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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스팁토니] Prophetic dreams (4/4)

스티브가 타워에 돌아온 시간은 거의 12시가 다 되어갈때쯤이었어. 갑작스런 폭우에 온 몸이 홀딱 젖은 스티브는 기껏 토니가 맞춰준 옷에 묻은 물기를 쭉 짜냈어. 타워 바닥이 스티브가 흘리는 물웅덩이로 길을 만들어내고 있었지. 피로에 젖은 한숨을 내쉬던 스티브는 문득 눈 앞에 어느 한 인물이 눈에 들어왔어.

 

 

"..토니?"

 

 

거의 반쯤 정신 나간 사람처럼 토니가 달려들어 스티브의 허리춤을 붙잡았어.

 

 

"데이트는 어떻게 됬어?!"

"자네 발 상태가 왜 그러는건가. 어디 다쳤나?"

 

 

얇은 슬리퍼를 신고 있는 토니의 발이 마치 유리 조각에 베인것마냥 상처가 나 있었어. 붉은 피가 스며나오는 토니의 발 상태에 스티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어. 도대체가 조금만 눈을 돌리면 항상 어딘가 다치고 오는것이 신경이 쓰이는 사내였어. 

 

토니는 스티브의 걱정어린 시선을 무시한채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어.

 

 

"내 발 걱정은 그만하고! 데이트 어땠냐고 묻잖아!"

 

 

자꾸만 자신의 데이트에 신경을 쓰는 토니의 태도에 순간 스티브는 울컥함을 느꼈어. 스티브의 목소리가 사납게 울렸어.

 

 

"왜 그렇게까지 내 연애 문제에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군."

"오, 왜냐고? 그야 댁이 오늘 한 데이트에 따라 내 운명이 바뀔지도 모르는 판국이니까, 그렇지! 어땠어!? 샤론이랑 키스는 해보았어?"

 

 

제 속도 모른채 얼굴을 바짝 들이대는 토니가 스티브는 이제 얄밉다고까지 생각했어.

 

 

"그녀와 나는 그저 좋은 친구관계일뿐이야."

 

 

토니가 어이가 없다는듯 잔뜩 비웃음을 날려주었어. 스티브의 미간이 더욱 좁혀졌어.

 

 

"세상에 그런 친구관계가 어디있다는.. 우왁?! 이, 이게 무슨 짓이야!"

"가만히 있게. 치료를 해야 하지 않겠나."

 

 

그대로 토니를 옆구리에 낀 스티브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어. 비에 젖은 스티브의 옷 때문에 토니까지 축축함이 묻자 토니가 짜증을 부리며 발버둥을 쳤어. 하지만 스티브는 토니의 허리를 잡은 손에 힘을 줄 뿐 묵묵부담이었어. 아무런 말조차 안하는 스티브 때문에 결국 토니가 먼저 제 풀에 지쳐버리고 말았어. 오늘 데이트가 어지간히도 쪽박을 친 모양이었어.

 

그때 토니가 고개를 번쩍 들었어. 스티브가 자신을 데리고 향하는 장소가 자신의 침실이라는걸 깨달은 토니는 안색을 허옇게 물들였어. 자, 잠깐만..! 스티브는 여전히 대꾸도 하지 않은채 그대로 토니를 침대로 엎어트렸어. 

 

그때의 꿈이 오버랩되는 기분에 토니는 침대에 몸이 닿자마자 후다닥 뒤로 뒷걸음을 쳤어. 그러나 그보다 먼저 스티브가 토니의 발목을 잡아 끌어당겼어. 앞으로 쭉 끌려가며 토니는 꿈 속의 스티브가 자신의 입술에 키스를 하는걸 떠올렸어. 금방이라도 다가올 공포에 토니는 두 눈을 질끈 감았어. 

더미에게 의료키트를 받아든 스티브는 토니를 바로 앉혀 상처를 치료해나갔어.

 

 

"도대체 무슨 짓을 하다가 이랬는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는 조심 좀 하게. 자꾸 이래서 어디 몸이 남아나기라도 하겠나."

