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스타크 얼굴이 꽤 만싱창이던데, 또 싸웠어요?"
"..임무에 집중하도록 해. 와스프."
빌런의 아지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블랙 위도우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캡틴 아메리카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도 돌리지 않은채 낮게 속삭였어. 하지만 눈매만큼은 어째 빌런을 향한 적의보다 다른 분노로 불타오르고 있었어. 오늘 캡틴 아메리카와 상대하게 될 빌런들에게 동정심마저 느껴질 정도로 흉흉한 눈빛 그 자체였지.
바위 밑에 몸을 숙인 스파이더맨이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고 부모님의 싸움에 끼어들었어.
"보스가 독단적으로 군게 한 두번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길게 싸울 일은 아니지 않아요?"
스티브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어. 옆에서 자넷이 애들도 아니고, 둘 다 똑같이 유치하다며 툴툴거렸어. 그때 지겨움에 길게 하품을 하던 호크아이가 손가락을 까닥이며 한소리를 했어.
"한 두번이 아니니까 그렇지."
지금껏 토니 스타크가 친 사건 사고들을 모두 나열하며 호크아이가 진저리를 쳤어.
"거기다 딱 봐도 자기가 잘못한 주제에 끝까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지 잘났다고 입을 나불거렸잖아. 미즈마블한테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도 않고 말이야. 하여튼 어딘가 성격이 모 난 녀석이라니까. 이번 기회에 그 싸가지 없는 성격이고, 재수없는 버릇들을 고칠 수 있다면 좋을텐데 말이지."
정작 본인도 그리 좋은 성격은 아닌 주제에 호크아이는 한탄하듯 토니의 성격에 대해 비판하였어. 호크아이가 혀를 찰 수록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는 캡틴 아메리카의 눈썹이 따라 올라갔어. 스파이더맨도 차마 부정할 수는 없는 토니의 성격을 떠올리며 볼가를 긁적였어.
"고쳐지기는 할까요? 난 절대 보스 성격 못 고칠거 같은데.."
"그래도 최소한 그 녀석 우리 말은 안들어도 캡틴 말은 귓등으로나마 듣잖아."
이번에 확실히 세게 나가야 그 못된 버릇이 고쳐진다고 호크아이가 스티브를 가리키며 주장했어. 좀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그 못되먹은 성격이 한번에 고쳐지지 않을지는 몰라도 최소한 과정정도는 겪어볼 필요가 있다는게 호크아이의 의견이었지.
스파이더맨도 확실히 캡틴 앞에서는 보스도 얌전해진다고 킬킬 웃으려다가 슬쩍 잔뜩 굳어있는 스티브의 표정을 보곤 재빨리 입을 다물었어. 자넷이 적당히 하라며 호크아이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가격했어. 호크아이가 왜 그러냐며 고개를 돌리는데 지금껏 조용히 있던 스티브가 낮게 목소리를 울렸어.
"..확실히 토니가 개인 플레이가 강하여 가끔 좀 무모한 행동을 하거나 혼자 처리하려는 버릇탓에 일을 키우기도 하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만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게."
살짝 스티브가 고개를 돌려 호크아이를 흘겨보았어.
"물론 나도 그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나지만 지난번 단독 행동도 내가 억지를 써서 토르에게 맡긴것도 사실이지 않나."
동료를 험담하지 말라는 캡틴 아메리카의 조언에 호크아이의 표정이 꽤나 볼만한 표정으로 변했어. 얼마전까지만해도 아니, 방금전까만해도 토니 이야기가 나오기면 이를 갈며 입을 다물던 사내는 제 앞에서 그를 욕하는걸 참을수 없어 하고 있었어. 부부싸움에 끼어든 자가 얼마나 처참히 깨지는지 보여주는 것 마냥 호크아이는 자신을 향한 스티브의 차가운 비난에 입을 뻐끔거렸어.
"그리고 괜히 싸가지 없고, 재수없다느니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게. 물론 그가 그리 성격이 좋은 편인건 아니지만 이런식으로 뒤에서 동료를 험담하는것은 옳지 않아. 호크아이, 자네가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겠지만 다시는 내 앞에서 그에 대해 그런 식으로 언급하지 말게."
호크아이가 어처구니 없어 뭐라 반박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려하자 자넷이 여기선 더 말해봐야 본인만 힘들다는듯이 눈치를 주었어. 스파이더맨이 헛웃음을 터트렸어.
"화나서 보스를 두들겨 팬거 아니었어요?"
