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건물 잔해들 사이 캡틴 아메리카의 표정은 무서우리만큼 굳은 표정이었다. 건물이 무너지기 전 어벤져스 멤버들이 시민들을 보호했기에 당시 인질이었던 시민들은 모두 무사할 수 있었으나 단 한명의 실종자만은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수색대원들과 어벤져스 멤버들. 그리고 쉴드와 X-맨들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아이언맨은 헬멧하나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매몰자가 생존할 수 있는 최장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72시간을 한참 넘은 시점에서 로저스는 부디 토니의 아머가 무사히 제 주인을 지켜주기를 빌었다. 스파이더맨이 부산스럽게 수색대를 도우며 토니를 불렀다. 다 쉬어버린 목으로 계속해서 토니를 부르짖는 스파이더맨의 목소리에 울버린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망할 깡통자식. 대체 어디 처박혀 있는 거야?”
여기저기 묻은 먼지와 전투흔적이 고스란히 있는 울버린의 차림새는 우스울 지경이었지만 그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같은 처지였기에 그 누구도 그를 놀리는 목소리는 없었다. 오히려 친숙하고도 그토록 얄미운 목소리로 누군가가 그들을 향해 재미없는 농담을 날려주길 원할 뿐이었다.
신체를 자유자제로 늘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판타스틱 포의 리드가 매몰된 곳 깊숙이 손을 넣고 휘젓다 무언가 묵직한 느낌을 잡아내고는 쉬 헐크를 불렀다. 잔해를 뒤지는 쉬 헐크의 곁으로 스파이더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다가왔다. 로저스는 리드가 들어 올린 물건을 보고 잘생긴 눈썹을 찌푸렸다. 무너지기 전 빌런이 스타크를 향해 쏜 그 총이었다.
“흥미로운 물건이군. 조사해 보는 게 좋겠어.”
“진심이에요? 지금 보스가 죽느냐 사느냐 한 이 판국에?”
“진정하고 만약의 사태를 생각해봐, 스파이더맨. 만약 이 총이 신체를 작아지게 한다든가, 어딘가 워프 시키는 총이라면 어떡하지? 아니면…우린 최악의 사태까지도 모두 고려해 봐야해.”
체포된 빌런들이 무장한 총은 대부분 무작위로 만들어진 정체모를 총들이었단 점을 감안하였을 때 침착한 리드의 설명은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스파이더맨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입을 대쭉 내밀고 조그맣게 툴툴거렸다. 로저스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게 좋겠군.”
총을 가지고 리드가 돌아선 사이 스파이더맨은 총이 떨어진 위치에서 스타크가 총을 맞은 거리를 재보더니 그곳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쉬 헐크가 스파이더맨의 뒤를 따랐다.
로저스는 잠시 고개를 돌려 기자들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아이언맨의 죽음? 이라는 자극적인 기사거리를 잡아챈 기자들은 마치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 떼 같이 현장에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장면을 찍고자 난리 법석이었다. 쉴 새 없이 번쩍이는 플래시와 카메라 찍는 소리에 로저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얼마 전 스타크가 빌런과 협조한다는 의혹이 뜰 당시 스타크는 자신이 만약 죽는다면 가장 기뻐할 것은 기자들일 것이라고 기분 나쁜 농담을 했었다. 자신을 영웅으로서 추대해야 할지 아니면 빌런과의 협조가 사실이라며 자살한 거짓된 영웅이라 일컬을지는 기자들이 제목을 지어줄 거란 스타크의 말은 로저스의 기분을 퍽 상하게 하였었다.
왜 그때는 그저 기분 나쁜 농담이라고 치부해버리고 만 것일까? 벌써부터 떠도는 기사 글들은 스타크의 말이 그저 농담이 아닌 현실임을 증명시켜주고 있었다. 천재. 억만장자. 아이언맨. 그를 일컫는 호칭들은 많았지만 로저스에게 있어서 토니 스타크는 언제나 유쾌하고 때로는 자아도취에 빠지고 마는, 자신을 이 세계로 끌어올려준 고마운 친구였다. 언제나 곁에서 등을 내줄 수 있는 든든한 친구의 죽음이란 캡틴 아메리카를 붕 뜨게 만들었다. 수많은 전쟁을 격어 오며 경험해온 동료의 죽음들은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었지만 스타크의 죽음은 그에게 좀 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당장이라도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캡하고 불러올 것만 같은 스타크의 실루엣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얼마 전 행동을 자제하라던 자신의 말에 씁쓸하게 웃음 짓던 스타크의 모습이 연결되었다.