 

 

제가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에 토니는 부끄러워져 얼굴 낯을 확확 붉혔어. 자신의 발을 매만지느라 고개를 숙인 스티브의 뒷통수를 바라보며 토니는 헛기침을 하여 목소리를 가다듬었어.

 

 

"내가 다치든 말든 캡이 무슨 상관이람.."

 

 

스티브가 고개를 들어 토니를 똑바로 쳐다보았어. 토니의 두 볼이 더욱 붉어졌어. 토니는 손으로 최대한 얼굴가를 가렸어.

 

 

"알았어. 팀의 전력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면 되잖아. 제발 잔소리는 그만 좀 하라고."

 

 

스티브는 토니를 바라보는 시선을 멈추지 않았어. 마치 탐색이라도 하는듯한 스티브의 눈빛이 토니는 거북하기만 했어. 어떻게든 피하려했지만 자신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스티브 때문에 이유모를 부끄러움이 올라왔어. 마치 그날의 꿈처럼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어. 스티브의 입이 천천히 열렸어.

 

 

"..샤론이 내게 화를 내더군."

 

 

갑작스런 샤론의 언급에 토니는 눈을 꿈벅 떴어. 왜 갑자기 이런 분위기에서 그녀의 이름이 언급된건지 이해가 안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신경 쓰였어. 스티브는 무슨 말이냐는듯 살짝 눈가를 찌푸리는 토니를 바라보며 쓰게 웃어보였어.

 

 

"또 무슨 이상한 소리를 했길래 화를 낸건데?"

"글쎄..."

 

 

스티브는 말꼬리를 흐리며 토니의 상처로 눈을 돌렸어. 그 모습이 너무도 답답하기만하여 토니가 짜증을 벌컥 내었어. 목소리가 올라갈수록 아까의 이상스런 분위기가 조금씩 꺠지는 기분이었어.

 

 

"내가 캡시클을 믿은게 멍청했지. 어떻게 딱 데이트 한번만에 싸우고 돌아온건데? 설마 요원의 면전에 대고 우린 친구 사이죠? 그렇죠? ㅎㅎ 한건 아니지? 그럼 캡은 뺨한대 맞고 왔어도 할 말이 없는거라고."

 

 

토니의 발목을 어루만지던 스티브의 손길이 멈추었어. 다시 고개를 든 스티브는 토니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어. 왠지 모르게 얼굴에 화가 난 기색이 섞여 있어 보였어.

 

스티브는 붉어진 토니의 볼을 바라보았어. 그러다 마치 결심했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걸었어. 토니는 그 미소가 어쩐지 불길하다 생각했어.

 

 

"그녀는 그것보다는 다른 것에 더 화를 내던거 같던데."

"..그럼 또 무슨 말을 했길래 그러는건데?"

 

 

또 다시 스티브가 말을 멈췄어. 자꾸만 감질맛 나게 말을 끊는 스티브 때문에 토니는 지금 자기랑 장난치냐고 발로 얼굴을 차버릴까 생각도 해보았어. 하지만 생각을 현실로 옮기기 바로 직전 스티브가 가로지으듯 말했어.

 

 

"토니. 지난번에 나보고 무슨 꿈을 꾸었었냐고 물었었지."

 

 

안그래도 지금 분위기도 이상하것만 스티브의 입에서 꿈 이야기가 언급되자 토니는 괜시리 침을 꿀꺽 삼켰어. 하필 타이밍좋게도 자비스가 조절해놓은 조명이 스티브를 유독 반짝반짝하게 비추고 있었어. 또 다시 매번 스티브를 볼때마다 느꼈던 긴장감이 온 몸을 휩쓸었어.

 

 

"그녀에게 그 꿈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네."

 

 

토니는 한쪽 눈썹을 움직였어. 자신에게는 말해주지 않던 꿈 이야기를 샤론에게 해주었다는것이 묘하게 거슬렸어.

 

 

"대체 무슨 꿈을 꾸었던건데?"

"내 꿈 이야기를 듣기 이 전에 자네 꿈 이야기부터 말해주면 좋겠군. 자네는 대체 그 날 무슨 꿈을 꾸었었나?"

