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세계에서는 히어로들이 길에 치인다는 말이 농담이 아닐정도로 각종 초능력을 보유한 히어로들의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았어. 그러나 그 모든 히어로들이 반드시 정의롭고 선한 인물만 있는건 아니었어. 사익을 추구하거나, 정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부적절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고 자신의 기준에 따른 정의만을 고집하고 집행하는 인물들을 일컬어 사람들은 안티 히어로라고 부르곤 하였지. 그리고 그러한 안티 히어로들을 대표하는 인물중에는 당연 붉은 쫄쫄이를 입고 거리에서 마구잡이로 총질을 가하는 미치광이 히어로 데드풀이 빠지지 않았어.
데드풀은 언제나처럼 히어로를 동경하는 옳은 마음으로 노인의 장바구니를 빼앗고, 물건값 대신 자신의 싸인을 남겼으며 교통신호를 지키지않는 자동차 뒷바퀴에 총질을 가하는 일 등을 서슴치 않았어. 오늘 하루만 보람찬 하루를 잔뜩 보낸 데드풀은 하루를 장식하는 마지막으로 선량한 시민을 괴롭히는 못된 빌런 녀석을 사정없이 두들겨 패주었어. 뭐, 시민이 그냥 길을 물었을 뿐이라고 증언한거 같았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어.
상쾌한 마음으로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던 데드풀은 차비가 부족하다는걸 깨닫고 대자로 뻗어버린 빌런 녀석의 뺨을 두들겨 깨웠어. 돈 좀 꿔달라고 졸라대는 데드풀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에 빌런은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만 같은 정신을 바로 잡고 힘겹게 가운데 손가락을 날려주었어. 충격을 받은 데드풀이 너무하다며 빌런을 짤짤 흔드는데 근처에서 무언가 데드풀의 레이더망에 걸리고 말았어.
허공을 가로지르는 익숙한 바람 소리에 하늘을 올려다 본 데드풀은 자신만큼이나 붉은 쫄쫄이를 자랑하는 귀여운 히어로를 발견하자마자 빌런을 내던져버리고 그 뒤를 빠르게 쫒아갔어.
스파이더맨은 뉴욕 건물 사이사이를 날아다니며 한시 바삐 어벤져스가 호출된 장소로 날아갔어. 꽤나 애를 먹이는 빌런 녀석을 물리치기위해 도움 요청을 받은 스파이더맨은 역시 자신이 없으면 안된다며 자만하였어. 그러자 그런 스파이더맨에게 벌이라도 내려주듯 스파이더 센서가 울림과 동시에 그가 가장 골치 아파하는 스토커가 얼굴을 바짝 내밀었어.
"어딜 그렇게 가는거야? 스위티?"
"우왁! 데드풀, 갑자기 무슨 짓이야!"
데드풀에게 하늘을 나는 능력은 없지만 녀석은 미친 짓거리를 할 수 있는 또라이 성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었어. 스파이더맨이 거미줄을 날리며 날아가는 위치를 계산한 데드풀은 빠르게 건물 옥상으로 달려가 적당한 타이밍에 맞춰 번지점프를 하였어. 그리고는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을 그대로 잡아채 제 스스로 거미에게 몸을 맡겼어. 조금만 타이밍이 실패하면 즉사이거늘 불사의 능력을 가진 데드풀에게 그런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는 모양이었어.
스파이더맨은 중력 때문인지 아니면 일부러인지 자신에게 바짝 붙는 데드풀을 짜증스럽게 밀어내려고 했지만 이대로 고층 건물에서 떨어진다면 죽진 않아도 꽤 아플지도 모른다는 한심한 생각에 어정쩡한 자세로 데드풀을 안을 수 밖에 없었어. 둘이 꼬옥 껴안은채 근처 옥상에 내려앉는 그 짧은 순간까지도, 데드풀은 못해도 헐리웃 영화를 5편이상 찍은 사람마냥 각종 오버액션을 펼쳐대었어. 다행히 스파이더맨은 녀석을 상대하는 방법중 유일한 해결책이 무시밖에 없단걸 잘 알고 있었어.
"난 지금 너랑 노닥거릴 시간없어. 괜히 쫒아오지 말고 네 갈길이나 가."
"우리 자기는 너무 매정해."
(덮쳐! 덮쳐!)
