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동작으로 아이언맨이 공중을 날아올랐어. 곳곳에 빌런들의 위치를 알려오던 자비스가 무언가 발견해내었는지 토니에게 알려왔어.
-sir. 8시 방향에 민간인들이 있습니다. 지금 빌런들이 그들 방향으로 향하고 있군요. 어떻게 할까요?
"shit! 그럼 당연히 막아야 하잖아!"
토니는 곧장 괘도를 바꾸었어. 빌런들이 모여있는 방향으로 리펄서 빔을 쏘아 자신쪽으로 시선을 끌게 만든 토니는 최대한 민간인으로부터 빌런들을 떨어트리려했어. 그런데 얼마 못가 그런 토니의 속셈을 눈치채었는지 빌런 몇놈이 방향을 바꾸어 다시 민간인들 쪽으로 향했어. 히어로의 약점을 잘 아는 녀석들이었지. 토니는 욕설을 내뱉으며 공중에서 급정거를 했어.
아슬아슬하게 빌런들을 헤친 토니는 방향을 튼 빌런들에게 무기들을 날렸어. 그 순간 아이언맨의 뒤가 비어 있었어. 기회를 놓치지 않은 빌런들이 집중적으로 공격하자 무너지듯 토니가 쓰러졌어. 젠장.. 한 주먹꺼리도 안되는것들이..! 통증을 참아내며 힘겹게 일어선 토니는 빌런들을 돌아보았어. 그러나 이미 토니를 중심으로 둥글게 진영을 이룬 빌런들이 서서히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어.
자비스가 아머의 동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일러왔어. 토니는 거칠게 숨을 쉬며 최대한 머리를 굴렸어. 이대로 공중으로 날아오를까? 하지만 그랬다간 빌런들이 다시 뒷쪽에 있는 민간인들에게 향할 위험이 있었어. 토니는 이를 악물고 조금이라도 더 아머가 버텨주기를 빌었어. 빌런들이 악다구를 지르며 토니에게로 뛰어들었어.
"스타크!"
토니를 부르는 외침과 동시에 눈에 띄는 방패가 그들을 향해 날아갔어. 정확한 명중력으로 빌런들을 맞춘 캡틴 아메리카는 그대로 기회를 놓치지않고 빌런들의 급소를 정확하게 공격해내었어. 스티브에 등장에 토니는 잠시 주춤하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그 역시 스티브를 공격하려는 빌런들을 향해 남은 리펄서 빔을 아낌없이 날려주었어. 가까이에서 헐크의 고함소리가 다가오고 있었어.
나타샤는 잔뜩 엉망이 된 자신의 붉은 머리를 대충 뒤로 쓸어 넘겼어. 바튼도 피곤한지 구석에서 땀을 닦아내고 있었지. 쉴드 요원들이 바쁘게 현장을 오고가는 사이, 바지를 추스려입던 배너가 다리를 살짝 저는 토니를 발견했어.
"토니. 의료진에게 치료를 받아야하는거 아니예요? 다리 상태가 영 안좋아보이는데요?"
"괜찮아. 그냥 좀 삐끗한 수준이라 굳이 치료할 필요는.."
"치료를 받게. 스타크."
토니가 아무렇지않게 씩 웃어보이려는데 언제 다가왔는지 스티브가 엄하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어. 자기도 얼굴 여기저기가 다 까진 주제에 스티브는 흠집이 잔뜩 난 토니의 다리 아머를 쳐다보며 무뚝뚝하게 말했어.
"언제 또 출동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부상을 그대로 방치할수만은 없어."
어벤져스의 중요한 전력 손실을 막기 위한듯한 스티브의 말투에 토니가 입을 비죽였어. 정말이지 말 한마디, 한마디가 딱딱한 군인이라 정이 가지가 않았어. 토니는 일부러 귓구멍을 파는 쉬늉을 하며 비아냥거렸어.
"오, 그냥 내가 다친게 착하신 캡틴 아메리카의 마음을 아프게해서 그런거라고 해주지 그래? 말하는 꼬라지하고는.. 그러니까 댁이 여자를 못 사귀는거야."