 

 

뚫어질듯 스티브가 토니의 얼굴을 쳐다보았어. 마치 자신의 꿈 내용을 알고 있기라도 하는것같은 당당한 스티브의 모습에 토니는 절로 식음땀을 흘렸어.

 

 

"말하기 싫어."

"그럼 나도 말하기 싫네."

"치, 치사하잖아! 그 요원한테는 말해줘놓고 나한테는 안 말해주다니..!"

"자네가 이야기해준다면 나 역시 자네에게 해주도록 하지."

 

 

마치 딜을 제시하는듯한 스티브의 태도에 토니는 입을 다물었어. 토니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어. 스티브가 무슨 꿈을 꿨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말을 해버릴시 자신에게 작용될 불리함에 토니는 자신이 내릴 결론을 추수렸어. 아쉽지만 포기할 수 밖에 없었어.

 

 

"좋아. 그 꿈이 정확히 어떤 꿈인지는 모르지만 어찌되었든 내일 다시 요원을 찾아가서 사과하도록 해. 그리고 다시 데이트 신청해보라고."

"왜 그래야하지?"

"그래야..!"

 

 

토니는 말을 하려다말고 자신을 직시하는 스티브의 눈빛에 목소리를 잃었어. 마치 무언가 강렬히 자신에게 바라는듯한 스티브의 눈빛이 그를 옭아매고 있었어. 더 이상의 후퇴 없는 전진이 토니를 공격했어. 

 

토니는 그 눈빛을 피하듯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어.

 

 

"제발 좀 캡. 캡틴이라는 작자가 대체 언제까지 체리보이로 살 생각인건데? 가끔은 여자도 만나보고 그래봐야지."

 

 

스티브는 여전히 말이 없었어. 침묵이 둘 사이를 감싸안았어. 그것이 못내 거북하고 어색했던 토니는 이제 치료도 다 끝나지 않았냐며 스티브를 밀어내려고 했어. 하지만 이번에도 스티브의 말이 토니의 동작을 멈추게 만들었어.

 

 

"그녀가 화를 내기는 했지만 헤어지기 전 내게 조언 한마디를 해주더군."

 

 

천천히 스티브가 몸을 일으켰어. 또 다시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스티브의 눈빛에 토니는 꿈을 떠올렸어. 당장에라도 스티브가 자신을 엎어트려 꿈에서처럼 입술을 맞댈것만 같았어. 그리고 이상하게 그 꿈은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처음과 달리 거부감이 점차 사라지고 있었어. 

 

스티브가 토니의 손을 잡았어. 토니가 흠칫 놀라 손을 빼려고 했지만 스티브는 절대 그 손을 놓아주려 하지 않았어.

 

 

"토니. 내일 나랑 그 미술관에 다시 한 번 가보지 않겠나? 자네 정도라면 그곳의 표 정도쯤 쉽게 구할수 있을테겠지."

 

 

토니가 놀라 입을 뻐끔거렸어. 느닷없이 튀어나온 저 말이 자꾸만 꿈과 연결되어 데이트 신청인것 같이 들려왔어.

 

 

"내, 내가 왜 캡시클이랑 그런 지루한데를 가야하는데?"

"적어도 자네라면 내가 오늘 그녀에게 한 실수를 조목조목하게 다 따져줄수 있지 않겠나. 그래야 다음번 데이트에서 실수하지 않겠고 말이야."

 

 

스티브가 빙긋 웃어보였어. 잘 생기기는 더럽게 잘 생긴 그 미소가 토니에게 자신감을 내비쳤어. 샤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자꾸만 토니 앞에서 숨겨온 무언가가 이제는 참지 않고 튀어나오려고 준비하는게 느껴졌어. 

 

토니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본능적으로 그것을 막아야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런 생각과 달리 스티브의 말 한마디는 토니를 강하게 타격했어.

 

 

"부탁이네."

 

 

토니는 결국 정해진 루트를 피해가지 못했어.

 

 

 

 

 

 

 

모자로 얼굴을 가린걸로도 모자라 후드를 뒤집어 쓴 토니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외출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짜증을 다 부렸어. 날씨가 너무 덥다느니 사람이 너무 많다느니 한 잦은 짜증에도 스티브는 그 날따라 군말없이 오냐오냐 모두 받아주었어. 매일 잔소리를 하는 캡틴 답지 않은 정말 참 요상스런 일이었지.