"..그것과는 별개의 일이야."
이중적인 스티브의 태도에 스파이더맨이 허.. 소리를 내었어. 자넷은 그럴줄 알았다는듯 이죽거렸어.
"네가 잘못했어. 호크아이."
잔뜩 입을 내민채 호크아이도 결국 포기한 채 그래, 에이.. 커플 싸움에 끼어든 내가 죄인이다..! 하며 성화를 부렸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저 슈퍼 허스밴드에게 도전장을 내민것인지 처음부터 돌아오는거라고는 욕밖에 없는 싸움에 불과했어. 호크아이의 인정에도 스티브는 계속해저 제 할말을 마무리졌어.
"토니도 본인이 무엇이 잘못되고 단점인지 정도는 알고 있어. 나나 자네가 그 점에 대해 억지로 말해주지 않아도 그 스스로 최근에는 고치고자 노력하고 있지 않나."
"아, 알았어! 알았다니까! 니 마누라 까서 내가 잘못했다니까!"
그만 좀 하라고 호크아이가 소리를 지르자 스티브가 다시 빌런들의 아지트를 바라보며 낮게 속삭였어. 여긴 전투지야. 목소리를 낮추게. 어이가 털린 호크아이는 뒷목을 잡고 앓는 소리를 내었어. 상황을 재미나게 관찰하던 자넷이 스티브의 편을 들어주었어.
"그래, 맞아. 그리고 지난번에 보니까 토니가 미즈 마블한테 다치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기도 하던걸?"
"토니가요?"
"장족의 발전이지."
초창기 멤버답게 오랜시간 어벤져스 멤버들을 봐온 자넷은 토니의 놀라울 정도의 변화에 마치 자신이 더 뿌듯한 기색을 보였어. 놀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스파이더맨과 호크아이를 향해 자넷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어. 거기다 그보다 더 놀라운게 뭐였는지 알아?
천하의 토니 스타크가 제대로 된 사과를 했단 말보다 뭐가 더 놀랍다는걸까. 잔뜩 호기심이 담긴 눈으로 스파이더맨이 기대감에 젖었어. 그에 부응하듯 자넷이 마치 연애기사를 읽은 여중생마냥 꺅꺅거리며 난리를 쳤어.
"애인한테 선물이 하고 싶다고, 미즈마블한테 쿠키 만드는걸 도와줄수 있냐고 부탁하지 뭐야!"
아까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충격적인 발언에 스파이더맨은 물론 호크아이까지 기겁하였어. 최근 잠잠하더니 언제 또 새 애인이 생겼지? 아니, 그런것보다 그 애인한테 주려고 토니 스타크가 쿠키를 구웠다고?! 호크아이가 활을 꽉 움켜쥐었어.
"스크럴 아니야?"
"나도 의심해보았자만 불행히도 아니었어."
스파이더맨은 토니가 여성스런 앞치마를 입고 까르르 거리며 부엌에서 쿠키를 만드는 장면이 상상되었는지 안색을 창백하게 물들였어.
지구가 멸망할 징조인가? 지금 저 말을 들으니 당장에라도 갤럭투스나 타노스가 지구를 방문해도 그리 놀랍지는 않을것 같았어. 자넷은 당시의 상황을 직접 두 눈으로 본 이답게 자신의 말을 못 믿는 두 사람의 심정을 이해한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였어.
"그래도 역시 아무리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전공 분야는 나뉘는게 분명한지 덕분에 부엌만 난장판이 되어버렸더라고. 덕분에 자비스만 고생했지.."
세상에 진귀한 기술들은 혼자 뚝딱 만드는 주제에 쿠키를 가지고는 무슨 마녀의 소환술이라도 보는 모양새 그 자체였어. 옆에서 캐롤의 코치에도 불구하고 땀을 뻘뻘 흘리던 토니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자넷은 결국 토니가 잠시 화상 입은 손을 치료하는 틈을 타 은근슬쩍 캐롤과 합심하여 쿠키의 재료들을 고쳐주었어. 아무것도 모르는 토니만이 다시 돌아와 맛을 보고 드디어 먹을 수 있는 수준까지 만들었다는 것에 감격하여 슬쩍 두 볼을 붉힐 뿐이었지.
토니 스타크가 저만큼이나 확연히 감정 표현을 들어낸 것에 자넷은 처음에는 의심하고, 경악했으며 나중에 가서는 사랑에 빠진 이의 마음에 수긍하고야 말았어.
