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꾸었던 꿈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그날 하루종일 토니의 컨디션은 최악에 치달았어. 오죽하면 그 능구렁이 같은 이사진들 앞에서까지 실수를 했을 정도라 페퍼도 어제 자신이 너무 토니를 부려먹어서 그러는건 아닌가 걱정하였어. 결국 뜻하지않게 오늘 쉴드 컨설턴트만 마무리하면 한동안 휴가를 얻은 토니는 다가올 휴가시간에 희망을 삼고자했어.
하지만 곧 어제의 꿈 대상자와 얼굴을 맞대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은 토니는 좌절감을 맞보아야만 했어. 그냥 마지막 스케쥴 따위 땡땡이나 쳐버릴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얼마안가 대체 그딴 말도 안되는 개꿈 하나 때문에 천하의 토니 스타크가 죄진 사람마냥 도망가야하는지 울컥함이 솟았어.
끝내는 쉴드에 도착하고야만 토니는 언제나처럼 당당하게 회의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어. 그리고 테이블에 앉아있는 익숙한 금발머리에 잠시 주춤하기는 했지만 티내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 착석하였어.
"내가 마지막으로 온거야? 아, 아직 금발 백치 왕자가 오지 않았군. 하여튼 그 작자는 맨날 회의 시간에 늦는다니깐."
뻔뻔한 토니의 모습에 나타샤가 질린다는 얼굴로 한소리를 했어.
"토니, 당신이 할 말은 아니지 않아요?"
"난 일이 바빠서 늦은거잖아. 요새 페퍼가 얼마나 나를 갈구는지.. 그런데 로마노프 요원. 무슨 일 있어? 피부 상태가 영 좋지가 않네? 어제 잠 못잤어?"
눈썰미좋게 오늘따라 얼굴 상태가 안 좋아보이는 나타샤의 모습을 알아본 토니의 지적에 나타샤가 고개를 홱 돌렸어.
"신경꺼요."
유달리 평소보다 까칠해보이는 나타샤의 태도에 토니는 그냥 그날인건가하고 가볍게 넘어가기로 했어. 괜히 저 스파이가 기분이 안좋은 날 잘못 건드리면 몇배로 복수가 날아올것이 분명했어.
토니는 배너와 여유롭게 농담을 주고받는 척 하면서 슬쩍 스티브를 힐끔 보았어. 이상하게 오늘따라 스티브 역시 나타샤 만큼이나 얼굴빛이 안좋아보였어. 아니, 그녀보다도 더 표정이 어두워보이는듯해보였어. 순간 시선을 느꼈는지 스티브도 토니쪽을 쳐다보았어. 눈이 마주치자 어젯밤의 꿈 내용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어. 그의 입술이 몸 곳곳에 부드럽게 입 맞춰주는 장면을 떠올린 토니는 확 붉어지는 얼굴을 가리기위해 재빨리 고개를 숙였어. 젠장.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리는거 같았어.
그때 토르가 우렁찬 웃음과 함께 회의실 문을 박차고 들어섰어.
"하하하! 이거 또 내가 가장 늦어버렸군. 미안하네. 오다가 로키와 일이 좀 생겨서 말일세."
언제 들어도 통쾌한 웃음소리가 적막했던 회의실을 뚫고 들어왔어. 얼굴을 식히던 토니는 기분 전환을 할 생각으로 일부러 토르에게 비아냥거렸어.
"도대체 그 사슴 양반은 사춘기가 덜 끝났데? 또 무슨 사고라도 친거야?"
"음? 로키는 성년이네만?"
순진하게 고개를 갸웃하는 토르의 태도에 토니는 농담이 안 통하는 신이라면서 배너에게 툴툴거렸어. 배너는 난처하게 웃음만 지어보였지. 자리에 착석하면서 토르가 계속해서 로키와의 일에 대해 중얼거렸어.
"내 오늘 너무도 괴이한 꿈을 꾸게 되어서 혹시 로키의 짓인가 추궁해보았지만 그 애는 전혀 무관하다 하더군. 하긴 아무리 로키라 하더라도 이런 장난은 치지 않을테니.."
"꿈이요? 무슨 꿈인데요?"