 

손목시계로 시간을 재확인한 토니는 스티브의 말에 그럴줄 알았다는듯이 혀를 찼어.

 

 

"그래서 약속시간에 1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고? 거기서부터 벌써 5점 감점이야."

"하지만 그때 갑자기 길이 막혀서.."

"진부한 변명은 그만두시죠. 오히려 그럴때는 그냥 왈가왈부없이 무조건 잘못했다고만 말하는거야."

 

 

토니의 충고에 스티브가 무안하였는지 볼을 긁적였어. 

 

그래도 오늘은 그 퍼킹 체크가 아닌 깔끔한 옷차림인것이 아무래도 전에 나타샤가 골라주었다는 옷인 모양이었어. 토니는 역시 몸매가 좋으니 옷맵새가 좋은거 같다 생각하며 스티브의 몸매를 감상했어. 흠. 확실히 몸매 만큼은 토니의 취향에 맞게 A++짜리였어.

 

스티브와 함께 나란히 들어간 미술관은 평일임에도 사람이 제법 많았어. 꽤 유명한 작가의 전시관이라 하더니 어지간히도 명성이 좋은 모양있어. 그러나 미술계통에 일말에 관심이 없던 토니에게는 작가의 유명세따위 무명과 다를바없었고, 작품들도 그리 그의 흥미를 끌지 못했어.

 

 

"재미없네."

"자네는 그림같은거 별로 좋아하지않나?"

 

 

언제 다가왔는지 다정한 연인마냥 바짝 붙은 스티브가 부드럽게 웃어보였어. 살짝 그림에서 떨어져 그림들을 바라보던 토니가 뚱하게 말했어.

 

 

"난 이런 이해불명의 고가 예술 작품보다는 표현력 좋은 단순한 그림이 좋거든."

 

 

토니는 도대체 작가가 무엇을 그리고 싶었던것인지 이해조차 안가는 물감 투성이의 그림을 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어.

 

 

"도대체 이런게 명작이라는게 이해가 안가. 차라리 아이언맨을 콜라보로 그린 보이 스카웃 얘들 그림이 더 예술성이 좋은거 같은데 말이야."

"그 아이들 실력이 어지간히도 좋은 모양이군."

 

 

스티브는 키득 웃으며 토니의 말을 자연스럽게도 받아쳤어. 어쩐지 유독 무뚝뚝하던 스티브가 오늘따라 자꾸만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것이 불길하면서도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어. 생각해보면 한번도 저렇게 자신을 향해 웃어준적 없었는데.. 뭐가 기분이 그리 좋은지 모르지만 토니는 그 미소가 썩 기분 나쁘지만은 않았어. 평소에도 저렇게 좀 웃고 다니면 얼마나 좋아? 

 

토니는 속으로 궁시렁거리며 그림을 유심히 감상하는 스티브의 옆 얼굴을 구경했어. 그림보다 저 잘생긴 얼굴이 싱글벙글하는걸 보는게 더 재밌는거 같았어. 갑자기 스티브가 고개를 훽 돌렸어. 토니가 기겁하는것도 모르고 스티브는 태연히 그래도 이 그림은 작가의 어린 시절을 표현한 아주 훌륭한 그림이라는 이해조차 되지않는 설명을 나불거렸어. 토니의 얼굴이 마치 이과용어를 들을때의 스티브의 얼굴과 똑같아졌어. 

 

그 모습이 못내 우스웠는지 스티브가 낮게 쿡쿡 웃었어. 자신이 귀엽다는듯이 웃음짓는 스티브의 웃음이 거슬리면서도 그리 기분이 많이 나쁘지는 않았어. 스티브는 좀 더 쉽고 괜찮은 작품들을 보여주겠다며 토니의 손을 잡고 안쪽으로 들어갔어. 