스파이더맨은 손을 내저으며 데드풀의 말들을 무시하기로 했어. 지금은 그다지 미치광이를 상대할 타임이 아니었어. 다시는 내 거미줄에 뛰어 타지말라 경고한 스파이더맨은 그대로 엉덩이를 씰룩이며 다시 날아가버렸어. 하지만 데드풀이 그런 경고따위를 들을 녀석일리가 없었어.
얼마가지도 못해 스파이더맨은 자신의 아래쪽 도로가 시끄럽다는 사실에 아래를 내려다보았어. 그리고 곧 질린다는 얼굴로 소리를 질렀어.
"따라오지 말라니까!"
언제 또 오토바이를 훔쳐탄건지 교통신호 따위 모두 무시한채 역주행을 하며 데드풀이 스파이더맨에게 손을 흔들어보였어.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트럭과 부딪힐뻔했지만 데드풀은 재미있다며 속도를 더 올릴 뿐이었어. 빵빵거리는 크락션 소리가 사방에 울려퍼지고 여기저기에서 욕설과 비명소리가 난자했지만 데드풀은 그보다 더 큰 목소리로 고래고래 스파이더맨에게 말을 걸었어.
"그게 진심으로 가능할거라 생각해?"
<생각보다 스파이디는 멍청하네.>
(우린 멍청한 거미를 쫒고 있어!)
안그래도 호출된 일만으로도 바빠 죽겠거늘 데드풀까지 끼어 이리저리 정신이 사나워진 스파이더맨은 일단 데드풀이 다중 충돌사고라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이제는 역으로 자신이 데드풀이 가는 방향을 따라가게 되었어. 데드풀은 본인이 어딜 가는지도 모른채 그저 직선 도로를 따라가듯 오토바이를 몰며 스파이더맨을 올려다보았어.
"어벤져스 관련 일이야? 그럼 거기 다른 히어로들도 있는거야? 캡틴 아메리카랑 아이언맨도? 오, 이번엔 반드시 그 둘한테 싸인받아야지! 지난번에 받으려고 했을땐 리펄서 빔이 내 이마를 관통해서 못 받았었거든."
<그때 화끈했지! 거기다 덤으로 캡틴이 내 얼굴에 주먹도 날려주고 말이야!>
(조금만 더 잘 숨어 있었으면 아이언맨이 팬티를 벗는것까지 볼 수 있었는데 참 아까웠지.)
운전을 할때는 앞을 보는것이 운전 수칙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었어. 당연히 그 수칙을 지키지 않은 데드풀은 갑작스런 커브길을 보지 못하였고, 그대로 인도 방향쪽으로까지 나아가버리고 말았어. 미처 핸드를 돌리기도 전에 바로 앞에 아이를 안아든 여인이 비명을 내질렀어.
다행히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맞춰 거미줄이 여인과 아이를 지켜내는데 성공하였어. 오토바이와 데드풀을 통채로 거미줄로 잡아챈 스파이더맨은 도대체가 저 녀석을 만나면 고생이 평소보다 한바가지는 더 된다고 짜증을 부렸어. 마치 도르레를 타듯 다시 스파이더맨에게 올라간 데드풀은 지금 낚시로 대어를 잡은거냐고 별 시덥잖은 농담을 주절거렸어.
"이번에도 머리가 터져버리기 싫으면 제발 따라오지 좀 마!"
데드풀이 과장스럽게 어깨를 으쓱였어. 그 확고한 미치광이의 고집을 떨쳐버릴수 없단 사실에 스파이더맨은 절로 이마를 짚었어. 이대로 이 녀석을 내버려두고 가기에는 또 무슨 짓거리를 할 지 몰라 더 불안하기도 했어.
"젠장. 대디한테 한소리 듣겠네."
"대디? 대디가 누구인데? 스파이디 네 대디는.."
"입 닥치지 못해?"
다음 데드풀이 내뱉을 말이 듣기 싫었던 스파이더맨은 얼굴을 구기며 말을 잘랐어. 그러나 이번에도 데드풀이 스파이더맨의 말을 들어처먹을 리가 만무했어. 언제라도 스파이더맨이 손을 놓는것만으로 자신을 몇 피트 상공에서 떨어트릴수 있단 사실을 알면서도 데드풀은 그걸 더 바란다는듯이 쉬지않고 입을 떠들어대었어. 그러다 스파이더맨이 말하는 대디라는 호칭의 뜻을 깨달았다는듯이 오두방정을 떨었어.