배너가 흥미를 갖고 묻자 토르는 주억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주었어.
"로키가 설인들에게 잡혀가는 꿈을 꾸었네."
토르의 굵은 주먹을 저도 모르게 꽉 쥐어졌어. 아직도 어젯밤 그 꿈 내용이 눈에 선한듯했어.
오랜만에 로키와 가지는 단 둘만의 형제 타임도중 갑자기 포탈이 생기더니 그 사이로 설인들이 나타났어. 분명 요툰헤임에만 서식하는 설인들이 어찌하여 미드가르드에 나타났는지 이상하였지만 그런걸 생각할 틈도 없이 그대로 설인들은 로키를 납치해갔어. 아직 마법의 힘을 제안당한 로키가 힘없이 설인들에게 잡힌채 토르에게 손을 내밀었어. 토르-! 토르는 분노하여 묠니르를 꽉 움켜쥔채 곧장 로키를 구하기 위해 달려들었고, 그 다음 그는 침대에서 묠니르를 휘둘러 한바탕 방 자체를 박살낼뻔하였어.
"우리 아스가르드인들은 꿈이란걸 잘 꾸지 않거늘, 어찌나 그리 생생하던지 필히 그냥 꿈은 아닌게 분명할걸세."
진지한 얼굴로 토르가 자신의 턱가를 쓸었어. 그러자 지금껏 얌전히 화살촉만 다듬던 바튼이 토르의 이야기에 동참하듯 한마디를 거들었어.
"나도 오늘 꿈을 꿨었는데.."
모두의 얼굴이 바튼에게로 향했어. 바튼은 화살촉에서 얼굴을 들어 안그래도 깊은 미간을 더욱 진하게 찡그렸어.
"뭔가에 깔리는 꿈이었는데 어찌나 진짜같이 무겁고 아프던지, 일어나자마자 아직도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가더라고."
꿈에서 바튼은 어떤 공간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어. 그의 손에는 무기 한점 없었고, 주변에서는 기름냄새와 연기가 사방을 풍겼어. 그때 가까이에서 비명과도 같은 외침소리가 들려왔어. 그리고 그와 동시에 등 바로 뒤에서 콰광! 소리가 나더니 무언가가 그의 몸 위에 쓰러졌어. 아무리 꿈이라고해도 너무도 생생한 무게감에 바튼은 화살촉을 더욱 날카롭게 매만졌어. 바튼의 꿈 이야기에 배너도 신기하다는듯이 머리를 긁적였어.
"그거 참 신기하네요. 저도 오늘 이번에 새로 연구중인 자료에 대한 꿈을 꿨었는데 마지막에 가서 그 자료들이 싹 다 날라가버려서 하마터면 자던 도중에 헐크가 튀어나와버릴뻔했지 뭐예요."
"그건 좀 무서웠겠네요. 여러가지 의미로."
배너는 태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어. 그러다 마치 다음 타자를 정하듯 배너의 눈이 나타샤와 마주쳤어. 꿈 이야기가 나올때부터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나타샤는 고개를 돌리려다가 토르와 바튼의 기대어린 시선에 얼굴을 찡그렸어.
"꾸긴 꿨지만 난 어떤건지 안 말해줄거야."
단호한 나타샤의 말에 토르와 바튼이 실망하는 기색을 보였어. 하지만 그녀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무언가 이상한 꿈을 꾸었다는 사실에 이번엔 스티브와 토니에게로 시선들이 옮겨졌어. 토니는 모든 어벤져스들이 이상한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에 순간 다시 어제 스티브와 뒹굴던 꿈을 떠올렸어. 너무도 사랑스럽다는듯이 자신을 바라보던 스티브의 눈빛이 잊혀지지가 않았어. 토니가 절대 말하기 싫다고 으르렁거리자 스티브도 꿈은 꾸었지만 역시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고 거절하였어.
"음. 그것 참 요사스러운 일이로군. 모두가 동시에 현실과도 같은 이상한 꿈들을 꾸었다니 말일세.. 그냥 보통 일은 아닌것 같소."
"어제 그 노파가 저주라도 내린건 아닐까요? 막 이상한 주문같은걸 외웠잖아요."