 

얼떨결에 스티브에게 끌려가게 된 토니는 지금의 분위기가 그리 썩 나쁘지 않다고 느꼈어. 재미없을줄로만 알았던 미술관도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았고, 스티브가 자신에게 대하는 매너적 태도들도 그리 불쾌하지만도 않았어. 그럼 대체 샤론은 무엇때문에 스티브에게 화를 냈던 것일까? 토니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 만약 평소에도 스티브가 이렇게 자신에게 친절히 대해준다면 그렇게 나쁜 관계만은 되지 않았을텐데..

 

토니는 스티브가 신나 그림에 대해 설명하는걸 들으며 눈 앞에 그림을 쳐다보았어. 아까에 비하면 꽤 쉬운 작품이었지만 여전히 토니에게는 스티브가 왜 그리 이 그림에 대해 신나게 설명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어. 

 

언뜻 보기에 두 남녀가 조용한 방 안 두 손을 맞잡고 춤을 추는 그림은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그것은 특히 스티브에게 의미를 주고 있는 그림이었어. 토니는 오래전 스티브의 대한 자료중 보았던 녹음된 파일을 떠올렸어.

 

 

"여기서 이 그림들을 보며 그녀가 내게 그 날의 일을 후회한적은 없냐고 묻더군."

 

 

그래. 스티브 뿐만 아니라 페기의 손녀 샤론에게도 저 그림은 특별한 의미를 줄 것이었어. 스티브에게 과거를 연결할 수 있는 기회를.

 

 

"설마 거기서 예민하게 화를 낸건 아니지?"

"그럴리가. 난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똑같은 선택을 계속해서 할거라 대답하였네."

 

 

스티브가 토니를 똑바로 바라보았어. 언제나 굳어있기만하던 입가가 다정하게 토니를 향해 웃음짓고 있었어. 그 모습이 토니는 낯설게 느껴졌어.

 

 

"난 내가 선택한 일을 후회하지않아."

 

 

마치 주문을 외우듯 스티브의 눈에는 자신감이 넘쳐 흘렀어. 

 

남극 바다에 뛰어든 그 순간에도. 결국은 놓쳐버리고 만 춤 약속도.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스티브는 자신이 선택한 일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어. 그 어떤 결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따라오게, 토니. 자네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이 있었어."

 

 

스티브가 다시 토니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갔어. 토니는 자신을 끌고 나아가는 스티브의 등을 바라보았어. 그 미소만큼이나 넓다란 등이 익숙하면서도 낯설기만 했어.

 

스티브가 웃으며 또 다른 그림 앞에 멈춰 섰어. 토니는 그가 자신에게 그렇게 보여주고파했던 그림의 정체를 보고 눈가를 찌푸렸어.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한 남자가 비행기의 날개 끝에 아슬아슬하게 선 채 하늘을 날고 있는 추상화였어. 어째 안 쪽으로 들어갈수록 작가의 단순해지는 그림 실력에 토니는 속으로 비아냥거렸어. 그러나 스티브는 아주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그림을 바라보며 웃음지었어.

 

 

"자네와 닮지 않았나?"

"뭐?"

 

 

스티브는 토니를 돌아보며 손가락으로 그림을 가리켜보였어. 환하게 웃는 스티브의 웃음이 밝게 빛났어.

 

 

"언뜻 보면 자유로워보이면서도 이 위태로워보이는게 자네와 닮았어."

 

 

토니는 다시금 그림을 쳐다보았어. 하지만 도무지 스티브가 말하는 의미를 이해하기가 힘들었어. 도대체 내 어디가 위태롭다는거야? 그리고 저 비행기에 올라간 남자는 자유롭다기보다는 그냥 자살하는거나 다름없잖아? 도대체 저게 어딜 나랑 닮았다는거지?

 

토니가 잔뜩 얼굴을 구긴채 그림을 보고 갸웃갸웃 거리자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스티브가 나직한 목소리로 토니를 불렀어. 마치 마지막 결심을 마친 사람마냥 목소리에는 비장함까지 섞여 있었어.

 

 

"토니. 내가 무슨 꿈을 꾸었냐고 물었었지."

 

 

뜬금없는 꿈 이야기에 토니가 몸을 뻣뻣하게 굳혔어. 스티브의 결심한 얼굴을 보건데 드디어 꿈 이야기를 펼쳐주려 하는 것 같아 보여 토니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어.

 

 

"이 그림을 꾸었었네."