"오, 나 알아! 대디란거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 맞지?"
<둘이 결혼했데? 언제?! 왜 우리는 초대해 주지 않았지?>
(너 같으면 우리를 초대해 주겠냐?)
"그래도 난 그 둘이 스파이더맨의 부모님이라는 소리는 처음 들어본거 같은데?"
(진짜가 아니라 별명인거잖아!)
자신의 인격들과의 대화를 통해 본인의 질문에 대답을 추려낸 데드풀은 깨달음을 얻자 손벽을 쳤어.
"그럼 지금 우린 장인 장모님을 만나러 가는거야? 인사드리러 가는거면 씨암탉이라도 가져가봐야 하는거 아니야?"
<그걸로 되겠어? 아이언맨은 억만장자라고. 은행이라도 털어 가야 체면이 살지 않겠어?>
(은행 금고를 그대로 끌고 가서 토니의 타워에 박아버리자!)
"아주 좋은 생각이야!"
훌륭한 의견에 만족한 데드풀은 곧장 총을 꺼내들었어. 아무래도 이대로 놔주었다가는 진짜 은행이라도 털거같은 기색이었지.
스파이더맨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그저 데드풀을 어떨까 할까 곰곰히 생각에 빠졌어. 그러나 곧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저 멀리 구름들이 몰리더리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내리쳐졌어.
토르의 벼락 소리에 스파이더맨은 더 이상 지체할 틈 없이 그저 데드풀을 거미줄에 매단채 빠르게 현장으로 날아갔어. 데드풀이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기분 좋다고 무어라 떠든거 같았지만 그리 신경쓸 문제는 아니었어.
그렇게 미치광이의 고막 테러를 받으며 마침내 스파이더맨이 현장에 도착했을땐 블랙 위도우가 한 발 늦었다는듯 쓰러진 빌런들을 정리하고 있었어.
"왜 이렇게 늦었어? 그 미치광이 녀석은 왜 데리고 온거고?"
"제 의지는 없었어요."
허탈함에 스파이더맨은 어깨를 늘어트렸어. 데드풀 때문에 다 끝난 파티에 도착했다고 욕해야할지 아니면 자신이 없어도 다른 히어로들이 상황을 잘 처리해서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본인 스스로도 감이 잡히지가 않았어. 그러자 블랙 위도우가 그런 스파이더맨을 위로라도 해주듯 아직 상황이 다 끝난건 아니라며 어딘가를 가리켜 보였어.
블랙 위도우가 가리킨 방향을 본 스파이더맨은 오늘은 왜이리 정신 사나운 일의 연속인지 절로 한숨을 내뱉었어.
"아이언맨! 거기서는 토르가 담당할 일이라고 말했잖나."
"하지만 아무리보아도 토르보다 여기서는 내가 맡는게 더 효율적이잖아. 내가 나선 덕분에 빌런의 도주를 막을수도 있었고 말이야."
"그래서 하마터면 미즈마블도 다칠뻔 하였어! 자네의 독자적 행동으로 인해 팀원이 다칠뻔했단 말일세."
"애초에 처음부터 토르가 맡아야할 부분을 내가 맡았으면 좀 더 안정적이었을거잖아. 자네가 괜히 내가 한다는걸 반대해서.."
"한마디만 더 효율이니 그런식으로 떠들어보게..!"
캡틴 아메리카가 위협적으로 다가가자 아이언맨은 지금 나도 아머 입고 있거든? 하면서 지지않고 마주 으르렁거려 주었어. 현장 한가운데에서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맹수들 마냥 으르렁 싸워대는 꼴에 히어로들은 익숙한듯 두 사람을 말리기는 커녕 멀찍이 서서 구경만 하였어.
데드풀이 눈을 반짝이며 호들갑을 떨었어.
"부부싸움인거야?!"
<싸워! 싸워! 칼로 내장을 쑤셔 박으란 말이야!>
"넌 제발 좀 입 닥치고 꺼져."
저 둘의 싸움이 커지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주변 이들이기에 스파이더맨이 쌈지눈을 키고 데드풀을 노려보았어. 다들 싸우면서 크는거잖아. 안그래? 저 둘이 한번만 더 싸우면 2차 시빌워가 발병되거늘 참으로 태병한 말투였어.
