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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EMH 스팁토니]전력60분/애완동물

"좋아요, 토니!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어요. 대체 스티브한테 뭐라고 퇴짜를 놓은거에요?"



쾅! 자넷이 책상을 내리치자 토니가 주춤 뒤로 몸을 뺐다. 사납게 자신을 쏘아보는 자넷의 패기에 기가 죽듯 토니가 어떻게든 눈을 피하려 했지만 자넷은 절대 용납 못한다는듯 엄하게 눈을 마주치려 들었다. 다른 어벤져스들 역시 이 화제가 어지간히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지 두 사람에게 시선을 쏟아내었다. 토니는 부담감에 더욱더 고개를 숙여나갔다.



"토니에게도 스티브를 거절할 권리가 있단거 나도 이해해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어벤져스 일까지 못할 정도로 상처를 준건 너무하잖아요! 도대체 어떤 말을 했길래 천하의 캡틴 아메리카의 멘탈이 깨질 정도였던 건데요?!"



토니는 그저 대답없이 얼굴만 붉혔다. 스티브가 토니에게 패기좋게 고백한 사건은 이제 어느덧 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마냥 서로를 향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스티브와 토니를 보고 어벤져스들은 마냥 두 사람이 사귀는데에는 시간문제라며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였지만 그런 그들의 기대와 달리 스티브의 고백은 무참히 토니에게 깨져버리고만 것이었다. 이 충격적인 상황에 특히나 가장 적극적으로 스티브를 밀어주었던 자넷은 스티브가 토니에게 차인 충격으로 방에서 나오려하지 않자 가장 흥분해 토니를 닦달하려 들었다.



"당신도 캡을 좋아하잖아요! 도대체 뭐가 문제인건데요?"

"..."

"자넷. 그만 진정 좀 해."



행크가 토니를 심문하는것처럼 매섭게 쏘아보는 자넷을 말리듯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행크 역시 자넷 못지않게 토니가 스티브를 찬 이유가 궁금하다는듯 차분히 토니를 설득했다.



"두 사람 연애문제까지 우리가 끼어드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도 네가 캡틴을 좋아하는줄 알았어. 그도 그럴것이 어디 나갔다 오기만하면 제일 먼저 캡틴부터 찾질않나 허구한날 캡틴, 캡틴하고 쫒아댕기나했었잖아."

"캡틴한테 데이트 신청도 했고요! 설마 당신 캡틴을 가지고 논거였어요?!"



자넷을 말리면서도 설마하는 어벤져스들의 불신어린 시선들이 토니에게 쏟아졌다. 억울하다는듯 토니가 주먹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웅얼거렸다.



"난 절대 그런 의미로 한게 아니란 말이야.."

"그런 의미가 아니면 뭔데요? 자세히 좀 말해보란 말이에요. 그래야 우리도 뭔 대책을 세우지, 이런 상태로 빌런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라고요!"



이건 제법 효과가 있었는지 토니의 어깨가 움찔 움직였다. 빈틈을 파고들듯 호크아이와 캐롤까지 적극적으로 자넷의 편을 들며 이러다 영원히 캡틴이 방에서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냐, 어벤져스는 이렇게 해체되는 것이냐, 어벤져스의 위기다 하며 말들을 주절거리자 토니의 안색은 더더욱 퍼렇게 변해나갔다. 쇄기를 박듯 행크가 토니.. 하고 이름을 부르자 결국 토니가 백기를 들고야 말았다.



"어릴때 개를 키웠어.."

"네?"



뜬금없는 토니의 발언에 어벤져스 모두가 방금 뭐라고 했냐며 토니를 쳐다보았다. 토니의 얼굴이 이제는 금방이라도 터져버릴듯 귀는 물론이고 목까지 새빨개졌다.



"커다란 리트리버였는데.. 일반 리트리버보다 덩치도 더 크고 늠름한데다가 머리도 똑똑한 녀석이었어.."

"설마.. 토니, 당신 설마.."

"이름이.. 캡틴이었어.."



외로웠던 어린 시절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유일한 친구. 반짝이는 금빛 털과 늠름한 그 자태는 어린 토니가 양 팔을 크게 벌려도 목만 겨우 끌어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골든 리트리버에 대한 추억은 토니에게 절대 잊지 못할 친구의 추억이었다. 비록 개 따위를 보고 천진난만하게 웃는 토니가 못마땅했던 하워드의 손으로 강제로 생이별을 해야만 했지만 토니는 후에 어른이 되어도 캡틴과의 추억을 잊지 못하고 자신의 가슴속에 쌓아두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가슴 속 공허함과 친구에 대한 그리움은 우습게도 어벤져스가 북극에 떨어진 캡틴 아메리카를 발견한 순간 불을 지피고 말았다.



"이거 완전 쓰레기 자식이잖아!"



자넷이 결국 참다못해 화를 버럭내고야 말았다. 그럼 설마 매일같이 스티브를 찾던 것도, 심지어 같이 데이트 가자던 신청도 개산책같은.. 당장에라도 어떻게 스티브에게 그럴 수 있냐며 자넷이 토니의 멱살을 잡으려 들었다.