평소에도 외계인이나 그런것들을 좋아하는 바튼이 재미있다는듯이 노파 얘기를 꺼내자 스티브가 딱딱하게 얼굴을 굳혔어.
"바튼. 그녀를 그런식으로 모함하지 말게. 그녀는 우리에게 감사하다며 축복을 내려주었어."
"주문이 잘못되었나보죠. 아니면 우리에게 예지몽을 꾸는 힘이라도 주었거나요."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그때 토니가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시키려는듯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내었어. 스티브까지 말을 멈추고 자신을 바라보자 토니는 귀를 후비며 콧방귀를 뀌었어.
"듣자 듣자 하니까 별 소리가 다 나오네. 저주? 주문? 예지몽? 이봐, 여기 21세기거든? 어떻게 전 세계에 한명 태어날까말까한 천재 과학자가 둘이나 있는 앞에서 그런 허무맹랑한 말이 나올수가 있어?"
토니는 과학자들 앞에서 비과학적인 이야기가 나왔다는것이 못내 불쾌하였는지 오만상을 찌푸렸어. 토르가 계속해서 자신의 주장을 펼쳤어.
"하지만 토니, 무언가 이상하지 않나. 우리 모두가 이상스런 꿈들을 동시에 꾸었다는건..."
"그냥 다같이 동시에 개꿈이나 꾼거라고. 우연히 말이야. 아니면 토르 네가 이상한 꿈을 꿨다고 말 한걸 시작으로 우리의 뇌파가 강제적으로 오늘 꿨던 꿈들을 수상하게 생각하게 만들어낸걸지도 모르지."
"그치만..."
"아, 말도 안되는 소리 좀 작작해. 예지몽이라니.. 참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런건 토르 너네 동네에서나 통하는 얘기지 여기 동네에서는 그냥 사기 수준이거든? 거기다 들어보니 전부 흔해빠진 꿈 레파토리잖아."
아마 키라도 더 클려고 그런 꿈을 꿨을지도 모른다는 토니의 비아냥에 토르가 반박하였어. 하지만 스티브와 나타샤도 손을 들고 토니의 편을 들었어.
"저도 이번 만큼은 스타크의 의견에 동의해요. 그냥 우연에 불과한 꿈에 굳이 의미까지 부여할 필요는 없잖아요?"
"나도 그녀가 우리를 위해 축복해준것을 그런식으로 비하하고 싶지가 않군."
스티브가 자신의 편을 들어준것이 조금 거슬리긴했지만 토니는 의견이 자신쪽으로 쏠리자 자신만만하게 손벽을 쳤어.
"자, 그럼 이상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고! 우리는 이제 슬슬 생산적인 주제에 대해서나 이야기들을 나눠봐야 하지 않겠어? 자꾸 농땡이 피우면 퓨리가 우리 월급을 다 깍아버릴지도 모른다고."
그러고보니 벌써 회의 시간을 30분이나 낭비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어벤져스들은 그제야 어제 있었던 빌런과의 일에 대하여 회의를 시작하였어. 그러나 겉으로 보기엔 회의에 적극적으로 보이면서도 정작 토니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꿈에 대한 생각이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어. 말도 안되는 개꿈이 분명한데 괜시리 예지몽이라는 바튼의 말 한마디가 그의 가슴 한편을 불안하게 하고 있었어.
토니는 스티브의 옆 얼굴을 한번 째려보곤 팔을 쓸어만졌어. 그냥 더러운 꿈에 불과했어.
바튼은 한여름의 기세를 자랑하듯 뜨거운 태양빛에 눈가를 찌푸렸어. 공기까지도 후덥지근하것이 숨 쉬기가 조금 버거울 지경이었지. 무더운 여름 날씨를 뚫고 겨우 A 타워에 도착한 바튼은 들어섬과 동시에 자신을 반겨주는 시원한 에어컨 공기에 그제야 숨통을 트였어. 집주인이 조금 시끄러워서 문제지 이 더운 여름을 피하기에는 A 타워만큼 시원한곳도 없을 것이었어. 어서 빨리 샤워하고 푹 쉴 생각에 바튼은 가볍게 발걸음을 뗐어. 그 순간 퓨리에게서 연락이 왔어.