토니의 지적에 스티브가 얼굴을 찌푸렸어. 나타샤는 마스크 아래 스티브의 굳어있는 입술을 보았어. 조그맣게 열였다 닫는것이 무언가 말을 삼키는 모양새였어. 자신을 째려보는듯한 스티브의 눈길이 싫었던 토니는 더이상 말하기도 싫은지 손을 내저으며 자리를 피하려했어. 그때 근처에서 쉴드 요원이 당황스런 목소리가 들려왔어.
"이리로 오시면 안됩니다!"
쉴드 요원은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지 어벤져스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늙은 노파를 제지하려들었어. 다 헤진 차림새가 언뜻 일반 복장치고는 독특한 차림새였어. 프릴이 몇 단이나 붙은 화려한 색의 드레스인것이 마치 집시를 연상케하고 있었지. 늙은 노파는 어벤져스들과 눈이 마주치자 쉴드 요원을 밀쳐버리더니 곧장 스티브의 손을 덥썩 잡았어.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제 손녀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눌한 영어 솜씨로 늙은 노파가 몇번이고 머리를 조아렸어. 아무래도 아까 토니가 죽기살기로 빌런들을 막아낸 방향에 있던 민간인 무리중 노파의 손녀가 끼어있었던 모양이었어. 토니는 요원들 뒷쪽으로 어린 손녀가 그들 무리쪽을 바라보고 있는것을 보았어. 아이의 입이 고맙습니다라고 움직이는것이 보였어. 히어로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뿌듯한 순간을 만끽하며 토니는 남몰래 얼굴을 붉혔어.
노파가 계속해서 스티브의 손을 잡고 고맙다고 연신 감사의 인사를 건네었어. 당신 손녀를 목숨 걸고 구해준건 정확히 말하자면 그 캡시클이 아니라 나인데 말이지... 토니는 직접 입밖으로 꺼내고 싶은 말을 간신히 삼키었어. 그래, 뭐.. 나중에 캡시클도 도와주러 왔으니 같이 했다고 쳐야지..
스티브는 가까이 다가오려는 쉴드 요원에게 고개를 가로저어주고 부드럽게 노파의 손을 마주잡으며 웃어보였어.
"아닙니다. 마땅히 저희가 해야할 일들을 했을 뿐인걸요."
토니는 헛웃음을 지었어. 많고 많은 말 중에서 가장 입에 발린 말이라니.. 토니는 말재간 없는 스티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툴툴거렸어. 방금전까지만해도 딱딱하게 전력에 방해된다는듯이 말하던 주제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저리도 상냥해지는 스티브의 모습이 너무도 얄밉게만 느껴졌어. 언제나 자신에게만 쌀쌀맞게 대하던 스티브의 웃음이 못내 짜증나고 부러웠어.
노파는 스티브의 손등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대었어.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당신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그리고는 노파는 잘 들리지않는 목소리로 조그맣게 무어라 중얼거리는듯했어. 정확히 어느나라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치 주문을 외우는듯한 노파의 모습에 토니가 배너를 돌아보았어. 배너는 자신도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른다며 고개를 가로저었어.
그렇게 한참을 어벤져스들에게 축복을 내려준 노파는 다시 쉴드 요원들의 안내에 따라 손녀가 있는 방향으로 향했어. 노파의 손을 꼭 잡은 손녀가 어벤져스들을 향해 한번 더 감사하다며 손을 흔들었어. 어벤져스는 몸은 피곤할지라도 그들의 모습에서 한편의 위안을 삼았어. 내일이면 분명 또 높으신 분들이 공공 구조물들이 파괴되었다며 바락바락 비난해나갈지라도 한명의 시민 하나라도 그들에게 고맙다 인사하는것은 그들에게 힘을 주고 있었어.
스티브는 방금전 노파가 입술을 맞대었던 자신의 손등을 매만졌어. 축복이라는 단어가 스티브의 무뚝뚝한 입가에 미소를 걸게 하고 있었어.