 

 

스티브는 그림을 찬찬히 바라보았어. 어벤져스들이 꾼 예지몽들은 모두 하나같이 그리 좋은 모습들을 보여주지 않았어. 마치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불안한 현실을 보여주듯 꿈은 천천히 그들을 겁주었었지. 스티브도 그들의 꿈과 다를바 없었어.

 

 

"정확히 말하자면 이 그림은 그 배경에 불과했지만 말이야. 설마 이곳에 저 그림이 있을줄은 나도 몰랐어서 처음 본 순간 너무 놀라버리고 말았지."

 

 

토니는 꿈과 이 장소의 교합점을 찾듯 눈을 굴렸어.

 

 

"그래서 요원에게 그 꿈 내용을 들러준 모양이지?"

 

 

스티브의 입가는 여전히 웃음을 머금고 있었어. 하지만 방금전 신나 떠들던 웃음과 달리 그 웃음은 다가오는 공포에 잔뜩 겁먹은 웃음이었어.

 

 

"꿈에서 내가 이 그림 앞에서 어떤 이와 함께 있었네."

 

 

천천히 스티브가 토니를 돌아보았어. 토니의 똑똑한 머리가 그가 하고자 하는 꿈 내용을 벌써부터 간추려내고 있었어.

 

 

"토니. 내가 그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였는지 궁금하지 않나?"

 

 

토니가 입을 벌렸다 다시 굳게 다물었어. 얼굴이 서서히 붉어 올라갔어. 요며칠 그리도 이상했던 스티브의 행동들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정리가 되어갔어. 스티브가 토니를 똑바로 바라보며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았어.

 

 

"토니. 자네를 좋아하네."

"하..."

 

 

목까지 전체적으로 새빨개진 토니는 자신의 앞머리를 헝클어트렸어. 매번 스티브를 볼때마다 느꼈던 긴장감이 답을 알려왔어. 토니는 자꾸만 다물어지는 입을 힘겹게 열었어.

 

 

"나는..."

 

 

목소리가 쉬이 나오지 않았어. 토니는 두 눈을 질끈 감았어. 매번 자신을 못마땅하다는듯이 바라본다 생각했던 캡틴이 지금 그의 앞에서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있었어. 장난이라고 칠 줄 모르는 무뚝뚝한 사내의 고백이 토니를 공격하였어. 한번도 생각해본적없는 이 장면에 토니는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하고 대답을 망설였어. 

 

토니는 천천히 눈을 뜨고 스티브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어. 스티브는 마치 토니가 할 대답을 처음부터 알고 있다는듯이 씁쓸하게 웃고 있었어. 그 순간 토니의 머릿속에 스티브가 말한 꿈이 번쩍 떠올랐어.

 

 

"내 대답도 꿈에서 들었었어?"

 

 

스티브는 대답하지 않았어. 하지만 토니는 그 표정만으로도 그가 본 미래를 예상하였어. 그제야 토니는 왜 그렇게 스티브가 뜸을 들이고 어두운 얼굴을 져보였는지 깨달았어.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자신에게 감정을 뱉어내고야만 스티브의 모습에 못내 충격을 받았어. 

 

토니는 눈을 떨구었어. 정해진 대답을 기다리듯 스티브가 토니의 거절을 기다렸어. 그 모습이, 지금의 이 상황이 토니는 못내 화가 나고 마음에 들지 않았어. 토니의 입이 열렸어.

 

 

"아냐. 역시 억울해서 안되겠어."

"..토니?"

 

 

스티브는 기다리던 대답이 바로 직전에서 멈추어서자 당황하여 눈을 꿈벅였어. 토니가 그런 스티브를 향해 이를 갈듯 낮게 으르렁 거렸어. 조용한 미술관의 적막을 토니가 깨트렸어.

 

 

"이대로 끝내버리면.. 완전히 그 꿈한테 져버리는 기분이잖아."

 

 

토니가 스티브의 손을 덥썩 잡았어. 그딴 말도 안되는 개꿈에 패배하는것이 너무도 싫었던 토니는 거의 발악하듯 스티브를 붙잡았어. 처음 꿈을 꿨을때의 불쾌감은 올라오지 않았어.