방금 막 임무를 끝내고 돌아온 바튼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찌푸러졌어. 제발 긴급 출동 명령이 아니기를 기도하며 바튼은 자신의 악덕 상사의 전화를 받아들였어. 다행히 퓨리도 양심은 있는지 그냥 토니에게 쉴드에 보내주기로 한 자료를 독촉해달라는 전화에 바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 바튼은 자신에게까지 닦달하는 퓨리의 잔소리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토니의 연구실로 내려갔어.
랩실 앞 유리문에 대고 주먹을 두들겨보았지만 또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작업하는지 대꾸가 없었어. 대신 자비스가 노래 소리를 줄여 토니에게 직접 바튼이 왔음을 알려왔어. 곧 랩실 문이 열리었어. 바튼이 안으로 들어서자 하고 있던 작업을 멈춘 토니는 쓰고 있던 고글을 위로 치켜올렸어.
"무슨 일이야?"
"국장님이 이번에 쉴드에 보내주기로 한 자료를 한시바삐 보내달라하시더군요. 듣자하니 벌써 사흘이나 기간이 지났다고 하던데.. 혹시 아직도 준비가 안된겁니까?"
"그럴리가. 그런건 단 하루면 되는 건데, 뭐. 그냥 보내는걸 까먹은거야."
참으로 당당한 토니의 대답에 바튼은 말을 말자며 지금 바로 보내다주기를 부탁하였어. 하지만 토니는 잠시 이것만 연결하고 금방 찾아 보내준다고 대꾸할뿐 다시금 하던 작업을 마무리했어. 퓨리가 당장에 보내라고 명령하였지만 토니와 입씨름하기 귀찮았던 바튼은 적당히 하다가 금방 보내주겠지하는 무기력한 태도로 기다리기로 하였어.
그러다 문득 바튼의 눈에 왠 둥그스름한 기계 덩어리가 들어왔어. 작업대 위에 아무렇게 놓여진 어른 주먹만한 구체를 집어든 바튼은 그것을 흔들어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던지며 놀았어. 묵직하면서도 적당한 크기가 운동용으로 쓰기에 딱 좋은거 같았어.
"그러고보니 임무도 끝났는데 뭐 할 계획이야? 듣자하니 로마노프 요원이 좋아하는 밴드가 근처에서 공연을 한다는데. 내가 티켓 좀 구해다줄까?"
"냇은 내일 유럽으로 임무가 있어요."
"쯧. 니들은 그래서 문제인거야. 일할땐 일하고, 놀땐 놀아야지. 그래가지고 대체 언제쯤 데이트를 할 생각인건데?"
바튼이 입을 비죽였어. 누군 같이 가고 싶지 않아서 안가는줄 아나.. 마음같아서는 남의 연애 사업보다도 본인 일이나 신경 좀 쓰라고 한소리를 해주고 싶었지만 금방이라도 서슬퍼렇게 노려볼 금발청년이 무서워 바튼은 말을 아꼈어. 얼간이 토니 스타크. 바튼의 속도 모른채 토니가 계속해서 입을 주절거렸어.
"나중에라도 둘이 휴가가 겹치면 말만 해. 놀줄 모르는 스파이 커플을 위해 특별히 내가 사둔 섬하나쯤 빌려줄테니 말이야."
"거 참 고맙네요."
"나 빈말 아니다? 내가 갖고 있는 개인 섬이 얼마나 많은데. 요원은 나같은 억만장자를 아는걸 고맙게 여겨야한다고. 나같이 이렇게 댁들 개인사까지 후원해주는 착한 사람이 어디있다고 그래?"
잘난척 심한 억만장자의 모습이 바튼에게는 얄밉게만 느껴졌어. 저렇게 얄밉게 주둥이를 나불거리니 사람들이 재앙의 주둥이라 부르는거겠지. 다시 구체를 위 아래로 던지며 놀면서 바튼이 반대로 토니에게 물어왔어.
"그러는 스타크씨야말로 이번 휴가에는 어디 가실 생각이십니까? 또 예전처럼 모델들과 여행이라도 떠나시게요?"