‘걱정 마. 자네를 걱정시키지 않을 테니까.’
스타크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지만 로저스가 들었을 때 그 목소리는 지나치게 음울한 기색이 돌았다. 그때의 대화가 로저스와 스타크의 마지막 대화였고, 더 이상 스타크는 없어져버렸다.
로저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를 악물었다. 거친 콘크리트 더미를 맨손으로 파내며 로저스는 계속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약해져서는 안 돼. 죽었을 리가 없어. 그는 아이언맨이야. 살아있어. 반드시 그는 살아있어. 그러나 이내 캡틴 아메리카의 손이 느려졌다. 주변에 스타크가 있었더라면 놀라 그를 놀렸을 정도로 캡틴 아메리카의 손은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다. 캡틴 아메리카는 떨리는 손을 얼굴에 가져갔다.
“토니….”
§ § §
자넷은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며 정신 사납게 돌아다녔다. 그러다 결국 행크에게 한소리를 듣게 된 자넷은 짜증을 부렸다.
“토니가 사라진 이 마당에 어떻게 침착할 수가 있어?”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이렇게 걱정만한다고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자넷.”
냉정하기까지 한 행크의 말에 자넷이 화를 벌컥 냈다. 하지만 침착하게 자넷의 손을 잡은 행크는 그녀가 방금 전까지 깨물던 손톱을 손으로 어루만져주었다.
“나도 그가 걱정 되는 건 마찬가지야.“
차분한 행크의 목소리가 연구실을 울렸다. 자넷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컴퓨터를 쳐다보았다. 앤서니가 빌런에게 납치당한 순간 어벤져스들은 빠른 속도로 빌런을 쫒았다.
포악스런 헐크 스매쉬가 빌런의 소형 공중 비행선을 추락시키는데 성공했지만 안에서 발견된 것은 앤서니를 납치한 빌런 한 명 뿐이었다. 뼛속까지 시릴 캡틴 아메리카의 분노에 맨몸으로 노출당한 빌런은 입을 달달 떨었다. 녀석은 분명 아이언맨을 빌런 빔으로 쏘아 낚아챈 건 맞지만 빛과 함께 순식간에 아이언맨이 사라졌다는 증언을 처절하게 내뱉었다. 진짜라고 여러 번 확신을 받고 나서야 쉴드 감옥으로 끌려가게 된 빌런은 끌려가면서 살려줘 고맙다며 어벤져스들이 자기를 죽이려 했다 증언하였지만 그 누구도 빌런의 말에 귀담아 듣는 이는 없었다.
당장에 아이언맨의 수색에 나선 어벤져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앤서니는 머리카락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ID 카드도 먹통이었고, 컴퓨터는 조그만 단서하나 찾아내지 못했다. 모든 어벤져스 멤버들이 앤서니를 찾는데 주력을 다했지만 그중에서도 캡틴 아메리카는 정말 밤낮을 새며 피를 토할 지경으로 앤서니를 찾아다녔다.
이제 막 연인 사이가 되었건만 사라진 연인을 찾기 위해 사방팔방 두 발로 뛰어다닌 캡틴을 더 이상 두고 보지 못하였던 어벤져스는 설득 끝에 간신히 그랜트를 타워로 데려왔다. 행크는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처음으로 돌아갈 필요를 느꼈다. 아이언맨이 사라지기 전 그를 쏜 총에 대한 분석에 나선 행크는 부디 이 총이 앤서니를 찾는 희망이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때 무언가 찾아낸 듯 블랙 팬서가 행크를 불렀다. 두 과학자는 초조한 어벤져스 멤버들의 시선을 받으며 각종 데이터들 앞에 섰다. 한참을 알 수 없는 용어로 대화를 나눈 뒤에야 무언가 결론을 내린 듯 행크가 그랜트를 돌아보았다.
“총 자체는 특별한 게 없어. 빌런 녀석이 설정해둔 데이터 수치로 보아 아이언맨을 납치하기 위해 단순 기절용으로 만든 모양이야. 그런데 녀석이 제작 도중에 무슨 짓을 해놨는지 몰라도 특이한 걸 찾아냈어.”
“그게 무엇이지?”
“마치 이건 블랙홀을 부르는 것만 같아. 단 한 발이었지만 맞은 당사자를 중심으로 블랙홀이 생기고, 상대를 빨아들여 어딘가로 워프 시킨 모양이야.”
“그렇다는 건… 토니가 어딘가로 이동되었다는 건가?”