빌런들을 소탕한 후에도 토니는 쉬지도 못하고 곧장 페퍼에게 끌려갔어. 아니, 사실 원래부터 토니가 해야 할 일들이었지만 미루고 미룬 주제에 출동 명령이 떨어지자 마자 도망쳐버린 죄이기도 하였지. 페퍼는 방금 막 빌런들에게서 지구를 구한 히어로에게 오늘 안에 이 일들을 끝내지 않는다면 오늘 상대한 빌런보다도 무서운 빌런을 만나게 될거라 협박을 해대었어. 그리고 그 협박은 토니에게 제법 신빙성이 있어 통한 모양이었어.
결국 도망치지도 못하고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느라 새벽이 다 되고서야 타워에 돌아온 토니의 얼굴은 초쵀하기까지 했어. 세상에 CEO를 야근시키는 사장님이라니.. 왠지 비서로 있었을때보다도 더 무서워진 것 같았어.
자기 전에 술 한잔이 고팠던 토니는 타워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있는 홀쪽으로 향했어. 그런데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타워 홀에 불을 키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것이 보였어. 자세히 보니 스티브가 잠도 안 자고 소파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어. 스티브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토니를 돌아보았어.
"이제 다녀오나?"
토니는 눈에 띄게 대체 저 인간은 안 자고 뭐하고 있던거야 ㅡㅡ 란 얼굴을 대놓고 지어보였어. 스티브도 그 표정을 읽었는지 미간을 찌푸렸지만 별 말은 하지 않았어. 바 쪽으로 걸어가는 토니를 힐끔 바라보며 스티브가 다시 말을 걸었어.
"다리는 치료 한건가?"
스티브의 말에 토니가 자신의 다리를 까닥였어. 아까보다는 나았지만 여전히 근육이 땡기는게 느껴졌어. 저놈의 캡시클이 왜그리 자신의 다리 안부에 집착하나 짧게 생각한 토니는 낮에 스티브의 말을 기억해내고는 또 한소리 할 기회를 잡았다는듯이 자신을 쳐다보는 스티브를 가증스럽듯이 바라보았어. 토니는 고급 술병하나를 꺼내 잔에 따르며 말했어.
"잔소리는.. 대충 응급치료는 해놨으니 괜찮아."
스티브는 아예 책까지 내려놓고 토니를 똑바로 쳐다보았어. 토니는 금방이라도 저 입에서 잔소리가 나올것아 벌써부터 귀찮게만 느껴졌어.
"내일 아침 배너 박사에게 정밀히 치료를 받아보게."
"나 내일 바빠.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CEO가 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산더미같이 많은데."
술잔을 든채 토니가 안그래도 오늘 페퍼에게 잡혀 한 일들에 대해 주절거렸어. 스티브는 그런 토니를 빤히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어. 오랜시간 앉아있었는지 소파에 앉은 자리가 그대로 남아있었어. 토니는 스티브가 자신쪽으로 다가오자 자신도 모르게 몸을 주춤했어. 이상하게 그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가까이 다가오면 몸이 자꾸만 긴장됐어. 스티브는 토니가 들고있던 술잔을 빼앗아 도로 바에 내려놓았어.
"내일 쉴드 회의가 끝나고 잠시라도 시간을 내도록해."
반항하나 없이 술잔을 빼앗긴 토니는 스티브를 올려다보았어. 스티브는 그런 토니의 시선을 피하듯 그제야 자신의 방으로 향해 걸어갔어. 여전히 지독하리만큼 무뚝뚝한 목소리로 잘자게라는 말이 귓가를 울렸어. 토니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채 엘리베이터가 닫히는걸 멍하니 바라만보았어.
한참이 지나고나서야 정신을 차린 토니는 스티브가 자신에게서 빼앗았던 술잔으로 고개를 돌렸어. 이상하리만큼 심장이 멈추었다가 다시 뛰는 기분이었어.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던 스티브의 푸른 눈이 토니를 무언가 누르고 있었어. 그러고보니 오늘 제멋대로 명령을 어기고 괘도를 바꾸었는데도 그 점에 대해서도 한마디 말이 없었지.. 토니의 손이 다시 술잔으로 향하다 말고 멈추었어.
