오라며 밝게 웃어주었다.

 

아름다운 금발머리 한 쌍의 커플. 언제나 듬직하고 모든 히어로들의 존경 받는 진짜 영웅은 자신의 여자 친구 앞에선 평범한 사랑에 빠진 청년의 모습을 보였다. 데이트 나가기 전 몇 번이고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체크하고, 그녀가 좋아하는 뮤지컬 표를 구하고 싶다며 친우에게 수줍게 부탁하던 로저스의 모습은 너무도 밝게 빛나 더욱더 스타크를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다.

  

지금쯤 그는 무얼 하고 있을까? 자신을 찾고 있겠지? 갑자기 건물에 매몰되어 워프 되었으니 캡틴 뿐 아니라 다른 어벤져스 멤버들도 당황해할 것이었다. 언론에서는 무어라 떠들어댈까. 어서 빨리 돌아가야만 했다. 어서 빨리.

 

보스! 마지막으로 스타크를 부르던 건 스파이더맨이었다. 금방이라도 그를 구해낼 듯 뻗은 스파이더맨의 손이 애처롭기까지 했다. 당시 상황을 머릿속 컴퓨터로 재연시킨 스타크는 이마를 부여잡았다너무도 익숙한 현장의 모습. 비명 지르는 사람들. 동료들의 무전. 어딘가 부서지고,망가지는 소리와 자신을 향해 야유하는 목소리들. 토기가 몰려왔다.

 

황급히 입을 틀어막은 스타크는 속을 가다듬으며 자리에 일어났다. 링 쪽에 있는 물을 마시기 위해 다시금 연습용 링에 다가가려는데 토니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스타크를 발견했다.


, 이봐. 왜 그래?”

 

스타크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기위해 토니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위험해!”


스타크가 떨어졌을 때 생겼던 작은 웜 홀이 또 다시 토니의 머리 위에 생겨나 있었다. 스타크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과 동시에 스티브가 토니를 자신 쪽으로 확 끌어안아 보호했다. 간발의 차로 피한 자리로 웜 홀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또 다시 아이언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