“그래.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이 지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야. 우주 어딘가로 갔을 수도 있고, 다른 차원으로 갔을 수도 있단 소리야. 우린 그가 정확히 어디로 떨어졌는지 알 수가 없어.”
자넷이 손으로 입을 가려 비명을 막았다. 미즈마블이 나서서 외쳤다.
“난 나사의 정보 담당요원이야. 당장 요청을 해서…!”
“캐롤.”
블랙 팬서의 낮은 목소리에 미즈마블이 입을 다물었다. 그 누구도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한 채 캡틴 아메리카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랜트는 참담하다 못해 두 발밑이 쑥 사라진 느낌을 받았다. 앤서니가 사라져버렸다. 그 참혹할 만큼 잔인한 현실은 그랜트를 다시금 먼 미래로 떨어트린 것만 같았다. 아이언맨. 사랑스러운 자신의 연인. 그토록 갈망하고 원하였기에 이제야 마침내 품 안에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한 앤서니가 순식간에 그의 품 안에서 부서져 사라져버렸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때 앤서니에게 화를 조금만 내고 그가 공중으로 날아오르지 않도록 하였더라면…. 아니, 처음부터 과거의 자신이 미래를 걷는 그를 손에 넣으려 한 것 자체부터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어째서 이런 결과가 온 것인지 머릿속이 어지럽게 뒤섞였다. 슈퍼 솔저가 되기 전 다시 무능력했던 자신으로 돌아간 것만 같이 그랜트는 자신의 연인 하나 지키지 못한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얼음에 갇힌 70년처럼 또 다시 캡틴 아메리카는 자신의 미래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랜트를 부르는 행크의 목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 것 마냥 희미하기만 했다. 짓이기듯 앤서니의 이름을 뱉으며 그랜트는 두 눈을 감았다.
§ § §
토니는 차 안에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거센 빗줄기가 쏟아져 기다란 선을 그리며 흘러내렸다. 갑작스럽게 쏟아진 소나기는 분위기 좋았던 저녁식사가 아쉬울 만큼 야속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스티브는 초조하게 손가락을 두들겼다.
좁은 차 안에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빗소리와 손가락 두들기는 소리만이 소리에 전부였다. 토니가 차를 가지고 오지 않았더라면 큰일 났을 거란 생각에 스티브는 속으로 울상을 지었다. 예전에 콜슨이 오토바이 면허를 딸 때 자동차 운전면허도 새로 따시는 게 어떻겠냐던 그 말을 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과거의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드디어 신호등의 신호가 바뀌더니 토니가 먼저 침묵을 깼다.
“저녁 맛있었어. 캡.”
“아, 그것 참 다행이군. 난 자네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했는데….”
“나 그렇게 입맛 까다롭지 않아.”
토니가 킥킥 웃자 스티브도 그 미소에 비로써 따라 입꼬리를 올렸다.
“그나저나 아쉽군. 모처럼 함께 한 식사인데 비가 내려서….”
“왜? 비 좋잖아. 시원하고, 운치 있는 게 난 좋은데?”
토니는 말을 하면서 라디오를 틀었다. 주파수를 몇 번 설정하자 곧 라디오에서 비와 어울리는 은은한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어색해진 분위기를 돌파하듯 토니는 음악 소리에 맞춰 콧노래까지 부르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 모습이 제법 우스워 스티브는 웃음을 터트렸다.
토니는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농담을 건넸고, 스티브는 토니가 하는 농담을 전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최대한 이해하고자 노력하며 즐겁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다시금 좋아져 갔다. 한참을 서로를 보며 웃음 짓던 스티브는 어쩌면 지금 분위기라면 될 거 같다는 자신감을 갖고 토니를 불렀다.
“토니. 지난 번 회의 때는 미안했네.”
“…뭐?”
뜬금없는 스티브의 사과에 토니가 어리벙벙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스티브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그때, 내가 너무 화가 나 자네 아버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나. 하워드와 자네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고 난 후부터 계속 자네에게 사과하고 싶었네.”
“…나도 그때 이쁜 말만 한 것도 아니고… 뭐, 캡은 몰라서 그런 거잖아. 굳이 사과할 필요는 없어.”
“그래도 자네한테는 모두 사과하고 싶네.”
뚫어질듯 바라보는 스티브의 시선에 토니는 괜히 운전대를 고쳐 잡았다. 빗소리와 아름다운 사랑 노래 속 마치 세레나데마냥 스티브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처음에 자네에게 히어로답지 못하다고 한 것도, 매번 회의 때마다 화를 내던 것도, 내가 현대에 익숙하지 못해 한 행동들 때문에 자네를 짜증나게 한 것도 모두 자네에게 사과하고 싶었네. 자넨 내가 생각 한 것 이상으로 그 누구보다도 희생심 깊고 용기 있는 사람이네. 단면적인 모습만으로 자네를 평가하려한 날 용서해주게.”