"음. 그것도 좋은 휴가 방법중 하나지. 근데 이번엔 그냥 타워에서 푹 쉴까하고."
"왠일이예요?"
마침내 연결 작업이 끝났는지 겉 방향 아머 파츠를 조립하며 토니가 자신의 허리를 두들겼어.
"그냥. 뭐랄까, 최근들어 몸이 예전만 하지 못한게 피곤하기도 하고.. 그냥 방에서 뒹굴거리거나 연구나 하면서 시간 떼우게."
역시 나이는 어쩔수 없다는듯 토니가 씁쓸하게 웅얼거렸어. 하던 작업들이 모두 마무리되자 그제야 쉴드에 보내야할 자료를 찾기 위해 허공에 화면들을 띄운 토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채 생각났다는듯이 혼잣말을 했어.
"아, 근데 이번 휴가때 배너가 인도에 간다고 하던데. 그럼 혼자 연구 해야겠네."
바튼이 그 말에 기회를 놓치지않고 끼어들었어.
"그러고보니 캡틴도 휴가에 딱히 어디 갈 일이 없다고, 타워에서 시간을 떼운다하던데. 두분이서 같이 놀러가면 되겠군요."
어처구니가 없다는듯 토니가 헛웃음을 터트렸어. 내가 캡이랑? 농담이지? 냉소적인 토니의 반응에 작업대에 엉덩이를 걸터 앉으려던 바튼이 자세를 바로하며 물었어.
"왜 그렇게도 캡틴을 싫어하시는 겁니까?"
"뭐 이유 있나? 애초에 그 양반부터가 나를 싫어하는데. 허구한날 잔소리, 잔소리! 그 작자랑 나랑은 절대 맞을래야 맞을 수 없는 인간이야."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하는 토니의 모습에 바튼은 스티브를 동정하였어. 저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나타샤의 추측이 맞는 모양이었어.
"캡틴도 힘들겠네요.."
"내가 더 힘들지 캡시클이 왜 힘들어. 게다가 최근 들어서는 자꾸만 날 이상한 눈으로 보는데, 레골라스 자네도 봤지? 날 막 이렇게 노려보는거."
토니가 자신의 눈가를 바짝 위로 올리며 뒤를 돌아보자 그 모습이 못내 우스워 바튼이 작게 실소를 터트렸어. 스티브의 눈빛이 저렇게 보일수도 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기 그지 없었지.
"글쎄요. 제가 보기에 그건 노려보는게 아니라..."
"아냐. 내가 하는짓 하나하나가 마음에 안든다는 것처럼 노려보는데...어. 잠깐만. 지금 뭘 들고 있는거야?"
스티브에 대한 뒷담화를 장전하려던 토니는 바튼이 들고 있던 구체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어. 토니의 입이 움직였고, 그와 동시에 바튼이 고개를 돌리다 손을 삐끗했어.
"그거 건드리면...!"
구체가 바튼의 손에서 빠져나와 바닥으로 떨어졌어. 무거운 쇠 소리가 바닥에 부딪혀 뒷쪽으로 굴러가더니 안에서 딸칵 소리가 크게 들려왔어. 토니의 다급하게 끊긴 목소리와 오랜 요원 생활의 직감이 바튼을 움직였어.
더 생각할 틈없이 바튼이 점프하듯 구체에게서 떨어졌어. 곧이어 소형 폭탄이 폭음을 내며 폭발을 일으켰어. 콰앙-! 연구실을 울리는 굉음과 사방으로부터 느껴지는 진동에 바튼이 상체를 아래로 숙였어. 사나운 진동과 함께 튕겨져 나온 파편 덩어리들이 밀려 떨어졌어. 그나마 다행히 고여있던 가스가 아니었는지 폭발은 아주 크지는 않았어. 연구실 한편을 깨끗이 날려버린 바튼은 황당한 얼굴로 토니를 훽 돌아보았어.
"아니, 무슨 폭탄을 책상에 아무대나 두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난 저게 무슨 쓰다 남은 재료인줄 알았것만..!"
"내 연구실에 내가 뭘 어떻게 두든 그건 내 마음이지. 그러는 너야말로 그러게 왜 남의 물건에 멋대로 손을 대는 건데? 덕분에 내 연구실이 작살이 났잖아!"
