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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스팁토니]꽃푸딩님 리퀘/그림자

하루종일 페퍼에게 시달려 회사일을 맞친 토니가 피곤한 어깨를 주무르며 타워에 돌아왔다. 오늘같은 날 정도는 좀 넘어가주면 좋으렸만 그간 미뤄둔 일들이 상당히 쌓여 도망가기도 영 쉽지가 않았다. 


오늘 하루종일 스티브와 심심한 하루를 보냈을 피터에게 미안한 마음에, 한손에는 얼마전부터 피터가 먹고 싶다 조르던 어벤져스 케이크를 들고 다른 한손에는 스티브에게 줄 콘돔상자를 챙긴 토니는 즐거운 마음으로 스티브와 피터가 있을 타워 최상층으로 향했다. 자신의 퇴근을 반갑게 맞아줄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면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이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정작 토니가 최상층에 도착했을 때, 스티브와 피터는 보이지 않고 층 전체가 불이 꺼진 어두컴컴한 상태였다. 당황한 토니가 황급히 자비스를 부르자 자비스가 소리없이 작은 창을 띄어보여주었다. 자비스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보자 방 한편에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빼꼼히 문을 연 토니는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손전등 하나만 킨 채 이불을 뒤집어 쓰고 깔깔 웃고 있는 스티브와 피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이 온지도 모르고 뭘 그리 재밌게 놀고 있는건지.. 일부러 인기척을 크게 내며 토니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둘이 불끄고 뭐하고 있는거야?"

"때디! 때디!"

"아, 토니. 왔는가. 우린 지금 그림자 놀이중이었다네."



스티브가 슬쩍 손전등 불빛에 손을 들어 벽에 그림자를 만들어내었다. 토니를 보고 방방거리며 좋아하던 피터가 스티브가 만들어낸 그림자에 눈을 반짝였다.



"피터, 이거 봐라. 오리다. 꽥꽥꽥."

"꽥꽥꽥! 꽥꽥."



스티브가 만들어낸 오리 형상에 피터가 마치 따라하듯 입을 비죽 내밀고 꽥꽥 소리를 질렀다. 피터를 허벅지에 앉힌채 똑같이 꽥꽥 소리를 내는 두 부자의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토니는 내심 서운했던 마음이 풀려 슬그머니 두사람의 옆자리를 차지해 앉았다. 토니가 곁에 오는 것을 본 스티브가 빙긋 웃으며 이번에는 다른 모양으로 손가락을 꼬아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이번에는 토끼다."

"토끼! 토끼!"



다른 방식으로 손가락 모양을 바꾸자 이번에는 오리에서 토끼 그림자가 벽에 나타났다. 스티브는 토끼 귀를 까닥이듯 손가락을 까닥이며 깡총깡총 흉내를 내었다. 똑같이 피터가 발을 붕붕 흔들며 깡총깡총 소리를 내었다. 그림자 놀이가 정서적 발달에 좋다고는 들었지만 생각한거보다 훨씬 반응이 좋은 피터의 모습에 토니도 신나하며 놀이에 끼어들었다. 토끼 그림자 옆으로 늑대 그림자가 생겨났다.



"피터, 이거 봐라. 나는 늑대다. 아우우-"



늑대 그림자를 만들어낸 토니가 스티브의 토끼 그림자에게 다가와 입을 쩍쩍 버는 쉬늉을 냈다. 늑대! 늑대! 하는 피터의 대답에 신나 토니가 더 크게 입을 벌렸다. 늑대가 토끼를 잡아먹는다. 냠냠냠냠. 음~ 맛있어라. 나쁜 늑대 목소리를 흉내내듯 낮게 목소리를 울리며 슬쩍 스티브의 손을 밀어낸 토니가 더욱 게걸스럽게 늑대 입을 벌렸다. 피터의 웃음이 뚝 끊겼다.



"난 짱 쎈 늑대다! 여기있는 초식동물들을 다 먹어버리겠다. 아우- 누구 또 먹을사람 없나? 여기 꼬맹이를 먹어버릴까~? 요 쪼끄마한 꼬맹.. 어, 어? 피터. 왜 울어?!"



한참 신나 늑대 흉내를 내던 토니가 확 하고 개구지게 피터를 돌아보다가 그제야 피터가 울먹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기겁해 손을 허둥거렸다. 처음 토니가 늑대를 만들었을 적만해도 재밌다며 까르르 웃던 피터는 늑대가 토끼를 잡아먹었다는 사실이 어지간히도 충격적이었는지 금방이라도 터질듯 눈물을 글썽였다.