아이언맨! 잔뜩 화가 난 캡틴 아메리카의 목소리가 현장을 울렸어. 꼭 마치 진짜 사귀는 부부사이 마냥 티격거리는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모습에 보다못한 울버린이 옆에서 시가에 불을 붙이며 평을 늘어놓았어.
"저놈의 집구석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군. 차라리 저럴거면 이혼을 해버리는 편이 나을텐데."
그 말에 호크아이가 낄낄 웃으며 그럼 우리는 이혼가정이 되는건가?란 드립을 날렸어. 슈퍼팸이라는 별칭이 생길정도로 공식 엄마아빠 역을 하는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을 두고 한 흔한 농담에 다른 히어로들도 하나둘 가볍게 농담들을 받아쳤어.
"가정을 생각해서라도 이혼은 좀 더 신중히 생각해봐야하는거 아니야? 여기 아이들만해도 몇이나 있는데."
"난 아빠를 따라갈거야."
"위자료는 걱정할 필요 없겠네."
"그냥 차라리 독립하는게 나을거같은데?"
어벤져스들이 저들끼리 한 농담에 재미있다는듯 웃음들을 터트렸어. 힘든 전투를 끝맺히고 언제나 이런식으로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을때면 마치 퇴근하는 직장인들과 다를바없는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어. 비록 저 앞에 싸우고 있는 리더들의 모습은 사나울지 몰라도 익숙할정도로 평화로운 일상 그 자체였지. 단지 오늘은 평소와 달리 그 농담이 통하지 않는 이가 한명 끼어있었지만 말이야.
"이혼이라니, 그건 안되지!"
이대로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이혼하여 또 다시 가정을 잃을 스파이더맨의 처지를 안타까워한 데드풀은 자신이 떠올린 상상의 나래를 막고자 얼른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 사이로 뛰어 들어갔어. 스파이더맨이 기겁하며 손을 뻗었지만 너무 데드풀의 행동은 그 어느때보다도 재빨랐어.
옆에서 다른 이들이 무어라 말하건 신경쓰지 않고 자신들끼리 왁왁 싸워대던 스티브와 토니는 갑작스런 데드풀의 등장에 당황할 틈도 없이 자신들의 뒷통수를 잡고 싸우지말고 키스해! Right Now!! 해대는 데드풀의 손을 뿌리쳐냈어.
"..여기 데드풀이 왜 와 있는거지?"
"스파이더맨이 끌고 왔어. 그것보다 둘이 키스 안 할거야?"
뻔뻔한 데드풀의 발언에 스파이더맨이 펄쩍 뛰었어.
"내가 데려온거 아니예요! 멋대로 따라온거란 말이예요!"
거기다 은행을 턴다느니 다른 추가 사고를 칠지 모를 불안감에 어쩔수 없었다는 처절한 스파이더맨의 변명이 계속되었지만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표정들은 싸늘하기만 했어. 마치 절대 저 친구와는 놀지 마라 경고하였거늘 놀다 걸린 아들을 나무라는듯한 그 눈빛에 스파이더맨은 억울했어.
"스파이더맨. 나중에 따로 이야기 하도록 하지."
아무래도 저 미친 녀석을 이리로 데려오는게 아니라 어디 외진 장소에 거미줄로 꽁꽁 묶어버리는 편이 나았을지도 몰랐어. 조금 늦은 깨달음에 슬퍼하며 스파이더맨은 두 손으로 얼굴을 묻었어. 젠장할.. 데드풀.
스파이더맨의 속도 모른채 데드풀은 여전히 아이언맨에게 이혼은 안된다며 아이들을 생각해봐야하지않겠냐고 설득 아닌 설득을 해대었고, 결국 오늘도 데드풀은 이마에 리펄서 빔을 맞고야 말았어. 그렇게 평소와 다를바없는 흔한 날이 지났지만 그날 데드풀의 민폐는 모든 사건의 전초였을 뿐이었어.
토니는 몹시도 심각한 얼굴로 자신의 양손에 놓인 상자와 핸드폰을 번갈아 바라보았어. 스티브와 사귀는걸 다른 히어로들이 알게 되면 일어날 파장이 싫었던 터라 비밀리로 사귀고 있던 두 사람은 토니 소유의 고급 빌라를 비밀 은신처 삼아 이곳에서만큼은 마음 편하게 연애를 하곤 하였어. 아무리 피곤하고 지쳐도 서로에게 안겨 안식을 주는 이 장소는 때로는 그들만의 화해의 장소이기도 하였어.