 

 

"난 무슨 꿈을 꾸었는지 안 물어봐?"

 

 

스티브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어. 토니의 꿈 내용에 대해 조금의 갈피도 못잡는 스티브의 모습에 토니는 비웃듯 자신만만하게 웃음을 지었어.

 

 

"꼬셔봐."

 

 

토니는 자신의 말에 놀라면서도 희망을 번쩍이는 스티브의 눈빛을 이번에는 놓치지 않았어. 스티브를 잡아당기며 토니가 바짝 얼굴을 들이댔어.

 

 

"내가 그 꿈 내용을 캡한테 당당히 털어놓을수 있도록 어디 한번 제대로 꼬셔보라고. 이런식으로 갑작스럽게 고백 하지말고, 좀 더 내가 자네를 좋아해 모든걸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해보란 말이야."

 

 

마치 승리의 미소를 짓는것마냥 토니가 환하게 웃었어.

 

 

"캡틴이 하는 행동에 따라 그 운명인지 뭔지도 결과가 다시 바뀔수 있겠지. 어디 내 꿈은 한 번 자네가 만들어봐."

 

 

그 꿈은 아직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토니는 처음보는 자신을 향한 스티브의 웃음만큼은 싫지 않았어. 스티브의 입가에 웃음이 터졌어.

 

 

 

 

 

 

 

나타샤는 소파에 몸을 기대 누운채 여유롭게 커피를 한 모금 마셨어.

 

 

"그래서 그건 정말 축복이었을까요?"

 

 

옆에서 같이 휴식을 즐기고 있던 배너가 보고 있던 잡지를 내려놓으며 웃어보였어.

 

 

"글쎄요. 굳이 분류하자면 그렇게 되겠죠? 토르도 그 꿈 내용을 주변에 말하여 미리 그의 친우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저도 사전에 데이터가 날아가버릴것을 대비할수 있어 헐크를 억제할 수 있었잖아요?"

"뭐, 하긴 저랑 바튼도 그덕에 휴가를 겹칠수 있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정확히 말하자면 나타샤가 바튼의 다리 몽둥이마저 부셔버려 장기 입원을 해야하는 탓이었지만 어찌되었든 결과만 좋으면 되는거였어. 다리랑 팔은 좀 아플지라도 적어도 같이 섬으로 휴가를 가게 되어 다행이라는 바튼의 모습은 불쌍해보이면서도 우스워 보이는 꼴이었어.

 

배너는 문자가 온 자신의 핸드폰을 확인하며 부드럽게 웃어보였어.

 

 

"그중에서도 스티브가 가장 축복을 많이 받은 격이지만 말이죠."

"아, 그때 제가 먼저 손을 잡힐걸 그랬나봐요. 그랬더라면 캡틴이 받은 축복 어치를 저도 받을 수 있었을텐데.."

 

 

배너가 욕심은 화를 부른다며 재미없는 충고를 해주었어. 나타샤는 턱을 괴고 박사를 향해 씨익 웃어보였어. 

 

인도에 갈 티켓 예매가 완료되었다는 문자를 받은 배너는 이제 슬슬 짐을 싸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어. 그때 나타샤가 생각난듯 배너에게 물어왔어.

 

 

"그래서 결국 스타크가 꾼 꿈은 대체 뭐였던 거죠? 그 양반 꿈 내용만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하잖아요."

"음.. 글쎄요?"

 

 

나타샤는 혼자만 꿈 이야기를 해주지 않은 토니가 못내 얄밉다는듯이 툴툴거렸어. 그 모습에 배너가 이번 휴가에 같이 타워에서 시간을 떼울 스티브와 토니를 떠올리며 낮게 쿡쿡 웃었어.

 

 

"잘은 모르지만 아마 그 역시 그냥 평범한 개꿈이었을거예요."

 

 

비록 개꿈일지라도 모든 꿈의 규칙을 깬 것은 스티브뿐이었을테지만 말이야. 휴가가 끝나고 돌아왔을때는 새 커플이 늘어났으리라 예상하며 배너는 가볍게 발걸음을 떼었어. 

 

이번 휴가는 제법 길듯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