"재미없어."
토니는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향했어. 오늘 하루종일 혹사당한 몸이 피로를 보내오고 있었어. 술잔의 담겨있는 술은 최근들어 부쩍 싸우는 수가 줄어든 스티브와 토니의 관계를 표현하듯 무서우리만큼 잔잔하기만했어.
토니는 배게에 박았던 얼굴을 겨우 들며 달뜬 신음을 내뱉었어. 등 뒤에 거구의 무게가 느껴졌어. 너무도 사랑스럽다는듯 목덜미에 닿아오는 입맞춤 하나하나가 사랑이 배어나있었지.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닿아있는 몸의 근육과 크기만 보아도 그 상대가 사내라는것을 알 수 있었어. 토니는 일평생 스트레이트로 살아온 자신이 왜 사내와 몸을 섞는지 궁금하지 않았어. 그저 어서 빨리 이 사내가 자신에게 줄 것을 기대하며 재촉하듯 엉덩이를 뒤로 내밀었어. 그러자 마치 애를 태우려는듯 사내가 토니의 엉덩이 사이에 무언가를 가져다 비벼대었어. 뜨겁고도 두꺼운 감촉만으로도 그것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었지.
토니의 엉덩이를 주무르는 손길에 힘이 들어갔어. 사내의 허리가 빠르게 움직였어. 엉덩이 골 사이를 오고가는 뜨거운 감촉이 토니를 흥분시켰어. 어서 빨리. 어서 빨리..! 토니의 재촉에 사내가 토니의 등에 키스를 했어. 사내는 천천히 하체를 일으키더니 토니의 어깨를 잡았어. 거칠지만 부드러운 손이 토니를 돌려 자신을 보게 만들었어. 토니는 사내의 아름다운 금발머리와 섬뜩하리만큼 아름다운 푸른눈을 바라보았어.
사내의 얼굴이 점차 다가오자 기다렸다는듯 토니가 사내의 얼굴을 잡아 자신쪽으로 가까이 끌어당겼어. 맞닿아진 입술이 아래에 불기둥만큼이나 뜨겁게 느껴졌어. 뭉근하게 감아오는 혀를 느끼는데 드디어 아래에서 천천히 사내의 것이 들어오는게 느껴졌어.
강제로 벌어진 아래가 아플법도 하것만 다정하게 입을 맞춰주는 사내의 입술이 기분좋아 토니는 배시시 웃어보일 수 있었어. 마침내 완벽하게 연결되는데 성공하자 사내와 토니가 얼굴을 똑바로 마주했어. 한번도 자신을 향해 지어준적 없는 따뜻한 미소가 사내의 입꼬리에 걸려 있었어. 사내가 다정하게 토니의 이름을 불렀어.
"와악!!"
토니는 눈을 뜨자마자 마치 눈앞에 있던 사내를 치워버리기라도하듯 배게를 바닥으로 내던졌어. 너무도 소름돋는 꿈에 토니의 등은 물론,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어. 방금막 마라톤을 끝낸 사람마냥 토니가 거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어. 그냥 개꿈치고는 더럽게도 선명한것이 기분이 더러웠어. 왜 여자도 아닌 남자랑. 그것도 그것이 하필이면 스티브 로저스랑! 다정한 연인사이마냥 뒹군단 말이가!!
지금도 자신의 몸을 더듬던 스티브의 손길이 생생히 느껴져 역겪게만 느껴졌어. 짜증을 부리듯 토니는 이불을 걷어찼어. 그와 몸을 엮은 것 자체보다도 그런 스티브의 얼굴을 보면서 너무도 행복하게 웃음짓던 자신의 모습이 기분을 더욱 더럽게 만들었어.
지금껏 살면서 꾸었던 꿈중에서 가장 최악의 개꿈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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