[선물 준비했어. 먼저 가서 기다릴게.-T]
지난번 단독 행동에 화가 나 있던 스티브에게 못내 찔린 토니는 결국 자신이 먼저 한걸음 물러날 수 밖에 없었어. 어찌되었든 자신이 먼저 명령을 어긴것이고, 그를 걱정시킨 것이었으니 말이야. 솔직하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내뱉기 어려웟던 토니는 어떻게 화해를 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친 끝에 조금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해주기로 하였어.
하지만 처음 마음 먹었을때와 달리 정작 모든걸 준비해 놓고 문자를 보낸 뒤에는 자신의 행동에 미칠듯한 후회가 밀려왔어. 이걸 과연 스티브가 좋아하기는 할까? 나도 다른 여자들에게 선물받을때 가장 쓸모없다고 생각한 이런 멍청한 선물을? 그것도 그리 모양새가 썩 좋지도 않은데..
토니는 다시 한번 걱정스럽게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이런 바보같은 선택을 한 자신을 몇번이고 씹어내렸어. 토니 스타크면 토니 스타크다운 이벤트를 준비할 것이지 갑자기 이런 소녀 감성 돋는 이상한 짓거릴 왜 한다고 그 난리를 친건지, 마음 같아서는 그냥 이런 상자따위 집어 치워버리고 자신의 몸이 선물이라며 스티브에게 들이대는게 나았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었어.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할때쯤 스티브에게 답장이 도착했어. 허겁지겁 문자를 확인한 토니는 주체할수 없는 복잡한 기분에 발을 동동 굴렸어.
[거의 다 왔네.-S]
이제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어. 토니는 선물을 줄 것인지, 말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기로 앞에 정신사납게 방 안을 돌아다녔어. 과연 스티브가 이걸 받고 무어라 할까? 좋아하기는 할까? 만약 좋아해준다면 뭐라고 말해줄까? 괜한 부끄러움에 토니는 화끈 달아오른 얼굴을 손으로 부치다가 못참고 이내 넥타이와 단추를 느슨하게 풀어헤쳤어. 그래도 스티브라면 직접적으로 싫어하는 기색을 안 비칠거란 희망을 갖고 토니는 몇번 자신을 가다듬고자 심호흡을 내쉬었어.
그때였어. 방 문 앞에서 똑똑하는 노크소리가 들려왔어. 상자를 협탁에 올려둔 토니는 허겁지겁 방 문을 열어제켰어.
"왔어? 금방온다더니 정말 근처였나 보... 누구지?"
"토니 스타크?"
절대 외부인은 들어올 수 없도록 준비해둔 자신의 아파트에 난잡한 옷차림에 여자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방 문앞에 서 있다가 오히려 토니를 보고 자신이 더 놀랐다는듯 두 눈을 뎅그랗게 뜨고 올려다보았어. 그러다 곧 알겠다는듯이 자신을 경계하는 토니를 향해 음흉한 미소를 띄어 보이며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섰어.
"부자라고 다를 바는 없네요. 좀 더 고급 콜걸을 부르고 놀 줄 알았는데 가끔은 싼 맛도 괜찮다 이거죠?"
"..주소를 잘 못 찾아온거 같군. 미안하지만 난 콜걸을 부르지 않았어."
애초에 사람들의 눈을 피하고자 건물 전체를 사들인 자신들만의 비밀 아지트에 처음으로 다른 누군가가, 그것도 하필이면 콜걸이 들어왔단 사실에 토니는 영 달갑잖은 표정이었어. 하지만 여자는 뻔뻔하게도 외투를 벗으며 침대 한편에 다리를 쭉 펴고 눕는 여유로움까지 보여주었어. 아무래도 유명인과 콜걸이 마주쳤을때 어느쪽이 더 불리하게 작용하는지 아는 여자 같아 보였어.
"그치만 난 이렇게 선불까지 받았는걸요? 꽤 비싸게 받은거라 이대로 가면 좀 그렇지 않겠어요?"
"내가 두 배로 줄테니 그냥 가도록 해."
"거기다 토니 스타크가 싸구려 콜걸을. 그것도 3p를 요구하신거라 저 말고 다른 누구를 불렀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죠."
몇마디만 놀리면 내일 아침 뉴스에 나올 속보를 자신이 바꿀수 있다는 짜릿한 생각에 여자가 일부러 깐죽거리듯 토니를 향해 웃음을 날렸어. 토니 스타크라는 부자놈을 자신같은 콜걸이 쥐고 흔들수 있다는 지금 상황이 꽤나 재미있는 모양이었어.