"뭐하는 여자인지는 몰라도 어지간히도 참 대단한 여자인거 같아. 천하의 토니 스타크가 그런 소녀스러운 일을 하게 만들정도라니 말이야."
"혹시 여자가 아니라 남자인건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한테 누구인지 말도 안하고, 그런 이벤트를 한걸수도 있잖아요."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겠네. 토니 스타크가 바이라니.. 놀라워라."
일부러 자넷이 놀라는 척을 했어. 확실히 평소 토니가 연애를 시작하면 그들이 사적으로 알기도 전에 메스컴에서부터 먼저 빵빵 알려왔기에 이런식으로 관계를 숨기고 그들에게 정체를 말하지 않는걸로 보아 지금까지의 전 애인들과는 특별히 다른 무언가가 있는듯했어. 그것이 그들의 예상대로 남자일 수도 있었고, 아니면 정말 사람들의 시선에서 그 상대를 보호하려는 목적일 수도 있었어.
자넷은 좀 더 진지한 관계가 되면 언젠가 토니도 자신들에게 그 의문의 여자를 소개시켜주지 않겠냐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어. 하지만 호크아이는 그 언젠가보다도 지금의 호기심이 더욱 궁금하였어.
"캡틴은 뭐 전해 들은거 없어? 아무리 숨기고 싶은 비밀 애인이라도 빌런이지 않는한 토니가 캡틴한테까지 숨길리는 없을텐데, 뭔가 힌트라던가 의심가는 이야기 들어본 적 없는거야?"
호크아이가 스티브를 돌아보며 물어왔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어. 입가를 가린채 작전회의라도 하는 사람마냥 스티브의 얼굴이 한껏 심각해있었어. 자넷이 무슨 일이라도 있는건 아닌가 스티브를 불러보았어.
"캡틴?"
스티브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은채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보였어. 주섬주섬 어제 토니와 나눈 문자 메세지를 다시 한번 되내어 읽은 스티브는 눈가를 와락 찌푸렸어.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날 자신이 집어던진 가구들 사이로 무언가 선물용 작은 상자같은걸 본거 같긴 했어. 스티브는 충격에 자신의 이마를 짚었어.
"..최악이로군."
머리를 식혀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니 제 아무리 토니라도 자신이 뻔히 올 줄 알면서 여자를 불러놓을리가 만무했어. 좀 더 자신의 애인의 말을 제대로 들어볼 걸 후회하며 스티브의 손가락이 당장에라도 토니에게 전화를 걸듯 머뭇거렸어.
그 모습에 아무것도 모르는 스파이더맨과 자넷. 호크아이는 혹시 스티브가 포비아였던가한 의심에 당황하여 뭐라 말을 걸어보려했어. 그런데 그 순간 마침내 그들이 기다리던 블랙 위도우의 신호가 떨어졌어. 스티브는 고개를 들어 그 신호를 확인하고는 이를 악물듯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어.
"최대한 빨리 끝내는 편이 좋겠군."
그대로 어벤져스들을 이끈채 캡틴 아메리카가 적진을 향해 달려나갔어. 정확히 스티브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어벤져스들은 이제 임무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에 그제야 한껏 진지한 모습으로 그 뒤를 따랐어. 그때 스파이더맨의 발이 와직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밟았어. 잠시 멈칫한 스파이더맨은 발 밑을 한번 내려다보다가 앞에서 자신을 재촉하는 호크아이의 부름에 다시 후다닥 앞으로 달려갔어.
곧 이어 어벤져스들의 급습에 맞춰 빌런들의 아지트가 소란스러워졌어. 그리고 그 소란스러움을 멀리서 구경하던 한 남자가 유유히 콧노래를 부르며 방금전까지 어벤져스들이 대기를 타고 있던 바위 근처로 다가가 땅바닥을 파헤치기 시작했어.
"흠흠흠~ 나는야 사랑의 큐피트~"
<망가진거 같은데 괜찮을까?>
(작동은 되는거 같은데?)
어느정도 데드풀이 땅을 파헤지자 곧 그 밑에서 조그마한 펜 촉 같은 녹음기 하나가 꺼내졌어. 그러나 방금전 스파이더맨이 밟은 무게감이 실렸는지 찌그러진 모양새에 데드풀이 한번 녹음기를 틀어보았어. 녹음기가 심하게 지지직 소리를 내며 소음을 냈어. 괜찮은거 같네!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은채 데드풀은 소리가 잘 나면 됐다며 녹음기를 한번 공중에 던졌다 받아내었어. 멀리서 빌런의 비명소리 만큼이나 녹음기 내 노이즈가 불길하게 들려오고 있었어.