“어…음…. 알았어. 이것 참 어색하네. 그럼 캡도 내가 한 말들…. 음. 심한 말들도 많았을 텐데 그것도 용서해줄 수 있어?”
“물론이지. 토니.”
마치 순정만화에서 갓 튀어나온 것만 같이 환하게 웃음 짓는 스티브의 웃음에 토니는 고개를 돌렸다. 갓. 퍼킹 썬샤인. 저건 무기야.
토니의 속마음도 모른 채 스티브는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사실 자넨 회사일도 바쁘고, 요샌 다른 토니들과 즐거워보여서 오늘 나에게 시간을 내줄 수 있을지 걱정 많이 했네만 이렇게 시간 내 나와 줘서 고맙게 느끼고 있네.”
토니는 스티브에게 이 정도 시간쯤은 얼마든지 있다고 항변하면서도 한편으론 찔끔 양심이 찔려했다. 요 며칠 두 토니와 붙어 다녀 회사 일에 통 손을 못 댄 것 때문에 안 그래도 단단히 화가 난 페퍼가 생각났다. 제발 영웅 활동이고 뭐고 간에 연애사업만큼이나 회사 일에도 신경 좀 써주면 안되냐는 페퍼의 사정어린 분노에 의외로 적극적으로 나서준 것은 스타크와 앤서니였다. 토니가 맡아야할 서류들을 모두 대신 처리해준 다른 토니들의 보은을 뒤로하고 스티브와의 저녁약속에 나온 토니는 나와 줘서 고마워하는 스티브만큼이나 두 토니의 은혜에 진심어린 감사를 표했다.
“확실히 난 과거의 사람이나 다름없기에 토니 자네와는 여러 가지로 맞지 않을 수 있네. 하지만 난 자네와 친해지고 싶어. 자네에 대해 좀 더 알고 싶고, 자네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네.”
스티브는 숨을 고르듯 한 템포를 쉬고는 웅얼거렸다.
“그…, 다른 토니들이 그러하듯이 말이야.”
정확히 스티브가 말한 의미는 스타크 쪽에 좀 더 치우친 말이었다. 로저스와 정말 친한 사이인 듯 남들에게 당당히 이야기하던 스타크의 모습이 부러웠던 스티브는 자신과 토니도 그 두 사람처럼 좀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번처럼 스파링도 계속 가르쳐주고, 서로간의 고민 같은 것도 들어주고. 안부를 궁금해 하듯이 토니 역시 천천히 자신에 대해 알려주고 그가 자신을 좋아하게 해주길 원했다. 그러다 만약 언젠가 서로의 마음이 동등해질 때가 온다면, 그땐 당당히 그에 곁에서 고백하고 싶은 마음에 내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친구부터 천천히 시작하자는 스티브의 의도와 달리 연인에게 고백하는 것 마냥 달콤한 스티브의 목소리는 상대에 따라 오해의 여지를 주는 말이었다. 물론 앤서니가 그 세계의 그랜트와 사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게 스타크와 토니 단 둘 뿐이었지만 스티브가 말하는 다른 토니의 의미가 앤서니라 생각한 토니는 몇 초간 이 말이 지금 고백인 것인가?! 한 생각에 과부하에 걸려버렸다.
만약 지금 날씨가 이처럼 어둡고 칙칙하지만 않았더라면 스티브도 눈치 챘을 만큼 얼굴이 새빨개진 토니는 자신의 목소리가 웃기게 나오는 건 아닌가 걱정하며 입을 뻐끔거렸다. 캐, 캡…. 그 말은….
“어찌되었든 우린 어벤져스 동료이지 않은가.”
자르듯 들어온 스티브의 뒷말에 토르가 묠니르로 토니의 머리를 뎅- 하고 치는 것 같았다. 빗발은 더 거세졌고, 하늘에서 번개까지 떨어졌다.토니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눈치 채지 못한 스티브는 눈새 마냥 쑥스럽게 웃어보였다.
“안 그런가, 토니?”
어찌나 순수하고 솔직한 미소이던지 토니는 따라 웃으며 엑셀을 더 밟았다. 빗길 위로 거칠게 차를 모는 토니는 긍정의 대답과 달리 부르르 떨리는 입술은 감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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