토니는 익숙한 귀찮음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어. 저런 여자 한명이 자신을 흔들정도의 위력을 내기는 힘들겠지만 귀찮게 만들수는 있었기에 아무래도여자를 적정선으로 정리가 필요할거 같았어. 그리고 덤으로 만약을 위해 이 아지트를 옮길 필요도 말이야.
"네 배를 주도록 하지. 하지만 이 이상은 적당히 까부는게 좋을꺼야. 아무리 나라고 해도, 지금 이렇게 원치않는 타이밍의 이런 상황은 그리 썩 기분이 좋지만은 않거든."
자신들만의 소중한 장소를 콜걸의 등장 때문에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이 어지간히도 불쾌하고 더러웠어. 항상 스티브가 눕던 자리에 신발도 벗지 않은채 올려진 여자의 다리가 못내 기분 나빴던 토니는 당장 나가라며 그리 부드럽지 못한 태도로 여자의 팔을 잡아당겼어.
생각과 달리 강경한 토니의 태도에 여자는 꽤 당황한듯 엉거주춤 토니에게 딸려 올라갔어. 조금 힘이 과하게 들어갔는지 여자는 손쉽게 일으켜졌고, 곧 굽이 높은 하이힐에 비틀거리며 토니의 가슴팍에 진한 화장을 묻히게 되었어.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드라마는 타이밍 좋은 모양새였지.
왜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에 도착한건지, 나름 토니가 먼저 손을 내밀었단 사실에 남모를 뿌듯함을 느끼며 방에 들어온 스티브는 자신들만의 공간에 콜걸로 추정되는듯한 옷차림새의 여자와 안기듯 다정하게 마주 서 있는 토니의 모습에 그야말로 살벌하다 못해 무시무시한 기색까지 내뿜고 있었어. 토니의 얼굴이 허옇게 질려졌어.
"아니, 잠깐. 스티브..! 자네가 뭘 오해하고 있는지 이해는 가지만 그건 절대 아니.."
"준비한 선물이란게 이런거였나 보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스티브의 모습에서 공포 그 자체가 뿜어졌어. 그 차가운 얼음장 같은 목소리에 여자는 본능적으로 토니의 셔츠를 잡아당기며 자신을 보호하고자 했어. 그 모습에 상황은 더욱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진다는 것도 모른체 말이야. 토니가 어떻게든 여자를 떨어트리려 했지만 그보다 스티브의 웃음이 토니의 행동을 정지시켰어.
"나도 그에 따른 보답을 해주는게 좋겠지."
분명 처음 연애를 시작할 당시 절대 다른 이에게 눈을 돌리거나 바람을 필시 가만 두지 않겠다던 장난과 같던 맹세는 아무래도 진심이었던 모양이었어. 곧 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사랑의 아지트에서는 누구의 것인지 분명한 비명소리와 함께 물건 부서지는 소리가 난자하게 울려퍼졌어.
"우후, 꽤 격렬하게 노는걸?"
<역시 캡틴도 화끈한 플레이를 좋아하는 모양이네.>
(아주 그냥 아이언맨도 죽어가고 있고 말이야. 근데 저거 저러다 진짜 죽는건 아니겠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건물에서 망원경으로 스티브와 토니의 방 위치를 훔쳐보던 데드풀은 의자가 창문을 깨고 날아가는걸 보며 휘파람을 불었어. 커튼이 쳐져 있어 내부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그림자만으로도 두 사람의 모습은 꽤나 즐거워보였어.
아직도 스티브와 토니를 보고 이혼이라는 이상한 망상에 빠진 데드풀은 둘의 이혼을 막고자 자청하여 큐피트로 나서기로 하였어. 몇날 며칠을 걸친 스토커질을 통해 두 사람의 아지트를 알아낸 데드풀은 오렌지 주스를 빨며 자신이 준비해준 특별 이벤트를 즐기는 스티브와 토니의 모습을 구경하였어. 비명소리를 듣건데 두 사람도 이벤트가 꽤나 만족스러운 모양이었어.
건물 밖으로 여자가 허둥지둥 뛰쳐 나왔지만 데드풀은 그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채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스티브와 토니를 보며 하하 웃었어.
"이야, 저러다 허리 나가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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