토니는 피곤한듯 아픈 어깨를 주무르며 사장실에 들어왔어. 아직도 처리해야 할 서류들이 산더미같이 쌓여있었지만 지금 기분 같아서는 저 서류들에 손하나 까딱하고 싶지가 않았어. 그저 의자에 파묻히듯 몸을 맡긴 토니는 괴로움이 가득 담긴 한숨을 내뱉었어.
역시 사람은 안하던 짓을 하면 안되는 거였나봐. 갑작스런 콜걸의 등장 탓에 스티브에게 잔뜩 오해를 받은 토니는 대체 어떻게 해서 그의 오해를 풀게 만들까 고민에 휩싸였어. 다시 그 콜걸을 붙잡아 상황 설명을 하도록 시킬까? 아냐, 그러면 분명 상황만 더 악화될 것이 분명했어. 그런데 대체 누가 그들의 방으로 콜걸을 부른거지? 단순한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타이밍이 너무 확실한게 무언가 수상했어. 잠시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던 토니는 컴퓨터를 이용해 일대 CCTV를 조사해보도록 시켰어.
컴퓨터가 CCTV를 조사하는 사이 잠시 창가를 흘겨보던 토니는 저도 모르게 버릇처럼 눈두렁을 꾹 눌렀어. 좋아해주지는 않아도 하다못해 받아주기라도 할줄 알았는데.. 어제 그 난리통에 안그래도 못난 모양새가 더 못나게 변해버린 자신의 작품을 떠올리니 절로 기분이 우울하게 변했어. 처음 만들때만해도 스티브가 어떤 표정을 할까 싶던 수줍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진채 역시 난 스티브랑 사귀는건 분수에 맞지 않는것일까한 삽질이 시작될것만 같았어.
그러나 곧 토니는 억지로라도 고개를 들었어. 아니야. 괜한 생각 하지 말자. 오랜 밀당과 삽질을 해온 끝에 겨우 연애에 돌입하게 되었을때 진심으로 사랑한다 속삭이고 안아주던 스티브를 떠올리며 토니는 좀 더 이 관계에 끈을 꽉 움켜쥐기로 했어. 이대로 놓쳐버렸다가는 평생을 두고 후회할 끈이었어.
이번에는 좀 더 차분하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그때 당신에게 주려던게 이것이었다라며 엉망이 된 쿠키 상자를 내보여준다면 스티브도 차분히 이성을 되찾고 자신의 진심을 알아줄 것이었어. 너무 오랜시간 싸우고 다퉈왔던 터라 이제는 이런식으로 싸우기보다는 어서 빨리 화해하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두근거렸어. 토니는 어떻게든 마음의 안식을 찾고자 책상에 숨겨두었던 쿠키 상자를 꺼내기 위해 서랍을 열어보았어. 그런데 이상하게 안에는 분명 있어야 할 쿠키 상자는 없고, 왠 이상스런 펜 촉 모양의 녹음기가 놓여져 있었어.
토니는 한껏 수상스런 눈빛으로 녹음기를 노려보았어. 대체 내 노력의 작품은 어디로 가고 이런 수상스런 물건이 있는건지 의심스럽기 그지 없었어.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토니가 어디 어떤 놈이 두고 간 물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확인해보자는 심정으로 녹음기를 집어들었어.
재생 버튼을 누르자 시끄러운 노이즈가 한참을 울렸어. 시끄러운 그 소리에 얼굴을 찌푸린 토니는 짜증스럽게 녹음기를 쓰레기통으로 버릴까 생각했어. 그런데 그때 녹음기 안에서 희미하지만 목소리가 들려왔어.
-스타크... 또 싸웠어요?
-..임무에.. 치지직...
토니는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스티브의 목소리에 다시 녹음기를 쳐다보았어. 누군가 대화중인거 같은데 솔직히 스티브 목소리 말고는 제대로 분간 조차 어려울 정도로 녹음기의 상태가 좋지 못했어. 토니는 녹음기를 좀 더 귀에 바싹 붙였어.
-보스가 독단적으로 군게 한 두번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치직... 지 잘났다고 입을 나불거렸잖아. 미즈..한테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않고.. 하여튼 어딘가 성격이 모 난 녀석...치지직....그 싸가지 없는 성격.. 고칠 수 있다면...
-....즈즈즈.. 성격 못 고칠거...