"늑대 무서워서 놀랐어? 아냐, 아냐. 늑대 안 무서워. 늑대가 토끼 안잡아먹었어. 다 장난이야."

"흐에에엥.."



토니가 달래주는 것이 오히려 촉매가 되었을까. 결국 피터가 울음을 터트리며 스티브의 품을 파고들었다. 늑대에게서 도망가려는 피터의 모습이 꼭 토니에게서 도망가려는 모습 같이 보였다. 어떻게든 아이를 달래고자 토니가 땀을 뻘뻘 흘렸다.



"피터, 피터. 이거봐. 토끼 안먹혔어. 봐, 봐. 토끼 안 먹혔다니까? 어, 어.. 저기 스티브. 토끼 어떻게 하는거야?"



피터를 달래주려 이리저리 손가락을 꼬아보았지만 방금전 스티브가 하던 것처럼 토끼 모양이 잘 나오지않자 토니까지 울거같은 얼굴로 스티브를 찾았다. 똑같은 표정으로 울먹거리는 토니와 피터의 모습에 스티브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꾹 참아내었다. 스티브으.. 토니가 한번 더 울먹이는 소리로 내며 스티브를 부르자 스티브는 웃음을 지우지 못한채 피터의 등을 가볍게 두들겨주었다. 다시금 벽에 토끼 그림자가 만들어졌다. 다만 이번에는 좀 더 손전등에 가까이 다가간 탓에 그림자의 크기가 커졌다.



"우와, 토끼가 늑대보다 훨~씬 큰걸? 이거 봐봐. 피터."



스티브의 다정한 부름에 피터가 코를 훌쩍이며 슬쩍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제야 토니의 늑대 그림자보다 스티브의 토끼 그림자가 더 크다는 것을 확인한 피터가 눈물을 그쳤다. 스티브가 덩치를 자랑하듯 토끼 그림자를 흔들어보였다.



"이제 토끼가 더 쎄지?"

"어, 어이구. 만렙토끼가 나타났다. 무서워서 도망가야지. 늑대 도망간다. 우와와."

"나쁜 늑대 쩌리가!"



스티브의 도움으로 늑대를 퇴출시키자 피터가 다시 기운차게 주먹을 휘둘렀다. 신나하는 피터 옆에서 스티브의 손가락 모양을 힐끔힐끔 훔쳐본 토니가 스티브와 똑같이 토끼 모양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커다란 스티브의 토끼 그림자 옆으로 조그마한 토끼 그림자가 다가왔다.



"늑대 가고 다른 토끼도 왔다. 우왓! 무지 멋진 토끼씨네. 만렙토끼씨, 안녕하세요. 늑대를 쫒아주셔서 고마워요. 감사의 의미로 뽀뽀~"

"파피! 때디!"

"그래, 그래. 파피 토끼랑 대디 토끼야."



토니 토끼가 스티브의 토끼 그림자에게 뽀뽀를 하자 피터가 발을 붕붕 차며 좋아했다. 마치 손에 잡으려는듯 피터가 벽가로 손을 뻗었다. 그 모습이 못내 귀엽고 사랑스러워 스티브가 피터의 이마에 잘게 키스를 해주었다.



"파피토끼랑 대디토끼는 사이가 좋아서 이렇게 귀여운 애기토끼도 생겨났답니다."



슬쩍 스티브가 토니를 바라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그 다정한 모습에 토니가 귀를 붉히며 부끄러워했다. 이렇게 피터를 사이에 두고 행복한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때 피터를 입양한 자신의 선택이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될 수 있겠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을 치뤘던지.. 특히 토니는 자신을 위해 가장 곁에서 노력해준 스티브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살짝 스티브의 어깨에 몸을 기대었다. 따뜻한 체온이 안정감을 주었다. 스티브도 토니를 감싸안 듯 피터 몰래 뺨에 키스를 해주었다.



"토끼!"



스티브 토끼 그림자가 다시 토니 토끼 그림자에게 키스하듯 다가가는 모양새를 하자 피터가 흥분해 손을 더욱 앞으로 내밀었다. 그 순간 피터의 손에서 거미줄이 팍! 하고 튀어나와 스티브와 토니 토끼 그림자를 명중시켰다. 자신의 손에서 벽까지 이어진 거미줄에 피터가 까르르 웃음 지었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스티브와 토니는 놀란 눈으로 피터의 손에서 나온 거미줄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거미?!"



아무것도 모르는 피터는 자신을 붙잡고 허둥거리는 스티브와 토니 품에서 맑게 웃음을 터트렸다. 뜻하지 않게 그림자 놀이를 하던중 피터의 숨겨진 능력을 발견한 셈이었다.