언제 책상 밑으로 숨었는지 토니가 얼굴만 빼꼼히 내민채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어. 뭐, 굳이 따지고 본다면 저런 위험한 물건을 아무곳에나 내버려둔 토니의 잘못도 있었지만 그걸 생각없이 가지고 논 바튼도 잘못이 없지 않았기에 바튼은 짜증을 부리며 그냥 바로 방으로 돌아갈걸 후회했어.
옷에 묻은 먼지를 대강 털어내던 바튼은 문득 이 장면을 어디선가 본 거 같다고 떠올렸어. 바튼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어. 꿈 속의 장면과 비슷하게 그의 손에는 무기가 없었고, 자욱히 낀 먼지와 기름 냄새가 익숙했어.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때 비명과도 같은 외침소리가 그를 향해 외쳐올 뿐이었어.
"어.. 어! 조심해!"
바튼이 채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그와 동시에 연구실 한편에 전시해놓은 아이언맨 아머가 그에게로 쓰러졌어. 미쳐 피할틈도 없이 아머가 바튼의 뒤를 덮쳤어.
"그래서 팔에 금이 갔다고요?"
"난 잘못없어. 못해도 8할은 클린트 탓이야."
"퍽이나 그러겠네요."
바튼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온 나타샤는 팔짱을 끼고 싸늘하게 토니를 노려보았어. 토니가 못내 억울함을 더 호소해보았지만 나타샤는 들은체도 하지 않고 바튼이 치료를 받고 있을 의료실로 발걸음을 돌렸어. 쫄래쫄래 나타샤를 따라가며 토니가 입을 나불거렸어.
"그래도 애인이 다쳤다니까 한걸음에 달려온걸 보니 로마노프 요원도 여자는 여자인가 봐?"
"목에 와이어가 걸리기 싫으면 그 입 다물어요."
어째 평소보다도 날이 선 나탸사의 반응에 토니도 결국 입을 다물수밖에 없었어. 나타샤는 어딘가 조급해보이는듯한 얼굴로 의료실을 향하는 복도를 돌아보았어.
"..똑같잖아."
이상하리만큼 나타샤의 초조한 반응에 토니가 고개를 갸웃했어.
"똑같다니 뭐가?"
"아무것도 아니예요."
나타샤의 발걸음이 더 빨라졌어. 마치 바람피는 남편을 쫒아 호텔방을 급습하는 마누라마냥 나타샤가 거칠게 의료실 문을 열어제켰어.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나타샤와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동작을 멈추었어. 토니도 나타샤의 뒤로 고개를 내밀고 의료실 상황을 확인하였어.
"오, 이런.."
평소 바튼에게 관심이 많던 간호 요원은 오늘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했는지 바튼을 침대에 넘어트린채 그 위에 올라가 있었어. 반쯤 치마를 벗어던지려던 간호 요원은 나타샤의 갑작스런 등장에 굳어 있었고, 바튼 역시 다를바가 없는 모습으로 내, 냇..! 아니, 이건 그러니까..! 란 진부한 대사를 던져주었어. 잠깐 나갔다 온사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나 그 짧은 사이 의료실에서 일어난 상황을 예상한 토니는 조용히 나타샤의 눈치를 살피다 자리를 피해주었어. 곧이어 의료실에서 비명들이 터져나왔어.
복도를 지나가며 재미있는 사랑싸움에 키득거리던 토니는 문득 방금전 나타샤가 한 말을 떠올렸어. 똑같다는 나타샤의 말 한마디가 토니의 머리속을 파고들었어. 토니는 걸음을 멈추고 다시 의료실 방향을 쳐다보았어. 그러고보니 얼마전 바튼이 했던 꿈 이야기도 무언가에 깔린는 꿈이라 하였는데...
그때 마침 쉴드 복도를 지나가던 콜슨이 토니를 불렀어. 미스터 스타크. 전에 부탁드렸던 자료 말씀인데... 콜슨은 어딘가 심각해보이는 토니의 얼굴에 하려던 말을 멈추고 한번더 토니를 불렀어. 미스터 스타크..? 토니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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