"그치만! 나도 정말로 스티브를 내가 키우던 개로 본건 아니라고! 그냥.. 그냥 스티브 옆에 있으면 옛날 추억도 생각나서.. 그냥 그래서..!"



토니는 자신을 바라보는 어벤져스들의 싸늘한 시선에 점차 그 목소리를 줄여나갔다. 붉어진 얼굴이 바닥만 바라보듯 아래로 푹 떨어졌다.



"나도 알아. 내가 잘못했어."

"스티브한테 그걸 그대로 말한거에요? 난 네가 옛날에 키우던 개로 보였다고?"

"내가 미안하다고 거절해도 자꾸 합당한 이유를 말해줄때까지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고 해서.."



양심이 있지 처음에는 그런 말을 대놓고 스티브에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단지 아무리 미안하다고 이러저러 변명을 대보아도 자신이 이해가 갈 정도로 제대로 된 진짜 이유를 말하라는 스티브의 끈질긴 질문에 터져버리고 만 것이었다. 토니는 그때 자신의 말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짓던 스티브의 얼굴을 떠올리며 자책감에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자넷이 이마를 짚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서 사과해요. 토니."

"화.. 많이 났겠지?"

"그걸 말이라고 해요?!"



깨갱 소리를 내듯 토니가 다시 자넷의 호통에 몸을 움찔했다. 히스테릭한 자넷의 목소리 너머 묵직한 발소리가 점차 두 사람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떻게 사람을 보고 옛날에 키우던 개를 떠올렸다는 말이 나올수 있어요! 게다가 스티브는 토니도 자길 좋아하는줄 알고 얼마나 기뻐했는데..!"



자넷이 말을 하다말고 토니의 뒤에 들이워진 그림자에 입을 다물어버리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홀 전체가 싸해지는 분위기에 토니는 등꼴이 오싹해지는 것을 경험하며 천천히 자신의 뒤를 돌아보았다. 커다란 금발 덩치가 토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스티브.."

"토니."



토니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당장에라도 스티브의 주먹이 얼굴을 날라오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 홀 전체가 긴장감에 싸해졌다. 토니를 향해 뻗어지는 스티브의 손에 행크가 당황하여 앞으로 다가서려했다. 그러나 그 순간 스티브의 손은 다정히 토니의 어깨를 짚을 뿐이었다.



"나를 보면 예전에 키우던 개를 떠올린다고 했었지."

"아냐, 그건 그러니까.. 스티브. 그건..!"

"괜찮아, 토니. 정말 괜찮아. 자네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을 해보았지만 역시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법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다 이해한다는듯 스티브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자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어벤져스들이 긴장감에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했다. 느릿한 동작으로 스티브가 자신의 목을 가리고 있던 셔츠자락을 열어 안을 보여주었다. 일동 모두가 숨을 들이쉬었다.



"난 자네가 원한다면 자네의 개가 되어줄 생각도 있으니 걱정말게."

"뭐?"



스티브 목에 걸어진 개목걸이에 토니도, 어벤져스도 모두가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듯 눈을 껌벅였다. 그런 그들 사이 스티브만이 환하게 미소지으며 목줄이 이어진 개줄을 토니에게 건네주었다.



"자, 어서 날 키우게. 토니."

"스.. 스티브. 자네 뭔가 엄청난 오해를 한거 같은데.."

"사양할 필요는 없어. 토니. 난 자네가 원하면 얼마든지 개가 될 수 있으니까."



스티브의 광기어린 눈빛은 도무지 제대로 된 대화가 통하는 상황이 아닌 듯 해보였다. 도대체 방에서 어떤 별에 별 생각들을 했었던건지.. 자신에게 강제로 목줄을 쥐어주는 스티브의 모습에 토니가 마치 기계처럼 끼릭끼릭 어벤져스들을 뻣뻣이 돌아보았다. 토니의 동공이 미친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저기.. 얘들아? 나 좀 도와줄래?"



어벤져스들은 토니의 SOS에 그저 조용히 몸을 일으킬 뿐이었다. 여전히 웃고는 있지만 눈빛만큼은 골든 리트리버가 아니라 사자라 할 정도로 흉흉한 기세에 어벤져스들은 두 사람의 행복을 기원하듯 토니의 어깨를 두들기며 빠르게 자리를 피하고자 했다. 마치 이 미친 곳에서 어서 나가야겠다는 절실함이 가득 넘치는 현장이었다.



"축하해요. 토니. 드디어 꿈에 그리던 캡틴을 다시 만났네요."

"연애 문제는 끼어드는게 아니라고 했지."

"우리 오늘은 다들 외박하고 오는게 좋을거같은데?"

"그럼 오늘은 멘션 건너편 호텔에서 다들 숙박하고 오는게 어때?"

"난 장기로 예약할래."



그저 어벤져스들의 뒷모습을 향해 토니가 처절하게 멤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지만 어느 누구도 뒤를 돌아보는 이는 없었고, 스티브가 토니에게 주인님이라며 허리춤을 잡고 눈을 반짝이는 것을 보지 않았다. 


굳이 그들만의 플레이를 어벤져스들이 구경할 이유는 없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