자세히 들어보니 분명 호크아이와 스파이더맨의 목소리였어. 뭐라는건지 잘 들리지는 않지만 자신의 뒷담화를 늘어놓는 호크아이의 목소리가 띄엄띄엄 들리자 토니는 요것들 봐라? 한 눈을 떠보였어. 아무래도 이 둘이 자신의 뒷담화를 늘었다고 멤버중 누군가가 장난을 친 것만 같단 생각에 토니는 어떻게 둘에게 복수를 해줄까 고민에 빠졌어.
그 순간 곧 이어 스티브의 목소리가 이어졌어. 여전히 노이즈가 심해 잘 들리지 않았지만 토니는 한껏 귀를 귀울였어.
-치익... 확실히 토니가 개인 플레이가 강하.. 무모한 행동을 하거... 혼자 처리..하려는 그 버릇탓에 일을 키우기도 하....치지직..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나.... 치직.. 지난번 단독 행동도.... 억지를 써서 토르에게 맡긴것... 이지 않나..
토니는 녹음기에서 살짝 얼굴을 떼었어. 지금 이거 스티브 목소리가 맞는건가? 채 토니가 의심하기도 전에 녹음기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어.
-싸가지 없고, 재수 없... 지... 성격이 좋은 편... 치지지지직.... 도 아니... 호크아이.... 다시는 내 앞에서 그에 대해.... 언급하지 말게.
드문드문 끊기는 목소리에 토니의 얼굴이 점차 딱딱하게 굳어졌어. 다시 스파이더맨의 목소리가 들려왔어.
-....보스를 두들겨 팬...?
-...별개..
-치지지직...잘못...
토니는 심정 같아서는 좀 제대로 된 녹음기를 쓸 것이지 뭐가 이리 자꾸 끊기냐고, 녹음기를 상대로 화를 버럭 낼 뻔했어. 그러나 그 심정과 별개로 토니의 입가는 점점 싸늘해져가고 있었어.
-본인이 무엇이 잘못되고 단점인지 정도는 알고 있...즈즈즈.. 그 점에 대해 억지로 말해...도.. 치지지지.. 그 스스로 고치고자 노력.. 않..."
잠시 노이즈가 더 커졌어. 사람 소리 조차도 제대로 분간이 안가고 한참을 지지직- 소리만 연신 내뱉는 녹음기를 토니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어. 잠시 뒤 자넷으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들려왔어.
-천하의 토니 스타크가...치지직...
-......이벤트....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토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 다시 노이즈가 커지더니 뚜렷이 그가 의심하던 이를 호칭했어.
-...캡틴?
호칭된 이는 한참을 말이 없다가 단 한 단어를 내뱉어 토니의 귓가를 때렸어.
-최악이로군.
그뒤부터는 계속된 노이즈뿐이었어. 계속해서 돌아가던 녹음기는 어딘가 달려나가는듯한 쿵쿵 거리는 소리를 끝으로 콰작-..! 소리와 동시에 꺼져버렸고, 토니는 가만히 녹음기를 든 채 무표정한 얼굴로 그것을 내려다보았어.
잠시 뒤 페퍼가 노크를 하더니 사장실 안으로 들어왔어. 새로 잡힌 일정에 대해 설명해 주려던 페퍼는 왠지 모를 싸늘한 토니의 뒷모습에 놀라 몸을 주춤했어. 페퍼가 당황하여 무슨 일이 있으신거냐고 물으려는데 토니가 음습하게 먼저 그녀를 불렀어.
"페퍼."
토니는 뿌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악 문채 천천히 페퍼를 돌아보았어. 손 안에 녹음기가 금이 가 있었어.
"당장 비행기 준비시키도록 해. 한동안 출장이나 나가있어야겠어."
그렇게 최악인 작자랑 대체 어떻게 사귄기로 했던건지.. 뒤에서 자신의 험담을 늘어놓는 스티브의 목소리는 상처보다도 분노를 끓어오르게 만들고 있었어.
못해도 두어달은 짜증나는 자신과 얼굴을 마주치지 않을테니 그것 참 좋으실거라며 속으로 비아냥 거린 토니는 페퍼를 앞질러 문을 나가버렸어.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세게 닫혔어.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페퍼만 사장실에 남아 눈만 껌벅인채 제 사장의 변덕을 받아줄 수 밖에 없었어.
멀리서 이 상황을 모르는 데드풀만 신나하며 토니의 쿠키를 입에 쳐넣을 뿐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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